작품설명
연출가 박재완이 이끄는 극단 <루트21>과 극작가 장성희의 뜨거운 만남
크리스마스 시즌 장식용으로 쓰이는 잎 끝이 뾰족한 육각형 잎의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 이름을 아는가? 서양에서 ‘홀리’ 라고 불리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 이름은 생소한 이 나무의 이름은 ‘호랑가시나무’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이름이 지어진 이유는 호랑이 등을 긁어주는 나무라 해서 지어졌다. 붉은 열매를 지닌 아름다운 이 나무, 그러나 그 잎의 가시는 생채기 또한 낼 수 있을 만큼 위험하다. 인생의 동반자, 부부, 연인은 달콤함만을 공유하지 않는다.
연극 호랑가시나무 숲의 기억 은 사랑, 결혼, 부부관계에 거울을 들이대어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삶의 이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작가 장성희는 어떤 글쓰기를 해왔던가? 안과 밖의 일치를 표현상의 기틀로 삼아
궁극적으로 인간관계와 사회현상을 그녀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포근함으로 감싸 안았던 것이 장성희 글쓰기의 중심 축 아니었던가? 이랬던 그녀가 《호랑가시나무 숲의 기억》에서는 광기라는 정서적 독성을 주입하고, 혐오와 치욕과 죄의식을 예전작품의 서정적 기운과 대결시킨다. 그렇다면, 그녀 글쓰기의 ‘끌어안기’ 태도는 이제 관객의 몫으로 넘겨졌다고 봐도 무방한가? 글쎄, 적어도 호랑가시나무 숲의 기억 에서는 이런 종류의 이동이 감지되고 있음을 분명히 해두자.
호랑가시나무 숲의 기억 에서 장성희 작가의 변화된 글쓰기가 감지되고, 박재완 연출은 이
변화를 반긴다. 반긴다는 점에서 작가와 같은 맥락의 박재완은 다른 무엇보다 작품의 각 등장인물이 지닌 내적 에너지와 외적표출간의 집요한 상호작용을 변화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이 부분을 그는 그 만의 독창적 시선으로 풀이한다.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여겨지는 새로운 형식, 독특한 장르의 창조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온 박재완이 호랑가시나무 숲의 기억 이라는 큰 동지를 만나고, 그는 이 동지와 함께 그가 추구해 온, 그만의 ‘연극 리모델링’ 작업에 또 다시 몰두한다. 그는 광기와 서정성을 충돌시키고, 현 연극의 주류적 흐름과 지난 세기(20세기) 연극전통 간의 ‘생경한’ 만남을 시도한다. 이를테면 그로테스크한 잠재의식의 세계와 일상적 리얼리즘의 조우란 것인데, 과연 그는 어떤 일탈적 연극을 염두에 두고 이 조우를 파헤치려는 것일까?
“결혼은 셋이 하는 거야. 남자, 여자 그리고...”
줄거리
서해안 어느 외진 곳에 자리 잡은 펜션에 스와핑 파티가 준비되어 있다.
그날 밤 강풍과 진눈깨비 내리는 불안정한 날씨에 길은 고립된다. 파티에 참석하러 펜션에 도착할 손님들의 방문은 지연되고, 이곳을 운영하는 노부부는 애타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던 중 첫 번째 손님으로 교수와 그의 아내가 도착한다.
그들은 뭔지 모를 두려움과 초초함에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려 애쓰며 노부부와 함께 초대된 또 다른 손님을 기다린다. 그런데 일상적이지 않은 차림의 젊은이들이 문을 노크한다. 그들은 초대 받지 않은 손님들이다. 같은 공간속에 이들은 하룻밤 얽히게 되어 즉흥적으로 파티를 열게 되고, 파티가 점점 무르익어 가는데 분위기가 기묘해진다.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눈발은 점점 세지는데, 노인이 기다리는 초대받은 다른 손님들은 끝내 도착하지 않는다. 펜션 안에 그들은 점점 대담해지고,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