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저쪽 풍경>은 원래는 제목이 없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제목이라는 것은 원래 없다. 어느 날, 저게 뭐지? 하고 시작되는 얘기가 있을 뿐이다. 그 다음엔 뭐지가 뭐지?로 가고, 저게 이건가? 이게 저건가?로 가는 거다. 모든 서술의 시점이 전지적 시점이라는 것과 모든 전지적 시점이 일인칭 시점이라는 것은 조금만 글을 써보면 다 아는 얘기다. 자리가 바뀌는 것이, 세상을 달리 말하게 한다.

줄거리

동물원. 축사 뒤의 공터. 어느 날 밤 한 남자가 피폐한 걸음으로 이곳에 도착한다. 소나기가 쏟아지고 그 위에는 놀랍게도 밝고 큰 달이 떠 있다. 소나기를 맞으며 남자는 벤치에 잠들어 있다. 죽음보다 깊은 잠. 멀쩡한 일류대학을 그만두고 동물원 사육 보조사가 된 처녀가 남자와 한 달을 함께 지낸다. 다시 어느 날, 축사 뒤의 공터에서 또 한명의 여자가 들어와 흙과 돌로 혼자 동물원을 만들며 논다. 소나기가 내리던 어느 날 남자는 여자와 함께 사라진다. 남자를 사랑하지만 남자의 고독과 피폐함에 어쩌지 못하던 처녀에게 상관인 과장이 나타나 남자의 과거에 대해 말해준다. 그 날 밤, 어둠속을 걸어온 남자는 처녀와 벤치에서 사랑을 나누고 처녀는 이것이 떠남을 위한 인사임을 알아차린다. 다음 날, 남자도, 처녀도, 여자도 모두 떠나가 버린 공터에 과장이 홀로 남아, 누군가가 놓고 간 양산 하나를 찾아낸다. 소나기가 내린 어제 물소가 들이받아 망가진 축사문을 고치는 인부들이 부산한데, 과장은 문득 축사 뒤쪽에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