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이것은 연극이 아니라, 인생이다!
숨결로 파고드는 삶의 무대 <3월의 눈>이
故 장민호 선생을 그리며 다시 찾아옵니다.

지난 11월 2일, 우리는 한국연극계의 큰 별, ‘장민호’ 선생을 떠나보냈다.
한국현대연극사의 산 증인으로 1950년부터 2011년까지 60여년의 세월동안 200여 편이 넘는 작품에 혼신을 다바쳐 무대에 올랐던 故장민호 선생. 당신의 마지막 작품이 바로 <3월의 눈>이다.
장민호 선생이 그려낸 <3월의 눈>은 당신이 살아 온 세월의 깊이와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더해
움직임 하나하나, 세세한 한 호흡까지 관객들에게 묵직하고도 먹먹한 감동을 전했다.
<3월의 눈> 무대 뒤, 어둠속에서 고즈넉이 등장을 기다리다가 다시 무대에서 내려와 만난 작가에게 나지막히 ‘나 오늘 괜찮았어?’ 라고 묻곤 하셨던 장민호 선생.

삶의 끝자락에서 만나 숭고하기까지 했던 그의 연극 <3월의 눈>을 이제 다시 만난다.
그는 졌지만, 그의 숨결이 남아있는 연극으로 장민호 선생을 추모하고자 한다.

어쩌면 <3월의 눈>은 故장민호 선생이 여전히 부박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위로가 아닐까.

올 3월에는 희대의 숨은 명배우 변희봉과 '3월의 눈'의 히로인, 살아있는 한국연극계의 전설 백성희,
그리고, 초연부터 '3월의 눈'을 함께 하며, '이순'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배우 박혜진이 만나
 새로운 감동의 무대를 선사합니다.

“늘 기다려 왔습니다. 진한 살 냄새 나는 작품을. 인생사는 얘기를요.”
범상치 않은 존재감으로, 주인공보다 독보적인 배우. 전형적인 연기가 없다. 장르를 떠난다. 코미디인데, 비장미가 있고, 엄숙한 작품인데, 위트가 이상하리만치 넘친다. 그런데, 그 저변에는 삶의 페이소스가 깊숙이 담겨져 있다. 바로 봉준호 영화감독이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배우’라고 한 희대의 숨은 명배우 변희봉의 이야기이다. 성우로 시작한 그의 연기생활에서 1960년대 중반, 故 차범석 연출가의 극단 ‘산하’에서 만난 연극무대는 새로운 돌파구가 되었다. 이제 40여 년만에 그 무대로 돌아간다.
“<3월의 눈>은 그 풍김이 참 남달랐어요.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름만 봐도 작품이 기다려지는 배우, 나이를 떠나 끝이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지닌 배우 변희봉. 그의 <3월의 눈>이 무척 기대가 된다.

느림과 침묵, 그 깊은 파장의 효과 : 정서의 카타르시스
- 연기가 없는 연기, 갈등과 극성을 뛰어 넘는 대본, 연출이 보이지 않는 연출

<3월의 눈>은 자극적인 내용도, 극적인 반전을 담고 있지 않으면서도 가슴을 찡하게 하는 감동이 있다.
존재만으로도 무대를 가득 채우는 노배우들의 열연과 전통 한옥을 재현한 무대, 압축적인 대사는 수많은 침묵 속에서 한 순간도 관객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장오’와 ‘이순’의 일상적인 삶은 아련하게 가슴에 스며들어, 무대 위 배우들이 소리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더 큰 감정의 파장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 살점을 다 내주고 결국 극 후반에 뼈대만 앙상하게 남는 고택, 벽을 제외한 모든 도구가 통째로 박물관에 팔리는 이발소, 재개발 열풍 속에서 평생 살아온 집을 떠나야 하는 장오의 모습을 묵묵히 보여주며 <3월의 눈>은 소멸해 가는 것이 실은 새로운 생명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느릿한 배우들의 움직임과 긴 호흡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3월의 눈>은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침묵과 느림의 미학을 통해 정서적 쾌감을 선사한다.

줄거리

“이젠 집을 비워줄 때가 된 거야, 내주고 갈 때가 온 거지...” 볕 좋은 어느 한옥집 툇마루, 고즈넉하다. ‘장오’와 ‘이순’, 노부부는 최근 재개발 열풍 속 손자를 위해 마지막 남은 재산인 이 집을 팔고 떠남을 준비하고 있다. 이 집의 새로운 주인은 이미 집을 조각조각 떼어내 팔아버렸고, 사람들이 쓸만한 문짝과 마루, 목재들을 사가면서 이 집은 하나 둘, 제 살점을 내어준다. ‘장오’와 ‘이순’은 입을 열어 두런두런 이야기를 시작한다. 불가능한 이야기를. 그리고, 문창호지를 새로 바르는 등 그들의 일상을 지속한다. 결국 앙상한 뼈대만 남은 집을 뒤로 하고, 삼월의 눈 내리는 어느 날, ‘장오’는 집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