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요즘 고양이들은 정체를 드러내고 쥐를 몰 정도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몰린 쥐의 몫입니다.
혼자 궁지까지 열나게 내달리다가, 궁지에 이르러서야 뒤를 한번 스윽 돌아볼 뿐이지요.
돌아보나 안 돌아보나, 고양일 찾거나 못 찾거나, 달라질 건 없어요.
궁지까지 갔으면, 그건 오로지 쥐의 몫입니다.
피곤하게 고양일 탓하고 물어뜯을 생각을 하느니,
다음 생엔 제발 고양이로 태어나길 기도 하는 게 훨씬 낫지요.
때 목욕이나 하고, 하려던 자살이나 해야겠어요.

‘극공작소 마방진’의 2013년 첫 신작 무대를 장식하는
<영호와 리차드>

연극 <영호와 리차드>는 극공작소 마방진의 신진 극작가 겸 연출가인 이진경이 2010년 낭독공연으로 선보여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으로 탄탄한 구성과 감각적인 언어로 이 시대 마이너리티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이에 2012 유망예술육성지원사업 NArT 신진예술가 연극 부문 선정, 2013 한국공연예술센터 차세대공연예술가시리즈에 선정되는 등 희곡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인정 받으며 극공작소 마방진의 2013년 첫 신작 무대로 선보인다.

또한 신춘문예 당선작 <리모콘>을 비롯하여 <사심(死心)없는 사람들> <춘성> 등 참신한 소재, 탄탄한 드라마를 바탕으로 사회 현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동시대를 이야기 해오며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주목 받고 있는 극공작소 마방진의 차세대 극작가 및 연출가 이진경이 그 동안 쌓아온 단단한 내공을 이번 작품을 통해 아낌없이 보여 줄 예정으로 관객과 평단의 기대를 모은다.

소외와 고립, 소통의 부재, 경쟁과 개인주의 만연하는 현대사회 속
현대인의 권태로운 일상을 깨워 줄 조금 특별한 ‘오늘’의 기적!


이 작품은 경쟁과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심각해지는 소통의 부재로 인해 소외와 고립으로 마이너리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단상을 보여준다.
무면허 대리운전기사 영호를 비롯하여 돼지를 팔다가 돼지가 되어버린 리차드, 아이를 낳기 위해 몸을 파는 정란, 울트라 캡숑 헤라클래스를 찾아 헤매는 연희, 아픈 과거의 기억을 망각해 버리고 살아가는 순분까지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상실과 불안함을 느끼며 각자의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그들은 각자의 고독과 결핍을 ‘말’하는 대신, 끊임없이 먹고 부서지도록 일하며 헛된 쾌락을 좇기도 하고 아픈 기억을 가공하는데 몰두하다가 기억 자체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몸부림이 강력할수록 현실은 더 가혹해지고 각자의 벽은 더 견고해질 뿐이다. 대상 모를 분노는 이내 자신에게 향하고, 가장 어렵지만 또 가장 쉬운 선택은 자신을 살해하는 일이 된다. 이렇듯 이 작품은 관계들이 실종되어가는 오늘날 마음의 문을 닫고 소통의 부재 속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시켜 비정상적인 사회 문제와 현상에 대해 꼬집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상처를 드러내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타인에게서 받은 상처를 타인에게서 치유 받기를 기대한다. 삶의 마지막 끈을 놓기 직전에 만나게 된 이들 모두는 독을 품고 서로를 할퀴고 비난하고 조롱하다가 어느새 타인의 아픔을 고스란히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서 조금은 특별한 순간을 함께 직면하게 되고 그 정체 모를 순간은 이들에게 다시 한번 일상을 붙들 용기가 된다. 혼자 견뎌내야 했던 고통 속의 ‘오늘’이 타인에 의해 의미 있는 ‘오늘’이 되어 기적처럼 새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이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소하지만 따뜻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한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연기를 통해
극공작소 마방진 배우들의 색다른 매력을 볼 수 있는 시간!

<들소의 달><칼로막베스><리어외전> 등 주로 역동적 에너지와 합을 보여줬던 극공작소 마방진이 이번에는 한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마방진 배우들의 색다른 매력을 선사할 예정이다.
그간의 작품을 통해 열정적이고 인상적인 연기력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마방진의 배우 조영규, 김명기, 손고명, 김민서, 이지현이 출연한다. 특히 배우 조영규는 이번 작품에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초고도 비만의 남자로 분하여, 그간 보여왔던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 들기 위해 특수 제작된 의상까지 입고 고군분투 중이다. 무대 위에서 새롭게 변신을 꾀하는 그를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줄거리

초고도 비만의 중년 남자, 리차드. 그의 비만은 정상적인 부부관계까지 위협한다. 그의 부인 연희가 집을 비운 사이, 그녀의 가방에서 여성용 자위 도구를 발견한 리차드는 망설임 없이 죽을 결심을 한다. 죽기 전 마지막 만찬을 시작하려는 순간, 영호가 그의 집에 들어온다. 무면허 대리운전 기사, 영호. 지독한 가난으로 아내인 정란은 집을 나가버렸고, 치매에 걸린 홀어머니 순분과 함께 거리를 배회한다. 설상가상, 당뇨합병증으로 불편해진 눈 때문에 실직까지 하게 되자,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의 삶까지 마감하려고 한다. 리차드의 집을 비었다고 착각한 그는, 어머니의 마지막 생일파티를 열어 주기 위해 리차드의 집에 들어선다. 궁지에 몰려 생(生)을 포기하려는 두 남자, 영호와 리차드. 그들은 궁지에 몰린 쥐처럼, 차가운 벽을 등지고 서서, 노려보고 할퀴고 울고 웃는다. 영호를 떠났던 정란과 리차드를 절망으로 몰고 간 연희, 영호의 발목을 잡는 순분까지 합세해, 이들 모두는 질퍽한 한 판의 파티를 벌인다. 시궁창 같은 그 곳에서, 정란의 뱃속 아기가 꿈틀댄다. 그리고 이내 세상을 향해 힘차게 울어댄다. 그 순간. 눈물콧물이 범벅 댄 이들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서린다. 그건 삶에 대한, 미미하지만 강력한 에너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