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웃음 뒤에 숨은 페이소스가 빛나는 연극 <서툰사람들>
작가 장진이 연극초년생 시절에 쓴 <서툰사람들>은 멜로를 가장한 사회풍자극이다. 독신자 아파트라는 닫힌 공간을 배경으로 초보도둑과 어설픈 집주인이 벌이는 하룻밤 이야기 속에는 시대를 꼬집는 발언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상에 총구를 겨눴던 지강헌의 외침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장덕배를 대변하는가 하면, 사회의 무관심으로 소외당한 남자 김추락의 자살소동은 외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를 보여준다. 회사에서 차한대 팔지 못하는 세일즈맨 서팔호는 화이에 대한 일방적인 구애를 거절당하면서 매번 짤리는 인생에 한탄하고, 평생 교직에서 모은 돈으로 간신히 아파트에 당첨된 아버지 유달수는 ‘주택적금’의 위대함을 부르짖는다. 악착같은 그들의 모습은 처절하다 못해 슬프기 그지없다. 소시민들은 그렇다. 소심한 사람들은 무관심에 상처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용기를 내기위해 술을 마시며, 방 한 칸에 인생을 건다. 결국 소심한 덕배가 화이의 집에서 훔치는 것은 겨우 고장난 라디오나 철지난 비디오따위다. 지갑에서 훔친 만 원짜리 몇 장도 화이가 안보는 틈을 타 다시 지갑에 채워넣는다.
그러면서, 덕배는 왜 아침이 올 때까지 화이 곁에 머무르는가? 그건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화이가 그러하고, 여자 친구 한 명 없었던 덕배의 인생이 그러하고, 이걸 지켜보는 관객의 심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칼을 든 도둑이 친근할 수 있다는 생각, 혼자 사는 여자가 문을 열어놓고 살 수 있다는 생각, 그 자체가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 아닐까? 밤도 낮도 없는 도시, 도둑도 주인도 없는 상황, 적도 아군도 없는 이 시대가 덕배와 화이를 만들어 낸다. 떠난 도둑을 그리워하며 침으로 범벅된 도둑의 스타킹을 주저없이 뒤집어 쓸 수 있는 인간 유화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참된 모습이 아닐까?
스타킹을 뒤집어 쓴 납작한 도둑의 얼굴에 박장대소하게 하면서도 어느 새 관객을 덕배의 편으로 만들어 ‘작은아버지’를 열창하게 만드는 연극, 그러면서 화이와 덕배의 그리움을 잊지 않게 만드는 연극, 바로 <서툰사람들>이다.

줄거리

무관심한 세상을 향한 한바탕 소란극
독신자 아파트에 외롭게 사는 여자 ‘유화이’의 아파트에 초보도둑 ‘장덕배’가 들어온다. 열려있는 문, 훔쳐갈 물건 없는 살림, 도둑의 존재를 문득문득 잊어버리는 용감한 주인. 모든 상황이 서툴기 그지없다. 여기에 질세라 군대를 갓 제대하고 도둑전선에 뛰어든 '장덕배'는 도둑이라고 칭하기에는 너무나 소심하고 인정어리다. 손목을 아프지 않게하는 매듭법을 연구하는가 하면 목마른 화이에게 물을 먹여주기도 한다. 숨겨진 비상금 위치를 가르쳐주는 주인, 훔친 돈을 몰래 지갑에 넣고 가는 도둑. 그들은 서로의 신분과 상황도 잊은 채 마음의 문을 열어나간다. 한편 아래층에 사는 남자 김추락은 무관심한 세상을 향한 한바탕 자살소동을 벌이고, 경찰은 엉뚱하게 한층 위에 사는 화이 집 문을 두드린다. 구애하기 위해 찾아온 영업사원 서팔호는 덕배의 달변에 쫓겨나게 되고, 이른 새벽 딸을 찾아온 아버지는 덕배를 남자친구로 오해하며 손을 맞잡아준다. 길었던 밤이 지나고 어김없이 찾아온 새벽. 달려나가는 덕배를 보내고 혼자 남은 유화이. 열린 문을 바라보며 덕배가 남기고 간 스타킹을 뒤집어쓰며 쓸쓸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