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국제공연전문국악그룹 <디딤소리>는 지난 10여 년간 세계의 여러 도시를 돌면서 모듬북 공연을 펼쳐왔다. 공연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느낄 수 있었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전통악기인 북의 소리에 한껏 들뜨고, 한국 전통음악 고유의 가락과 장단에 함께 흥겨워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을 더 즐겁게 할 수는 없을까? 지금 한국에는 놀랄 만큼 훌륭한 뮤지션들이 너무도 많은데!”
이번 공연 <타악 명불허전>을 기획하게 된 것은 나 자신이 연출자이기 이전에 연주자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동료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러 다닌다.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선 그들로부터 음악을 배우고 싶은 이유에서다.
음악의 세계는 장인들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랜 시간 피나는 연마 과정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사람들. 이미 장인이거나 혹은 장인이기를 지향하는 음악인들. 그런 뮤지션들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찾아다녔다. 그들의 공연에 때론 감동하기도 하고 때론 나를 돌아보기도 하다가, 문득 욕심이 생겼다. “저들의 연주를 한 자리에서 보고 싶다.”
그래서 이 무대에 각기 다른 개성과 고유의 음악세계를 지닌 타악 뮤지션들이 모이게 되었다. 전통의 깊이 속에서 진중하고 정교하게 자신만의 음색을 입히고 있는 류인상, 월드뮤직과의 실험을 통해 동서양 음악 간의 경계를 해체하고 있는 김동원, 젊음의 에너지와 조화로운 호흡의 박진감을 추구하는 고석진, 다양한 악기와 연주어법으로 폭넓은 음악세계를 펼쳐내고 있는 유경화, 그리고 이들의 말미에 나.
이렇게 다섯 연주자는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을 선보이기 위해 합류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뮤지션들 간의 조화로운 접점을 찾기 위해 토론했고, 전통음악의 단순한 답습을 뛰어넘기 위해 창작음악을 작곡했고, 아름답고도 박력 있는 전통 타악기로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연습했다. 다섯 연주자와 관객들의 신나는 놀음판을 꿈꾸면서.
<타악 명불허전>은 독주와 타악 앙상블, 연주로만 이루어진 음악 공연이다. 전통 타악에서 어떤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지, 또 어떤 흥미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깊이 있는 음악성을 드러낼 수 있는지, 뮤지션들은 모색하고 관객들은 느낄 수 있는 공연이 되기를 바란다.
각 뮤지션들이 우리의 전통장단을 각자의 방법으로 해석해서 흥겹게 박자를 가지고 노는 자리. 우리 가락과 우리 리듬이 때로는 부드럽고 섬세한 장구의 두드림을 통해, 때로는 빠르고 웅장한 모듬북의 비트를 통해, 때로는 연주자들이 흥겨운 즉흥성의 경연으로 펼쳐 보일 시나위를 통해, 연주자와 관객들이 즐겁고 재미있게 소통하는 자리가 되기를 원한다.
이런 놀이판이 잘 이뤄진다면!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좋아할 음악을 만들기를 소망한다. 우리 전통타악의 또 다른 좋은 뮤지션들이 모여서 또 다른 공연을 계속할 것이다. 외국의 타악 연주자들도 불러서 크로스 오버 공연도 하려고 한다.
<타악 명불허전>은 일회성 공연이 아니라 장기공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이 든다. “이번 공연부터 잘 놀아보자. 타악, 심장이 뛰는 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