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스페인 정취가 살아있는 '희극 발레' 의 대명사
세르반테스(Miguel de Vervantes Saavedra)의 소설 '돈키호테'(1615)를 원작으로 만든 희극발레. 발레라고 하면 <지젤> <백조의 호수> 처럼 흔히 가녀린 발레리나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떠올리기 쉬운 까닭에 <고집쟁이 딸>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몇 없는 희극 발레 중 가장 유쾌한 작품으로 꼽힌다.
<돈키호테>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차이콥스키의 3대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과 <지젤>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이는 인간의 꿈과 도전, 용기 등을 재치있게 다룬 원작의 덕도 있었겠지만 발레가 원작의 큰 줄기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발레 자체로서의 가치도 충분히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국립발레단이 선보이는 <돈키호테>는 이 작품에 생명력을 가져다 줬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큰 영향력을 끼친 프티파의 버전을 재해석한다. 1896년 볼쇼이극장에서 초연한 그의 버전을 문병남부예술감독이 재안무하는 것이다. 음악은 발레음악가 루드비히 밍쿠스가 작곡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밍쿠스는 이 작품의 성공으로 황실발레단의 공식작곡가로 1886년까지 활동하면서 프티파와 명작 <라바야데르>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수많은 발레음악 가운데 두 작품과 <파키타>(프랑스 지배하의 스페인이 배경)가 잘 알려져 있는데, 세 작품 모두 이국의 정취를 신비롭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의 색다른 재능을 짐작할 수 있다.
발레 <돈키호테>는 바르셀로나의 명랑한 소녀 키트리와 낙천적인 이발사 바질의 사랑놀음에 초점을 둔다. 책 속 주인공인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는 그저 두 사람 곁의 병풍에 불과하다. 돈키호테에게는 춤이 거의 없고, 라만차의 기사 출정이나, 구원의 여인 둘시네아를 찾는 장면, 풍차에 돌진하는 에피소드 등 원작에서 특히 유명한 부분만을 맡아 연기할 뿐이다. 실제로 작품의 백미라 불리는 3막의 그랑 파드되 역시 결혼식을 올리는 키트리와 바질이 채우고 있다. 또한 눈여겨볼 조역으로는 투우사 에스파다와 그의 여인 메르세데스. 춤으로 가득 채우는 이들은 오히려 돈키호테를 능가하는 측면이 있다.
<돈키호테>의 매력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이국적인 무대에도 있다. 백색 발레의 향연인 고전 발레에서 플라멩코를 연상시키는 빨간색 집시 의상은 독특할 수밖에 없다. '숲 속의 정원' 장면에서는 우아한 백색 발레를 선보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품은 에스파다와 메르세데의 전통춤을 비롯해 처음부터 끝까지 스페인 분위기를 이어간다. 정열적인 캐릭터 댄스와 아크로바틱한 발레 테크닉은 감상 포인트다.
그러나 발레 <돈키호테>가 무대에 정착하기까지는 첫 공연을 하고 100여년이 더 걸렸다고 한다. 첫 무대는 1740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프란츠 힐퍼팅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후 파리오페라발레단과 이탈리아라스칼라발레 등에서 간헐적으로 재창작되기는 했지만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러시아에서도 몇 번 공연된 적이 있었다.
1869년 프티파와 밍쿠스의 공연은 성공이었다. 프티파는 원작의 2번째 책을 주로 발전시켜나갔다. 또 청중들에게 맞게 철학적 부분을 걷어내고 대신 군무나 무대장치, 스페인 전통춤 등 흥미로운 요소를 다수 넣었다. 이후 프티파의 제자였던 고르스키가 1900년 재안무를 하면서 러시아 발레의 양대산맥인 볼쇼이와 마린스키 발레단의 고정 레퍼토리가 됐다.
2013년 국립발레단은 <돈키호테>를 '해설이 있는 전막 발레' 형식으로 진행한다. 해설은 음악 칼럼니스트 유형종씨가 맡는다. 공연 중간중간에 해설을 곁들여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함께 상상하고, 발레를 보면서 가졌던 의문들도 전문가의 설명을 통해 자연스레 해소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줌 인 아티스트 Zoom in Artist
세계적인 무용수와 함께한 <돈키호테>
안나 파플로바, 루돌프 누레예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조지 발란신…
1917년 소비에트 혁명 뒤, 러시아에서 많은 발레가 금지 당했다. 이 와중에 운 좋게 살아남은 <돈키호테>는 볼쇼이와 마린스키발레단의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서구에서 전막은 오랫동안 공연되지 못했다.
처음 이 작품을 러시아 밖으로 가지고 나온 건 <빈사의 백조>로 유명한 세계적인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였다. 그녀의 발레단은 1924년 고르스키 버전의 <돈키호테>를 2막으로 줄여 수정한 것을 영국에서 공연했다. 이때 살아있는 말이 무대에 등장했는데, "제 역할을 소화하기에는 너무 뚱뚱해서 다음부터는 날씬한 말을 출연시켰다" 는 우스운 기록이 남아있다.
3막의 유명한 그랑 파드되는 1940년이 돼서야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의해 소개됐다. 1950년 처음으로 전막을 공연한 영국로열발레단은 그러나 러시아와는 완전히 다르게 무대를 꾸몄다.
진정한 러시아프로덕션의 버전을 서양 무대에 옮겨온 건 1962년 램버트발레단이었다. 이후 좀 더 활발해져서 미국 발레의 선구자라 불리는 조지 발란신이 뉴욕시티발레단을 위해 1965년 모던발레 버전을 만들어 그 자신이 돈키호테를 연기했다.(그러나 이 버전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우아한 악동'이라는 별칭을 얻은 전설적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가 재안무한 버전은1966년 오스트리아 빈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랐다. 그는 1973년 오스트리아발레단과 이 작품을 영화하하기도 했다.
영화 '백야' 의 빛나는 주인공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역시 1980년 아메리칸발레시어터를 위해 <돈키호테>를 안무했다. 러시아 전통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는 평을 듣는 이 버전은 후에 파리오페라발레단에도 전해졌다. 오늘날 세계 유수의 발레단이 다양한 버전으로 작품을 공연하고 있다.
19세에 <파키타>를 작곡한 발레 음악가 루드비히 밍쿠스
오스트리아 출신인 루드비히 밍쿠스(1826~1917)는 발레음악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의 아버지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작은 전용 오케스트라를 두었는데, 아마 이 환경이 어린 밍쿠스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의 첫 공식적인 데뷔는 비엔나에서 열린 한 리사이틀.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8살이었다. 당시 한 평론가는 그의 연주에 대해 "화려한 무대매너와 정통 연주" 라고 평했을 정도로 그의 재능은 남달랐다.
그러나 그는 1846년 바이올린곡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곡가에 뛰어든다. 19세에 파리에서 <파키타>의 한 막을 작곡하기도 했다. 1852년 비엔나왕실 오페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지만 그는 커다란 의무감 때문에 곧 그만두고 러시아로 향한다.
그는 러시아에서 음악적으로 완전히 꽃을 피운다. 첫해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유스포프 왕자의 사설 오케스트라 지휘자 겸 바이올리니스트로 있다가, 1861년 모스크바 볼쇼이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가 된다. 1년 뒤 그는 지휘자로 승진하고, 1868년부터 프티파와 작업하면서 발레 음악 작곡에 절정을 맞는다. <돈키호테>의 성공으로 1886년에는 러시아 황실발레단의 공식 작곡가가 되기도 한다. 1877년에는 인도를 배경으로 한 <라바야데르>도 남겼다.
존 란츠베리는 밍쿠스의 음악을 듣고 "초보자들도 그의 음악을 들으면 일어나 춤을 추고 싶어진다. 그의 음악 속에는 스페인의 집시, 투우사, 인도의 무희, 라쟈가 살아있다" 고 했다. 밍쿠스는 정부로부터 받는 연금에 불만을 품고 다시 고향 비엔나로 돌아가 1917년 91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대표작으로는 <샘> <돈키호테> <라바야데르> <파키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