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현대 일상 속 방황하는 ‘귀신’이 소재
집 밖을 나서기 무서운 세상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무차별 범죄가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특히 힘없는 여성들이 애꿎게 희생당하고 있다. 집 안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일상에서 만나는 낯익은 얼굴에 의해 다치고 터지고 주저앉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억압된 여성의 삶에 특히 주목 해온 리을무용단이 현대 일상 속 ‘귀신’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상처와 상실감에 우리 주위를 맴도는 영혼들을 형상화한 제23회 정기공연 <귀신이야기>를 오는 6월 21, 22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풍장 1, 2> 안무자 이희자의 新作
<풍장 1, 2>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철학적으로 성찰했던 이희자가 안무를 맡은 본 공연은 무자비한 폭력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고 세상과의 끈마저 놓은 여자들을 처연하게 관
망한다. 몸이 표현수단인 무용과 몸이 없는 영혼인 귀신의 이질적 조우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점점 무감각해지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여성의 삶을 주목해온 리을무용단
리을무용단은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여성들의 삶에 주목해왔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가부장적인 선입견과 사회적 편견에 고통받아온 여성들을 작품 테마로 집중 조명해왔다. 여자로서 짊어지게 되는 다양한 삶의 무게를 행장으로 형상화한 <행장3-미친 치마 꼴라쥬>(2005, 2006년), 과중한 사회적 기대감에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현대여성을 세밀하게 묘사한 <9COFFEES>(2007년)에 이은 <귀신이야기>는 자신 속 깊은 내상에 갇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극단적인 고통에 허덕이는 여성들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문제작이다.

황희연, 김현숙, 곽시내, 최희원 등 출연
예술감독으로 맡은 황희연 리을무용단 단장이 직접 출연하여 작품 전체의 중심을 잡아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이외 사)리을춤연구원 부이사장인 김현숙과 리을무용단 단원인 김현숙, 곽시내, 최희원, 천주은, 정승혜, 박정현, 김희진 등이 한 무대에 선다. 1997년부터 리을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해온 이희자는 선화예중·고를 거쳐 이화여대와 동대학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후 선화예고 실기강사로 재직 중이다. 2001년 21세기 젊은 춤꾼 페스티벌 <악마>를 통해 안무가로 등단했으며 이후 <풍장1, 2> <믿을 수 없는 사랑이야기> 등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기 획 의 도

현대 사회의 모순 속의 희생된 여성들의 몸부림
우리 일상과 다르지 않는 현대 귀신을 형상화함으로써 ‘귀신’하면 떠오르는 고루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고자 한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 속 귀신들은 어떤 모습일까? 살아생전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한을 지니고 헤매고 있지는 않을까. 현대 사회의 모순 속에서 허공을 맴도는 영혼을 몸짓으로 형상화하고자 한다.

일상처럼 저질러지는 끔찍한 범죄들
2008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고단하다. 내가 살기 위해 저질러지는 살인과 강도, 무너지는 가정 속에서 벌어지는 숨겨진 폭력과 유산, 무분별한 성문제로 인한 강간, 낙태 그리고 아동 유괴..그들이 빼앗긴 것들은 무엇인가?

고통에서 영원히 자유로운 수 없는 삶의 의미 성찰
살아서도 죽어서도 아픔과 고통이 하나로 뭉쳐 이생에 영적 존재로 남아있다면 그들은 어떠한 모습일까? 오로지 그 기억만이 끊임없이 반복되어지며 더 큰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도 못한 채 그렇게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놓아야 할 것은 정녕 무엇이고 이생의 우리들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현대인의 다양한 모습 속에서 어쩌면 같이 살아가고 있을 그들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삶의 모습을 물어본다.

기 대 효 과

이 시대 한국인의 감성을 적실 창작 무용
최근 다양한 소재와 표현방식을 취한 창작 무용공연이 각광받으며 무용 인구 확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자칫 재미나 자극에만 치중돼 무용이라는 본질적인 특성을 잃어버린 장르 불명의 재주나 기예 위주 공연도 적지 않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귀신’이라는 한국 고유의 캐릭터와 현대 사회와의 조우를 무용극으로 풀어내는 본 공연은 복잡다단한 이 시대 속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대중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재미, 한국인으로서의 감성적 목마름을 충족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창작 무용의 메카, 리을무용단의 야심작
1984년 창단된 이래 한국 전통 춤과 창작 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탄탄한 안무력과 뛰어난 기량으로 지금까지 100여회 이상 공연한 리을무용단의 이번 신작은 귀신이라는 한국적 소스 속에 한국적 호흡과 움직임을 최대한 살려내면서도 현대 관객의 관심과 호기심을 유발하여 관객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지려는 의욕적인 야심작이다. 특히 과거와 현재, 공간과 시간, 삶과 죽음이 오버랩 되는 복합구조를 취해 무용에 막연한 거리감이 있는 일반 관객들의 흥미와 감동을 배가하고자 기획되었다.

줄거리

프롤로그
시간은 거슬러 거슬러 뒤로 흐른다.
테라스의 여인이 휘청거린다.
그녀의 심장에 검은 가지 하나가 꽂힌다.
비틀거리던 그녀가 나락으로 떨어진다.

1.
졸린 눈으로 문을 열었다.
깜짝 놀아 황급히 닫고는 뒤돌아섰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일까?
다시 문을 열었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문은 닫고 뒷걸음치다.
나는 무너진다.

2.
흔들리는 촛불과 어그적 어그적 걸어오는 여자
동그랗게 부푼 배
아가의 심장 박동소리와 귓가를 맴도는 자장가
하늘거리는 치마에 맨발로 휘청거리는 바람에 이끌린다.
시끄러워진다.
점점 시끄러워진다.
배가 아파온다.
나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배가 점점 더 아파온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파오도록 한참을 그렇게 나는 나의 세계 속에 젖어든다.
밑이 젖어온다.
아이가 나오려나…….
아직 멀었는데…….
발밑으로 깨어진 유리조각이 바스락거린다.
피…….

3.
눈을 뜬다.
너덜너덜해진 나의 손목은 오늘도 묶여있다.
나를 감고 있는 줄은
나의 숨결을 상징하듯 눈이 시리도록 빨갛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거리는 고작 1M..
저 문 너머로 햇살이 눈부시다.

4.
내 아이를 돌려줘……. 제발
내 살같은 내 피같은 내 아이를 돌려줘
아이가 울 텐데
잃어버린 신발 신겨달라고 자꾸 울 텐데…….
해는 자꾸 어두워지는데…….
아이를 찾아야 하는데…….
왜 아무도 우리 아이를 못 본 거야…….
이렇게 많은 눈들을 가지고…….
자꾸 어두워지는데…….
아이의 울음이…….아이의 목소리가…….
내 탓이 아니야……. 내 탓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