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베르디가 사랑했던 오페라 <돈 카를로>
베르디는 오페라 <돈 카를로>를 무척 사랑한 나머지 무려 일곱 번이나 개작을 했다.
<돈 카를로>는 파리 오페라하우스가 위촉한 작품이며, 베르디는 완벽한 플롯과 치밀한 대사의 실러의 희곡 <돈 카를로스>를 선택했다. 2년 이상의 작업 기간을 거친 <돈 카를로스>는 1867년 파리 오페라하우스에서 프랑스어로 초연되었다. 이 후 베르디는 이탈리아 볼려냐에서의 공연을 위해 대사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하고 4막으로 줄여서 <돈 카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후 밀라노 공연판이나, 다시 5막으로 확장한 리코르디판 등 다양한 판본들이 만들어졌다.
최고의 심리 드라마 <돈 카를로>
사랑과 질투 그리고 의심, 우정과 신념, 부자간의 갈등, 정치적 음모와 종교적 암투 등 다양한 갈들 상황과 함께 인간 정신의 갖가지 심층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최고의 심리 드라마. 다섯 명의 주인공은 모두 막이 올라가서 내릴 때까지 인생이 그들의 어깨에 올려놓은 고통의 짐을 덜지 못한다. 아니 그들은 죽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벗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기에 더욱 비극적이다. <돈 카를로>에 비친 인간 군상의 고뇌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돈 카를로> 음악의 특징, ‘남성 저음 가수의 두드러진 활약’
베르디는 통상적인 편성에 머무르지 않고 바순과 트럼펫을 4대로 증배하는 등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늘렸으며, 극의 줄거리에 걸맞게 관현악으로 하여금 강력한 화음을 뿜어내도록 했다. 2막의 종교재판 장면에서의 화려하고 웅대한 음악에서 3막에 등장하는 필리포 2세와 애심문관이 부르는 2중창의 불길하고 음침한 음악에 이르기까지 절묘한 콘트라스트를 들려준다. 베이스 가수들간에 누가 더 묵직한 소리를 내는지 경합을 벌이는 듯 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며, 남성 저음가수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것이 오페라 <돈 카를로>의 커다란 매력이다. <리골레토>나 <라 트라비아타>에 등장하는 유명 아리아처럼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가 부족하다는 평도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공감하면서 아리아를 감상한다면 이처럼 가슴 절절한 노래는 없다.
줄거리
1막
돈 카를로 왕자의 약혼녀 엘리자베타가 자신의 아버지인 필립보 2세와 결혼을 하자, 몹시 괴로워하며 할아버지 카를로 5세의 무덤 앞에서 죽기로 결심한다. 이때 카를로의 절친한 친구인 로드리고는 억압받고 있는 플랑드르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을 설득시키며 둘은 함께 하기를 맹세한다. 그 후 카를로는 플랑드르로 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달라며 엘리자베타에게 부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 채 사랑을 고백하고 괴로워한다. 한편 필립보 왕은 로드리고에게 깊은 신뢰를 갖고 종교 재판장을 조심하라고 하며 돈 카를로와 엘리자베타와의 관계를 잘 살피라고 부탁한다.
2막
에볼리 공주가 돈 카를로에게 몰래 만나자며 쪽지를 보내고 이내 만난 후, 돈 카를로는 그녀가 엘리자베타 인줄 알고 사랑을 고백하고 만다. 돈 카를로가 엘리자베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안 에볼리 공주는 질투에 격분한다. 성당 앞 광장에서는 이교도들에 대한 처형식이 집행되는데, 돈 카를로가 프랑드르 사절들과 나타나 자유를 애원한다. 필립보 왕이 이를 거절하자, 돈 카를로는 칼을 뽑아들고 해방을 맹세한다. 결국 이로 인해 돈 카를로는 체포되고 만다.
3막
필립보 왕이 혼자 왕비와 아들을 생각하며 고독해 한다. 이때 종교 재판장이 나타나 돈 카를로의 사형을 허락하는 대신 로드리고를 종교 재판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립보 왕은 에볼리가 훔쳐다 준 엘리자베타의 보석상자안에 돈 카를로의 초상화를 보고 격분하며 둘의 사이를 추궁하고 엘리자베타가 놀라 쓰러지자, 에볼리는 곧 자신의 행동을 뉘우친다. 한편 로드리고는 돈 카를로를 구하기 위해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플랑드르 사람들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남긴 채 죽는다.
4막
돈 카를로와 엘리자베타가 만나 이별을 고하는 장면을 목격한 필립보 왕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종교재판장과 나타나 이들을 죽이려 한다. 이때 갑자기 돈 카를로 5세의 무덤에서 영혼이 나타나 거의 의식을 잃은 돈 카를로를 데리고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캐릭터
필리포의 첫 부인인 포르투갈 공주 마리아가 낳은 아들이다.그는 자신을 낳은 어머니가 죽자 태어나면서부터 모성박탈을 경험 하였다. 잉글랜드의 여왕 메리가 새어머니가 되었지만, 그녀가 런던에서 왕위를 수행하는 바람에 카를로에게는 영원히 어머니가 없 었다. 게다가 약혼녀인 엘리자베타가 새어머니로 들어온 것은 그에게 심리적 충격을 주었다. 이후로 그가 보인 정신이상적인 행동들 은 그에게 왕위를 주지 않으려는 아버지 측근의 모함이었든지 아니 면 부모의 근친결혼에 의한 태생적으로 유약한 신경 때문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비정상적인 심리를 가진 불행한 남자였다. 어머니를 껴안으려 하고 아버지에게 칼을 빼어드는 등의 행동들은 영원히 불행에서 달아날 수 없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이다. 아버지에 의해 투옥되어 감옥에서 병사한 그는 사도세자를 연상시키는데, 죽은 후에도 스페인에서는 그가 엘에스코리알 궁전의 어디엔가 살아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필리포 2세 |
스페인 제국의 전성기를 이룬 필리포 2세(1527~1598)는 아버 지 카를 5세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 철저한 로마 가톨릭 의 신봉자였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스페인 왕국과 해외 식민지를 물려받았으며, 외가로부터도 포르투갈 왕국을 물려받았다. 또한 영 국의 메리 여왕과의 혼인으로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뿐 아 니라 네덜란드도 지배하게 된다. 그는 네 번 결혼했는데 모두 유 럽 경영을 위한 정략적 결혼이었다. 첫 번째 부인은 포르투갈의 이사벨, 두 번째는 잉글랜드의 메리, 세 번째는 프랑스의 엘리자베 타, 네 번째는 오스트리아의 안나였다. 매우 성실하고 겸손했으며, 가구도 없는 작은 방에서 혼자 종일 일했던 그는 주로 서류를 통 해서 신하들과 대화하였고, 측근을 믿지 말라는 부왕의 말을 실천 했으며, 신교에 대한 철저한 탄압은 신교도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는 성실, 인내, 독선, 완고함으로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네 번의 결혼에도 진정 그를 이해한 사람은 드물었고, 평생을 고독 속에 살다 간 제왕이자 외로운 남자였다. 이런 심리적 특성은 평생을 통해 그의 마음을 지배했던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고독은 아리아 <그녀는 날 사랑한 적이 없다>에 잘 나타나 있다.
엘리자베타 |
프랑스 왕 앙리 2세의 딸로서 14세에 약혼자의 아버지인 스페인 왕과 결혼했는데, 이로써 30년간 전쟁을 하던 스페인과 프랑스는 카토캉브레지 조약으로 평화를 맺게 되었다. 그녀가 왕자 돈 카를로와 어느 정도의 관계에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에는 틀림없다. 돈 카를로가 비운의 죽음을 당한 후에도 엘리자베타는 친정의 가르침을 성실히 수행하며 품위와 온화함을 지킨 진정한 왕비였다. 돈 카를로가 죽은 후 그녀는 필리포의 두 딸을 낳았고 작은 아기가 태어난 후 얼마 되지 않아 20대의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그녀 혼자서 헤쳐간 외로운 인생은 마지막 아리아 <세상의 허무함을 아시는 신이여>에 처절하게 나타나 있다.
로드리고 |
로드리고는 실러가 만들어내 가상의 인물이다. 실러는 네 명의 갈등구조 속에 그들 사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로드리고에게 맡겼다. 베르디 역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는 바리톤 성부를 그에게 맡긴다. 네 사람은 서로 질투하고 증오하면서도 모두 로드리고만은 신뢰한다. 로드리고는 종교적 맹신과 탄압정치로 어두웠던 16세기에서도 인간에 대한 관용과 백성에 대한 사랑과 귀족에 대한 형제애를 강조하는 이상적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절망적인 오페라의 희망이다. 그러나 카를로와 필리포2세를 조종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미지의 인물이기도 하다. 베르디는 그를 죽임으로써 이 오페라를 영원한 비극으로 만든다.
에볼리 |
스페인 대귀족가의 딸로 여자로서는 여왕 다음으로 높은 지위인공녀에 올랐다. 필리포 왕은 높은 지위인 공녀에 올랐다. 필리포 왕은영국 여왕 메리와 결혼했지만 부부가 각기 자신들의 나라에서 국가를 통치해야 하는 관계로, 에볼리는 자연스럽게 필리포의 정부가 되었다. 그러나 메리가 죽고 왕이 재혼하여 엘리자베타가 왕궁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왕과의 관계를 드러낼 수 없는 불행에 빠진다. 에볼리의 미모는 대단했다는데, 그것은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초상화가 증명해주며 아리아 <내 미모를 저주한다> 에서 묘사된다. 에볼리는 외눈박이였다. 한쪽 눈이 먼 그녀는 타인은 잘 볼 수 있으나 자신을 보는 시야는 좁았으며, 수도원에서 일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