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개인은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삶 가운데 사회적 역할을 맡게 되고, 그 역할을 확장하거나 전복하거나 지켜내기 위해 사회적 행위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사회적 역할은 일상의 연극성을 구성하는 핵심으로 무대 밖 연극적 행위를 이해하게 한다. 하지만 타의적 폭력에 의해 어린 시절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감금되었던 사람들, 감금 해제 이후에도 사회적 메커니즘 안으로 들어가지 못 하고 얼굴 없는 삶을 살아온 이들은 타고난 역할(남자,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동생) 외에 사회적 역할을 가질 기회가 무척 적다. 이들은 현대 사회에 특징으로 여겨지는 잉여적 존재-나머지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들은 잉여적 존재 너머 사회적 역할 없는 절대적 개인-벌거숭이 생명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시 세상에 들고 나오면서 한종선씨는 이제 더 이상 벌거숭이 생명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 그가 새로 부여받은 역할은 ‘피해자’다. 여기에서 질문이 생겨난다. 피해자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피해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며 그들이 어떻게 남아있길 바라는가. 우리가 피해자를 고정된 이미지로 바라보고 그려내는 순간, 우리는 형제복지원에서 자유롭게 된 그를 다시 무의식적 이미지 속에 감금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는 한종선씨와 함께 희곡 〈유리바다〉를 쓰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고받은 대화들을 다큐멘터리와 연극을 넘나드는 형식으로 그려내어 고정된 피해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그의 모습을 드러낸다.

줄거리

1. 다큐멘터리 #. 우리는 지연과 호빈이 종선을 만나러 구미로 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등장인물 ‘먼지’를 만들어내자 무대에 ‘먼지’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왜관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종선의 아버지와 누나를 만나러 가는 길. 종선의 아버지가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해서 왜관역 근처 멕시칸 치킨집에 들어간 세 사람은 살이 퉁퉁하게 오른 강아지의 사연을 듣게 된다.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떠돌았다 정신병원에서 나와 강변을 찾은 세 사람. 정신병원에서 누나를 만난 이후 감정의 동요를 보이는 지연과는 달리 종선은 덤덤하게 형제복지원 안의 이야기, 아버지와 누나를 다시 만나게 된 경위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 2주일 후. 서울에서 다시 만난 세 사람. <유리바다> 대본 초고를 보며 회의를 하는 도중에 종선이 묻는다. “시체 역은 누가 해요?” 종선의 말을 들은 먼지들이 한 명을 강제로 시체역으로 만들어버리자 본격적으로 연극이 시작된다. 2. 연극 <유리바다>의 두 주인공 유지성과 인정희가 무대에 등장해 하이라이트 부분을 연기한다. 3. 종선과의 만남 연극을 끝낸 인정희 역 배우가 종선에게 말을 건다. 종선이 그녀에게 종이장미를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