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어느 계단의 이야기>의 작가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극작가로 1916년 스페인의 구아다라하라에서 태어났다. 1936년 내전이 발생하고 프랑코 독재로 이어지면서 스페인은 파시즘의 억압적인 사회구조로 빠져든다. 이로 인해 바예호는 아버지와 형을 총살형으로 잃고, 본인 또한 정부군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39년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1946년에 형이 감면되어 가석방으로 풀려나게 된다.
프랑코의 독재체제에서 스페인 문학의 대부분은 예술에 대한 순수성을 쫓아가거나 유유한 몽상의 세계로 들어가고 혹은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재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양산하는 형태로 변질된다. 이렇듯 파시즘이 정치, 사회, 경제, 문학 등 모든 부분을 잠식해 들어갔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세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부에로 바예호의 양심적인 의식은 모진 아픔과 감옥 속에서 자라서 끝내 그의 작품 <어느 계단의 이야기>(Historia de una escalera, 1949)로 터져 나오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낡은 계단과 형편없는 연립주택이라는 궁핍한 현실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인물들을 보여주면서 프랑코 독재라는 억압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하류층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말한다. 3세대에 걸쳐 인물들은 태어나고 또 죽지만, 이 비루한 현실을 벗어나는 건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인 듯, 이 작품은 납덩이처럼 가슴을 내리 누르며 묵묵히 현실을 무대 위로 그려내고 있다.
 내란과 독재라는 현대사를 겪은 우리네와 삶의 조건들이 비슷하다는 데 일단 주목하게 되었고, 일상의 사건들이 펼쳐지면서 소망과 좌절, 사랑과 이별, 벗어날 수 없는 현실 등 보편적인 사람살이에 관한 이야기란 점이 일반 시민들이 모인 우리 극단이 하기에 가장 적절한 작품이라 생각해서 올해 공연 작품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줄거리

<어느 계단의 이야기>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작고 허름한 아파트 계단을 사이에 두고 오랜 세월에 걸쳐 같이 살아가는 네 가족의 이야기다. 마드리드를 배경으로 스페인 내란과 프랑코 독재체제로 인하여 억압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하류층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지만 세상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보편적인 배경이며, 일반적인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1호에는 헤네로사와 그레고리오 부부, 불령한 아들 뻬뻬와 아름다운 딸 까르미나가, 2호에는 비교적 부유한 편인 돈 마누엘과 그의 외동딸인 엘비라가 살고 있다. 그리고 3호에는 빠까와 후안 부부와 더불어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아들 우르바노, 속 섞이는 딸 로싸와  상냥한 트리니가 살고 있으며, 4호에는 도냐 아순시온과 잘생긴 아들 페르난도가 살고 있다.
이들은 30년 동안 같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얽히고 섥혀 온갖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다. 사랑과 우정, 동정과 연민, 세대 간의 갈등과 빈부의 대립, 현실과 이상의 괴리 등 여러 상황 속에서 각 인물들은 대물림되는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하지만 성실하고도 굳건했던 말과 약속들은 살아가는 동안 어느새 잊혀지고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낡은 아파트 계단을 긴 세월이 지나고 나서도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자라서 부모들이 젊은 날에 가졌던 사랑과 소망과 약속들을 오롯이 자신들의 것으로 다시 꿈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