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믿음의 기원1>에 대한 연출의 글

그 행동이 ‘죄’라는 것을 아는 ‘죄의식’을 안고도 예수를 팔아 넘긴 유다(<십이분의 일>, 2009), 복수는 끊임없는 복수를 낳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복수를 행할 수밖에 없었던 타이터스(<타이터스>, 2009, 2011)를 통해 그 ‘왜’를 묻던 중, 그들 각자가 만들어낸 ‘세계’를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꿈의 세계가 결국 자신들을 옥죄어오는 것을 알았을 때 중산층의 평범한 사람들이 택하게 되는 행동(<비상사태>, 2010), 자신들을 희생자로 규정한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행동에 어떤 당위성을 얻게 되는지(<아이에게 말하세요:가자지구를 위한 연극>, 2010, 2011)를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결국 ‘믿음’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물음은 이 믿음이 왜 발생했고, 어떻게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내는가로 이어집니다. 이 질문은 연극적 형식으로, 혹은 비연극적 형식으로 계속 이어가려 합니다.


기획의도

<믿음의 기원> 연작 시리즈, 그 첫 번째
사람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 ‘믿음’ 연작의 첫 번째 <믿음의 기원 1>이 이번 12월,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신예 연출가 박해성의 작품으로, “두산 아트랩”으로 처음 관객들과 만나고, [예술공간 서울]이라는 또 다른 공간에서 계속해서 실험을 이어오고, 2013년 다시 한 번 관객과 만나고자 한다.

‘믿음’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하여
사람은 교육과 체험을 통해 알아내거나 체득한 것을 토대로,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추론한다. 삶이 복잡해질수록 이 추론의 범위는 확장된다. <믿음의 기원>의 시작은 이 ‘추론’이 ‘인과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믿음은 가치관, 이데올로기, 종교를 넘어서, 논리나 과학조차도 이 ‘믿음’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믿음의 기원>은 ‘믿음’으로 구성된 어떤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알고 있던 사실과 내가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또 다른 사실 사이에서,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던 ‘믿음’으로 얼마나 해석하는 내용이 달라지는지 그려보고자 한다.

공간의 해체가 만들어내는 해석의 자유로움
<믿음의 기원1>은 두산 아트랩과 예술공간 서울, 그리고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등에서 보여주듯이, 극장의 전체 공간을 객석과 무대로 사용한다. 무대와 객석은 구분이 없다. 약 3m 지름의 빈 중앙 공간을 중심으로 동심원 형태로 객석이 배치된다. 관객은 그 빈 공간에서 극적 행위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지만, 아무런 행위도 일어나지 않는다. 배우는 객석 사이를 오가며, 빈 객석에 앉기도 하며 공연을 진행한다. 극의 스토리는 하나인 것 같지만, 자유롭게 이동하는 배우들의 대사는 관객이 듣고 싶은 부분만을 들을 수 있다. 혹은 배우들이 각자 이동하기 때문에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할 수도 있다. <믿음의 기원1>에서는 관객들 자신이 본래 알고 싶었던 것을 통해 이야기를 유추해 나갈 수 있다.

‘믿음’ 연작 시리즈
상상만발극장의 형식적, 주제적 문제의식을 집대성한 <믿음의 기원>은 그 동안 두 차례의 쇼케이스, 한 차례의 공연을 통해 단체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잡았으며, 가족에 대한 믿음을 다룬 <믿음의 기원 1>에 이어 과학에 대한 믿음을 다룬 <믿음의 기원 2: 후쿠시마의 바람(2014)>, 이데올로기를, 종교를 다루는 3편, 4편도 매해 한 편씩 이어질 예정이다.

줄거리

실종된 어린 딸을 찾아 헤매온 경호는 어느 날, 이제 다 커버린 딸 수진을 찾았노라고 부인에게 이야기한다.
17년 전에 잃어버린 딸 수진을 찾았다는 남편의 말에도 규연은 이상하리만치 차갑게 반응한다.
기묘하게 말라버린 관계의 부부와 수진 사이에서 희미한 진실을 따라가던 형사 재만은 모순의 벽에 부딪힌다.
그리고 공존할 수 없는 기억을 지닌 세 명이 한 자리에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