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한 인간이 타의에 의해 불합리한 세계에 던져진다. 그 세계는 불합리하므로 그 인간은 그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 인간은 언젠가 벗어나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은 그 인간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흐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인간은 불합리한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불합리한 세계. 아베 코보는 소설 <모래의 여자>에서 ‘어쩌면,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힘의 절대적인 표현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저항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는 그 세계.

결국, 그 세계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인간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지금’은 떠나지 않는 것일까? 불합리한 세계에 갇힌 인간이 그 세계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아주 조용히, 관객에게 직면시키고자한다.

줄거리

한 여자가, 모래 구덩이 안에 살고 있다. 모래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기 때문에 매일 밤을 새워 모래를 퍼내야 하는 곳. 밥에 모래가 들어가기 때문에 우산 아래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곳. 모래를 퍼내야 물과 식량을 보급 받을 수 있는 곳. 여자는 이 모래 구덩이에서 혼자서 긴 시간을 살아오고 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이곳으로 내려온다. 남자는 자신이 타고 내려온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모래 구덩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모든 노력이 좌절된다. 여자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본다.

한 남자가, 여름휴가를 맞아 곤충채집을 하기 위해 끝없이 모래가 펼쳐져 있는 해안으로 떠난다. 그 날, 남자는 하룻밤을 머물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한 여자가 살고 있는 모래 구덩이로 내려온다. 남자는 여자를 보며 모래를 퍼내기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날 아침, 남자가 타고 내려온 사다리가 사라지고 남자는 자신이 모래구덩이에 갇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자는 모래 구덩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만 모든 노력이 좌절되고, 삽을 잡고 모래를 퍼낸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남자는 만화책을 보며 키득거리고 있고, 여자가 자신의 옆에서 말없이 부업을 하고 있다. 남자는 이 모든 것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