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오페라 <천생연분>은 오영진의 희곡 ‘맹진사댁 경사’가 원작이며, 이상우 대본, 임준희 작곡으로 새로이 탄생하였다. 이 작품은 2006년 3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극장에 올려져 세계 초연된 바 있다. 이는 독일에서 아시아권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시즌 공식 초청이었으며, 현지 언론으로부터 ‘푸치니를 뛰어넘는 작품’, ‘풍부한 한국 문화와 유럽적인 요소의 이상적인 결합’으로 평가 받았다.

세계무대 진출의 첫 걸음이 되었던 독일 공연에서는 우리의 전통적인 질감을 살린 의상과 무대, 국악적 리듬을 변용한 음악 등에 주력하였다. 그에 비하여 이번 서울 공연은 작품 자체의 극적인 긴장감과 구성, 그리고 세밀한 캐릭터 설정을 위해 대본과 음악을 보충하고 확대하였다. 또한 시각적인 스펙터클을 살린 무대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로 발전적인 창작 오페라를 선보이게 된다.

줄거리

명망 높은 김 판서와 사돈을 맺어 신분상승의 한을 풀고자 하는 맹 진사는 청나라에 유학 보낸 외동 아들 몽완을 장가 보내기 위해 불러들인다. 김 판서는 조선 최고의 가문이지만 손녀에게 곤궁한 삶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조선 최고의 갑부 맹 진사 아들과 혼인을 허한다. 맹 부인은 선도 보지 않고 신부를 들인다는 이유로 미심쩍어 하지만, 권세 높은 양반과의 혼사에 정신이 팔려 혼례연습을 하며 야단이다.

몽완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복잡한 생각은 싫어하며 청나라의 술과 여자만 떠올리는 한량이다. 서동은 조선에선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신분 차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도 자신의 신분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한편 김 판서의 손녀 서향은 항상 바다 너머 세상을 동경한다. 이 둘은 상대방을 알지도 못한 상황에서 혼인할 수 없다며, 각자의 동무이자 하인인 서동과 이쁜이를 내세워 계략을 세운다.

단오날, 이쁜이로 변장한 서향과 서향으로 변장한 이쁜이, 몽완으로 변장한 서동과 서동으로 변장한 몽완이 서로 만나는데, 몽완은 천하일색 이쁜이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서동은 총명한 서향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이쁜이를 서향으로 아는 몽완은 사실을 고하며 마음을 고백하고, 이에 놀란 서향과 이쁜이는 도망친다. 앞날을 걱정하던 중 서향을 이쁜이로 착각한 서동이 찾아와 서향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며, 새로운 세상으로 떠날 것을 제안한다. 이미 서동에게 끌리던 서향은 혼례날 떠나기로 약속하고, 이쁜이에게 신분을 바꾸어 혼례를 치르자고 제안한다.

혼례날, 김 판서 댁 마당에 혼례청이 차려지고, 신부의 얼굴이 가려진 채 모두들 흥겹다. 혼례가 진행되고 맹 진사와 몽완은 내내 희희낙락이고, 돈 때문에 손녀를 보내는 김 판서의 얼굴은 어둡다. 혼례는 그렇게 끝이 나고 모두가 축복하는 가운데 몽완과 이쁜이는 신방으로 향하고, 새벽 포구에는 사랑을 맹세하는 서동과 서향을 태운 배는 수평선을 향해 떠난다.

캐릭터

김서향 | 17세 / 김 판서의 손녀이자 유일한 혈육이다. 활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무릎 앞에 앉아 책을 많이 읽었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문재를 타고났다고 자랑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식으로 태어난 것이 안타깝다고 한탄한다. 바닷가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다 너머에 있는 모르는 세상에 대해 공상하는 것이 취미. 조선에서, 그것도 여자로 태어난 처지가 통한이다. 그래서 떠나고 싶다.

김판서 | 71세 / 젊은 시절 대과에 등과하여 관찰사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까지 올랐다. 어진 목민관으로,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으나 당쟁에 연루되어 진도로 유배되었다.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함께 유배되었다가 유배지 함경도에서 죽었다. 그 때 며느리도 함께 이승을 버렸다. 부인을 일찍 잃었으나 재취하지 않고 첩을 두지도 않았다. 그후 왕이 바뀌고 신원되었으나 병을 칭하고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손녀 하나를 데리고 진도에서 세상을 버린 사람처럼 여생을 보내고 있다. 소원이 하나 있다면 손녀의 앞날이 평온하기만 바랄 뿐이다.

이쁜이 | 17세 / 서향의 몸종이자 소꿉동무로 절색의 미모를 지녔다. 게다가 똑똑하다 못해 영악하다. 서향과 함께 김 판서에게서 글을 배웠다.

맹몽완 | 18세 / 맹 진사가 늦게 본 귀한 아들로 태몽에 이완 대장군을 보았다고 해서 몽완이라고 이름 지었다. 2 년 전 부터 아버지의 뜻으로 청나라에 유학 중이다. 모험가적이고 쾌락 지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부잣집 아들답게 무책임하다. 베이징에서 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으로 내내 놀고 지내다가 아버지의 명으로 장가들러 돌아왔다. 조선에선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신분 차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베이징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볼 생각이다. 아무래도 여색을 좋아하고 허랑방탕하며 철이 없다.

서동 | 19세 / 맹 몽완의 하인이자 참모이자 부랄 친구로 어릴 적 맹 진사 댁에 종으로 흘러 들어왔다. 동학당의 자식이라는 소문도 있고 역적의 자식이라는 소문도 있고 몰락한 양반의 서자라는 소문도 있다. 워낙 똑똑해서 몽완의 청나라 유학에 딸려 보냈다. 유학 중에 오히려 몽완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 몽완은 무슨 결정을 할 때 반드시 서동에게 묻는다. 그만큼 몽완의 신뢰가 깊다. 신분차별을 벗어난 세상을 꿈꾸고 있다.

맹진사 | 59세 / 몽완의 아비이자 맹 노인의 맏아들이다. 아버지로부터 약간의 재산을 물려받고, 타고난 상재를 발휘하여 청나라와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돈으로 진사시를 통과하여 맹씨 문중에서 최초의 진사가 되었다. 역시 돈으로 권세가들과 친교를 맺어 권세가들과 같은 신분인양 행세를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출신에 대한 피맺힌 한이 있다. 돈으로 못할 것이 없다는 신념가답게 돈으로 족보를 사고 아들을 통해 명망 높은 김 판서와 사돈을 맺어 신분상승의 한을 확실하게 풀고자 한다. 내년이 환갑. 환갑 전에 손주를 봐야한다고 청나라에 유학 보낸 외아들을 장가보내려고 불러들였다.

전이방 | 51세 / 전직 이방으로 맹 진사 댁 집사다. 맹 진사댁의 대소사를 관장한다. 남도 어느 고을의 이방이었으나 부적절한 처신으로 쫓겨난 경력이 있다. 소위 지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