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1908년 원각사에서 공연된 최초의 창작 창극 은세계가 100년을 맞아
2008년 정동극장에서 현대적 시각으로 새롭게 조명됩니다.
은세계가 특별한 세 가지 이유
하나. 국내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의 복원을 이념으로
1995년 설립된 정동극장의 원각사 설립 100년 기념공연 3탄
둘. 마당극과 연극 연출의 대부 손진책 연출,
연극계 최고의 ‘각색달인’배삼식의 극본,
최고의 연극콤비가 만드는 무대
셋. 극단미추(美醜)의 대표배우이자 중장년층이 가장 사랑하는
명배우 윤문식 김성녀 출연

줄거리

어느 황량한 기차역 플랫폼, 고장이라도 났는지 멈춰버린 기차에서 내린 신사는 그곳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낯선 부인을 만난다. 자신이 쓴 연극 <은세계>를 보러 경성에 가는 길이라는 신사에게 부인은 공연은 오래 전에 끝났으며 그때 그가 오지 않았더라는 아리송한 말을 남긴다. 멀리서 포성이 울리고, 정체된 플랫폼은 어느새 1908년의 경성 거리로 바뀐다.
소향과 금파, 그리고 그들 곁에 합세한 부인은 창환, 용환, 만갑, 동백으로부터 문 닫힌 협률사가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개장하여 신극을 통한 백성들의 교화의 장으로 역할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앞장선 이인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들로선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다. 우선 저녁에는 이들의 기존 레퍼토리로 공연을 하고 낮에는 신극 <은세계>의 연습에 매진하는데, 혼란한 시국과 변해버린 세태, 소리꾼으로써의 위상이 급격히 떨어진 자신들의 처지, 낯선 작품을 대하며 느끼는 이질감 등에 대한 고민들로 심경이 복잡한 가운데 조대감이 찾아와 작품 속에서 탐관오리로 그려진 정감사의 자손들로부터 압력이 있었다며 공연을 중단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인직의 친일활동에 대해 비판한다.
과거의 장면을 목도하고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신사, 그는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극 <은세계>를 쓴 작가 이인직이다. 인직은 뒤늦게 자신 앞에서 그 시절을 회고하는 부인이 자신이 버리고 떠났던 전처였음을 알게 되고, 자신은 당시 가망 없는 어둠 속에서 매국노를 넘어 완벽한 일본인이 되고 싶었다는 괴로운 탄식을 하지만 부인은 원망의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단원들은 불안감과 함께 신연극을 시찰하러 일본으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는 인직에 대한 궁금증으로 혼란스러워 하며 연습을 계속하고,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신극 <은세계>의 막을 올린다. 크고 작은 갖가지 소동과 어려움 끝에 연극은 그렇게 끝이 나고, 나라의 주인이 바뀌고, 원각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던 부인 앞에서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여자를 만나 새 삶을 시작했던 인직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떨굴 뿐이다. 함박눈이 내리는 거리를 걸어가며 지난 시간을 추억하는 단원들의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기차는 출발하고, 놓쳐버린 기차와 놓쳐버린 시간, 그리고 항상 늦는 스스로에 대한 탄식으로 흐느끼는 인직과, 그를 안고 가만가만 노래하는 부인의 모습도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눈 속에 점점 지워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