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70, 80년대 전 세계에 디스코 열풍을 안겨다 준 블랙 보컬 보니엠! 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인기 있는 명곡 10곡 중에 두 곡(By the Rivers of Babylon / Mary’s Boy Child)을 랭크한 이 그룹이 2007년 6월 2번째 내한공연을 갖는다. 아직도 입에서 맴도는 수많은 베스트 히트곡들과 함께 보니엠은 우리 기억에 생생히 살아있는 전세계 디스코 세대의 살아있는 전설과 우상 이다. 스웨덴의 그룹”아바”와 함께 세계 최고의 팝 그룹으로 평가 받아 온 블랙 보컬 보니엠이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By the Rivers of Babylon, Happy Song, Sunny, Daddy Cool 등 당대 최고의 히트곡들과 이들의 최신곡들로 이번 내한 무대를 꾸민다. 최근 버라이어티 쇼에서 “하나마나송” “거성체조”를 통해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니엠의 음악은 전세계 모든 세대에게 즐거움을 준다. 70,80세대는 옛 향수를 자극하며 젊은 날의 추억을 회상하고 젊은 층은 새로운 디스코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는 공연이다. 『 70,80년대 대표 뮤직코드, 보니엠
보니엠은 1976년 독일 프로듀서 프랭크 패리언(Frank Farian)에 의해 결성된 후 히트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로팝과 디스코, 레게 리듬을 접목시켜 독특한 디스코 음악으로 디스코 문화의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데뷔 싱글 ‘Daddy Cool’은 2년 동안 3,500 만장이 판매되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연이어 77년 ‘Sunny’, ‘Ma Baker’, ‘Belfast’가 독일 차트 1위, 영국차트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였으며, 78년에는 ‘Rivers of Babylon’이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면서 5주간 정상을 지켰다.
보니엠은 70년대에만 전세계 통산 6천 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앨범 판매를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네스 북 ‘시대를 초월하는 명곡’란에 두 곡이나 랭크를 시켰다.
1978년에는 서구 팝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금단의 지역인 구 소련에서 초청공연을 가졌다.
보니엠의 음악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클럽의 단골 음악이다. 지난 25년 동안 보니엠의 세계적인 성공과 더불어 그들의 음악이 꾸준히 사랑 받아온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무대를 제압하는 디스코의 향연
리즈미첼을 포함한 4명의 싱어들과 8명의 뮤지션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하고 다이나믹한 무대. 디스코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보니엠 공연.
20년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보니엠의 노래와 춤은 변하지 않았다.
70,80년대 우리에게 다가왔던 그 모습 그대로 음악과 의상, 춤을 보여줄 예정이다. 하지만 전혀 낯설거나 촌스럽지 않다.
오히려 복고풍이 다시 시대의 트랜드가 된 요즘 70년대식 보니엠의 공연은 더 모던하고 세련된 감각으로 다가올 것이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애크로배틱 춤, 무대로 뛰어오르고 싶을 만큼 신나는 현장감,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보니엠의 음악은 다시금 한국의 관객들을 압도할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룹 보니엠』
1976년 독일에서 데뷔한 보니엠의 역사는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프랭크 패리언(Frank Farian)의 행보와 궤를 같이한다. 1974년 독일의 프로듀서였던 프랭크 패리언(Frank Farian) 은 \"Baby Do You Wanna Bump\"라는 곡을 만들어 발표한다.
스튜디오 뮤지션을 동원하여 만든 이 작품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당시 TV 방영 중이던 흑인 수사물에서 착안한 \"Boney M.\"이라는 가상의 그룹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서인도제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곡의 분위기에 맞추어 흑인 그룹의 노래인 것처럼 가장하였다.
이 가상 그룹의 노래는 의외의 대성공을 거두며 독일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그러한 활동이 연장선상을 그리며 보니엠 이라는 가상의 그룹으로 이어졌을 때, 그의 음악은 유럽 전역을 흥분시키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무명 싱어들을 기용해 만든 가상의 그룹 보니엠이 너무 유명해진데서 발생되었다.
급기야 이름뿐인 그룹 보니엠의 실체를 찾는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위기감을 느낀 프랭크 패리언(Frank Farian)에게는 “실재”하는 보니엠이 필요하게 되었다.
팬들은 보니엠의 방송 출연을 원하며 텔레비젼 방송국을 자극하게 되고 팬들의 성화에 못 이긴 프랭크 패리언(Frank Farian)은 가상의 그룹이었던 보니엠을 실제의 그룹으로 만들기 위해 오디션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서인도제도 출신 흑인 여성 3인, 남성 1인으로 구성된 혼성 4인조 보니엠이 탄생한 것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특이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보니엠은 초기 멤버교체를 거쳐 리드 싱어 리즈 미첼을 중심으로 카르샤 배렛(Carcia Barrett), 바비 패렐(Bobby Farrell), 마지 윌리암스(Maizie Williams)의 라인 업으로 다져져 팝 월드 최고의 히트메이커로 떠올랐다.
발표하는 싱글마다 골든 디스크를 기록했고, 특히 유럽 및 동양권에서의 그들의 인기는 당대 최고의 그룹 아바를 위협할 정도였다.
데뷔 싱글 “Daddy Cool”은 그러한 좋은 예이다.
76년 \"Daddy Cool\"이라는 싱글을 발표하고 디스코 음악의 열풍에 조용히 편승하면서 성공행진을 이어가게 된다.
단 기간에 총 아홉 개의 골든 디스크를 획득한 이 빅 히트 싱글은 2년 동안 3,500만 장이 판매된 데뷔 앨범의 경이로운 성공으로 이어졌고, 매혹적인 리메이크 넘버 “Sunny”는 그룹의 미국시장 진출을 가능케 했다.
이들은 계속해서 당시 유럽과 미국을 장악하고 있던 유로 팝과 디스코의 특징을 절묘하게 결합시키고 그 안에 서인도제도의 레게 리듬을 접목시키면서 서정성 넘치는 독특한 디스코 음악을 만들어갔다.
70년대 그들의 구가한 인기는 대단해서 77년 \"Sunny\"가 차트1위, \"Love for Sale\", \"Ma Baker\", \"Belfast\"도 동년 독일차트에서 1위, 영국 차트에서도 각각 2위, 8위를 기록하며 당시 미국 최고의 인기 밴드 비지스와 인기 경합을 벌이게 된다.
78년 우리 귀에도 친숙한 \"Rivers of Babylon\"을 처음으로 영국차트 1위에 올리면서 5주간 정상을 지켰고, \"Brown Girl in the Ring\", \"Nightflight to Venus\", \"Rasputin\"을 연이어 히트시킨 그들은 동년 \"Mary\"s Boy Child\"를 정상에 올려놓으며 캐롤 그룹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심어주기도 하였다
이들은 80년대 들어 디스코 음악의 몰락과 함께 많은 디스코 팝 그룹들이 몰락하는 과정에도 \"Happy Song\", \"10,000 Light years\"와 같은 곡을 히트시켰으며, 멤버 교체와 프랭크 패리언(Frank Farian)과의 결별 등 내부 조정과정을 거치면서 리드 싱어인 리즈 미첼을 중심으로 새로운 멤버 라인 업을 구성하였다.
리드 미첼의 보니엠으로 새롭게 구성된 이들은 미국인 토마스 펨버튼을 전문 매니저로 영입, 영국을 중심으로 지난 13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특히 리즈 미첼은 초창기 보니엠 결성 당시부터 모든 음악을 주도해 온 리드 싱어로 보니엠의 정통성을 지켜온 가수이며, 그녀를 중심으로 새롭게 결성된 21세기 보니엠이야 말로 한국 관객들이 그리워하는 그 때의 그 노래들을 완벽히 라이브로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그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