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배신과 추방 vs 귀향과 복수
도덕과 휴머니즘이라는 인간적 의무감과, 뿌리치기 힘든 물질적 유혹이라는 두 선택지 앞에서 갈등하는 보통 사람들의 딜레마와 아이러니를 매우 탁월한 군중심리의 묘사로 표현된다. 다시 말해, 현대의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을 심리적, 정서적 갈등과 모순 즉, 보다 인간답고 맑고 깨끗하게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돈과 명예와 출세와 물욕을 좇아 갈 것인가, 라는 보편적 딜레마가 출발점. 그러면서도 정서적으로 매우 강렬한 모멘텀이 극 전반에 작동하고 있다. 사랑과 육체적 탐닉, 향수, 도덕적 갈등, 치정, 축복받지 못한 임신, 재판, 추방, 유아의 비참한 죽음, 복수, 살인, 미디어의 도구적 무책임함, 개인의 참회, 공공의 이익과 물욕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공공의 도덕과 규범 등등...
줄거리
독일의 한 소읍. 극심한 불황으로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른 상태인 도시에 이 곳 출신인 세계적 갑부 클라라부인이 고향을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모든 사람이 그녀를 환영하러 역으로 나가 기다린다. 말할 것도 없이 혹시라도 그녀가 고향을 되살릴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해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 마침내 도착한 그녀는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상상을 초월한 거부였다. 수상쩍게도 검은 상복차림이다. 거기다 검은 표범 한 마리와 빈 관(棺)하나를 대동한다. 환영만찬에서 클라라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이 도시에 지원하기로 약속하는데, 시민들에게 이 제안은 상상을 초월한 유혹이다. 다만 그 대가로 소녀시절 그녀의 애인이었던 한 남자를 죽여 그 시체를 넘겨달라는 것이다. 그 남자는 옛날 자기의 아이를 밴 소녀 클라라를 차버리고 딴 여자와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클라라가 그 사실을 읍의 재판정에 청원하고 고발하자 재판에서 엉터리 증인을 내세워 클라라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마을에서 내쫓았다는 것. 어린 나이에 임신한 채 마을을 쫓겨난 클라라는 처참한 방황생활을 하게 되고 어린 딸은 얼마 뒤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동요하고 시장은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그 제안을 거부한다. 그러나 여자는 여유 있는 웃음과 함께, ‘기다리겠다’는 말 한마디만 던진 채 가버린다. 그 후 도시의 분위기는 점차 달라지기 시작한다. 일용할 양식조차 궁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외상으로 고급물품을 구입하기 시작하고, 모든 사람들이 사치스런 생활을 누리려든다. 남자는 살해의 위협을 느끼고 경찰에게 여자를 살인교사죄로 처벌할 것을 요구하지만 경찰은 남자의 말이 근거 없다는 이유로 무시해 버린다. 성당의 신부에게 하소연해보지만 신부 역시 영혼의 죄를 씻고 천국을 준비하라는 따위의 선문답으로 남자의 두려움을 외면한다. 한 편 여자가 가져온 빈 관 - 아마도 남자의 시체를 담아갈- 은 매일매일 여자의 하인들에 의해 치장되기 시작하고, 여자는 데리고 온 검은표범을 풀어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사냥에 나서도록 한다. 연애시절 클라라가 그 남자를 불렀던 애칭이 바로 검은 표범이었던 것이다. 남자는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몰래 역으로 나가지만 어느 새 알고 달려온 시민들이 남자를 가로막고 떠나지 못하게 한다. 남자는 벗어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기의 죄와 그 대가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한편 여자는 여덟 번째 결혼식을 고향마을의 성당에서 열기로 한다. 이 소식에 기자들이 몰려오고, 시는 전국적인 명소가 된다. 시장은 이 기회를 이용해 명예롭게 자기들이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강구하는데, 그건 바로 전국의 매스컴이 중계하는 가운데 시민회의를 열어 여자가 고향을 위해 거액을 기부하기로 하고 그 대가로 사소한 정의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것이다. 마침내 시민회의가 열리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