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동양적 감성이 빼어난 컨템포러리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안무가 김은희의 2008년 신작 <천공>, 천공의 끝, 궁극(窮極)이란 스스로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중심과 흔들림 속에 있는 무거움과 가벼움에 관한 일반적인 속성이 밀도(密度)와 어떤 연관관계를 맺으며, 그 곳에 기억을 잃지 않고 도달하기 위해 현재의 모습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려본다. 김은희의 놀라운 속도감과 순발력, 동시에 강한 지속력과 유연함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줄거리
분명히 그 방은 차분했다
공기(空氣)가 길어졌다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래서 더 섬뜩했다
길어진 공기는 보라색을 띄고 똬리를 틀었다가
창을 통해 빠져나간다
그 끝에 감겨 따라 가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무한히 열려있지만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눈이 부셔 미쳐 보지 못했다
미끈한 물성의 점액질 막이
위반과 금기의 투명함으로 가로막고 있음을 말이다
부유체로 떠다닌다 해도 그래서 걸림 없어 보인다 해도
그것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어 보였다
참고 견뎌준 대지(大地)의 형벌을
쉽게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꽃이 떨어지는 속도로 아득하게 낙하했다
그게 끝인지 싶었다
천공의 저쪽 끝이라 믿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공기의 밀도가 숨을 죄여왔기 때문이다
얼른 숨구멍들을 닫았지만
순간의 거울에 비친 기억은 아직 무거웠다
흠집을 낼 필요가 있었다
아주 천천히 멈춘 듯 조심스럽게
결핍(缺乏)은 단절(斷切)을 부르고 그 속에서 네 개의 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