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춤의 고을, 固城(고성)사람들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는 전통예술계에서는 가장 알려진 탈춤 중 하나이다. 그러나 탈춤이 연극의 유산으로 취급되어 오면서 춤의 기능에 대하여 심도 있는 논의를 해오지 못했다. 이에 춤이 가장 많이 집약되어 있는 고성오광대의 갖가지 춤들을 명무전(名舞典) 형태로 무대에 올린다.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

경남 고성의 탈놀이는 낙동강 서편에서 탈놀이를 부르는 이름으로 '오광대 놀이'라 한다. 오광대란 뜻은 동, 서, 남, 북 중앙의 다섯 방위(五方)를 상징하는 다섯 광대(廣大)가 나와서 노는 놀음이라는 뜻이다. 고성오광대 놀이는 여타 탈놀이와 같이 양반 계층의 위선과 형식에 치우친 윤리를 익살스럽게 조롱하고, 파계승에 대한 풍자, 처첩간의 갈등을 통한 서민 생활의 고달픔을 숨김없이 털어 내 보이는 내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탈춤이 일제시대 말에 전승이 끊어지다 50년대 후반쯤 놀이가 복원된 반면 고성오광대는 1946년 당시 고성 읍내에 신식으로 들어선 가야극장 낙성식 기념공연을 계기로 일제시대의 명인들에 의해 곧바로 복원 공연되었고, 6.25 전란 중에도 몇 해 거르는 정도로 단절이 길지 않아, "고형이 유실되지 않고 새로이 복원해 넣은 연출적인 공정 없이 잘 전승되어 가장 원형에 가깝다는" 평을 받으며 종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가장 오래된 춤 문헌을 간직한 춤의 고을
경남 고성은 작은 읍에 불과 하지만 예로부터 내려오는 탈놀이는 그 역사가 깊다. 지금까지 탈놀이의 역사를 현지의 구전에서 찾고 있지만 고성의 경우 100여년전 오홍묵이라는 원님이 쓴 '고성총쇄록'에 그 놀이의 실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그 기록의 끝에 "오래된 관습"이라 이야기된바 사서를 소급해 찾으면 신증 동국여지 승람에서도 그 놀이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지닌 탈놀이이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읍이 가진 폐쇄적인 분위기를 도움 받아 지금도 손실되지 않는 옛 고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탈꾼의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옛 농촌 사회가 선영의 산소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 살아왔듯, 스승의 문하를 멀리 벗어나지 않고 100년전과 다를 바 없이 한 계보를 이루며 탈놀이를 거행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이 탈놀이를 배워간 숫자는 현재까지 3만명을 넘고 있는데 해마다 여름과 겨울에는 축제처럼 밀려들어 춤 세상을 만든다. 전국의 대학 민속패들의 본향이라 할 수 있으며 향민의 춤에 대한 애호를 고려해 보면 전국 제일가는 '춤의 고을'이라 할 수 있다.

고향을 나누는 춤판
고향을 떠난 이들의 가슴에는 아직도 밤내 자갈밭, 군청의 객사마당, 몰디산 언덕 등에서 펼쳐지던 오광대 춤판을 비추는 모닥불이 타고 있으리라는 것이 고성오광대보존회원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춤판을 통하여 고향의 소식을 전하고 서로간의 나눔을 가지려고 한다. 또한 출향인과 재향인의 상호연대를 이루는 것이 "21세기형 고성 문화 인프라 구축"의 한 방법임을 확신하고 있다. 춤을 통한 만남의 자리, 말하지 않아도 통하던 정과 같이 춤은 오래된 통신수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