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피핀>은 9세기 서로마제국의 프랑크 왕국을 배경으로 찰스 대제의 아들 ‘피핀’의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세상의 많은 것을 소유한, 부러울 것 없는 프랑크 왕국의 왕자인 피핀은 영혼이 자유롭고, 인생에 있어 좀 더 특별하고 완전한 것을 찾길 원한다. 피핀은 왕인 아버지를 통해 정치와 전쟁을 비롯해 왕권, 혁명, 살인, 육체의 유희, 일상의 삶, 사랑 등 인간과 인생 안에 있는 자연스러운 모든 것들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경험한다. 절대적인 지도자인 아버지 ‘찰스 대제’와 주어진 세상에서 삶을 즐기며 만끽하는 할머니 ‘버싸’, 친아들의 왕위 계승의 야심을 품고 있는 탐욕스러운 계모 ‘파스트라다’, 평범한 삶 속에서 사랑을 찾기 원하는 젊은 미망인 ‘캐서린’과 그녀의 아들 ‘테오’ 등 여러 인물로부터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극은 피핀이 겪는 여정을 순차적인 흐름으로 보여주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인 ‘리딩 플레이어’(해설자)를 통해 매 장면이 드라마 안에서도 독립적인 주제를 가진 일종의 ‘단막극’의 요소를 띠게 된다.
극의 전개에 관객이 몰입하지 않도록 ‘리딩 플레이어’는 나레이터로서 관객들에게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노래하는가 하면 전체 앙상블을 리드하고, 작가처럼 극 속에서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배후 조종하며, 연출가처럼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지시를 내리기도 하면서 관객들의 극 몰입을 차단하는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주는 역할을 한다.
또, 관객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 등 기존 뮤지컬과는 현격히 다른 극과 관객이 소통하는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매우 모던하고도 코미디적인 요소를 가미해 쉽게 전달되는데, 매 장면마다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는 대사와 희화적으로 그려진 인물들로 하여금 웃음과 유머, 진지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줄거리

막이 오르면 이 공연의 리딩 플레이어(사회자)가 관객들을 신비한 마법의 세계로 초대하고 주인공 피핀 왕자를 소개한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피핀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해 완벽하고 특별한 삶을 살고자 하는 야망에 가득 차 있는 젊은이다.
그 첫 번째 시도로 피핀은 아버지 찰스 대제에게 간청해 비지고스 전투에 참여한다. 찰스 대제의 군대는 승리를 거두지만 살육의 참상을 목격한 피핀은 전쟁의 영웅이 인생의 의미가 아님을 깨닫는다.
회의에 빠진 피핀은 시골에 사는 할머니 버싸를 찾아가고, 버쓰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인생의 즐거움을 마음껏 만끽하라고 조언한다. 이후 피핀은 여자들과의 환락적인 유희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그 역시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다.
고민하던 피핀은 아버지 찰스 대제가 백성들을 탄압하는 것을 보고 또 다른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다. 바로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세계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피핀의 계모 파스트라다는 자신의 친자 루이스를 왕위 계승자로 만들기 위한 계략을 꾸민다. 파스트라다의 귀띔을 받은 피핀은 아를루의 성당에서 홀로 기도를 드리던 아버지 찰스를 살해한다.
왕위에 오른 피핀은 처음엔 세금과 전쟁과 공포가 없는 혁신적인 정치를 펼치지만 곧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결국 아버지와 같은 폭군이 된다. 왕의 자리에서도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피핀은 리딩 플레이어에게 부탁해 아버지 찰스를 부활시키고 왕위에서 물러난다.
이후에도 방황을 계속하던 피핀은 아들이 딸린 미망인 캐서린과 사랑에 빠져 평범한 농장 생활의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위대한 삶에 대한 갈망을 억누르지 못하고 결국 그녀에게서 떠난다.
이제 더 이상 도전할 것도 없는 현실 앞에서 절망하는 피핀. 배우들은 지금까지 어떤 것도 충족을 주지 못한 것과 완벽한 삶이란 없다고 피핀에게 다가가 얘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은 것은 오직 한가지 피날레(최후, 죽음)뿐이다. 리딩 플레이어는 극적인 생의 마감이야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방법이라며 특별한 사람인 너야말로 최고의 클라이맥스를 누릴 자격이 있다며 피핀을 유혹한다. 피핀은 리딩 플레이어와 배우들의 부추김 속에 불꽃 속으로 뛰어들려 하나 순간 죽음을 거부하고, 캐서린과 아들이 나타나자 피핀은 이들의 손을 잡는다.
웅장한 피날레가 망쳐진 것에 분노한 다른 배우들은 피핀을 겁쟁이, 타협군이라며 비난하고는 퇴장한다. 무대는 치워지고 조명은 꺼지고, 피핀과 캐서린이 입고 있던 무대 의상과 가발도 벗겨 진다. 리딩 플레이어는 이제, 관객을 향해 말을 건넨다. 완벽하고 장엄한 피날레를 위해 평범한 삶을 포기할 관객이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가겠다고. 그리고 피핀은 텅 빈 무대에서 캐서린과 함께 인생의 완전한 그 무엇에 대해 노래한다.

캐릭터

피핀 | 프랑크왕국의 젊은 왕자. 자신을 특별하다고 여겨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성취하고자 하는 야망에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여러 도전을 시도함에도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비록 중세 시대가 배경이지만 이 같은 피핀의 모습은 오늘날 젊은 세대의 혼란스런 현실과도 일맥상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리딩 플레이어 | 이 공연을 이끌어 가는 해설자. 나레이터로 관객들에게 공연을 설명하기도 하고 극 속에 들어가 등장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연출가처럼 배우들을 지도하기도 하는 매우 다이내믹한 캐릭터. 리딩 플레이어(leading player)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연을 이끌어 가는 중심인물이자 포시의 안무를 보여주는 주요 인물이다.

찰스 대제 | 프랑크 왕국의 황제. 전쟁과 폭정을 일삼는 군주이지만 한편으론 과학적인 장군이자 현실적인 지도자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버싸 | 피핀의 할머니. 시골에서 홀로 살고 있다. 늙었지만 스스로 아직 매력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삶을 만끽하는 것이 진정한 인생의 의미라고 여긴다.

파스트라다 | 피핀의 계모이자 찰스 대제의 현재 부인. 사치가 심하고 탐욕스러우며 교활한 여인. 친아들인 루이스를 왕위 계승자로 만들고자 하는 야심을 품고 있다.

캐서린 | 어린 아들이 딸린 미망인으로 농장의 주인. 살림 잘하고 부지런하며 수수하면서 잔소리도 하는 등 언뜻 평범한 듯 보이나 매력적이고 현명한 캐릭터

루이스 | 피핀의 이복 동생이자 파스트라다의 친아들. 힘은 세되 머리는 텅 빈 단순무식한 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