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 이것이야말로 진정한‘19금’이다 - ‘소리극 호질(虎叱)’ 청소년이 보지 말아야 할 19금은 단지 질퍽한 성(性)의 묘사만이 아니다 연암 박지원의 <호질>, 2008년 한겨울에 낯뜨거운 ‘19금’으로 되살아나다
우리 소리와 우리 몸짓, 우리 연극으로 세상에 오작교를 놓아온 극단 신명을일구는사람들.
통쾌한 소리극,‘호질’우리시대의 진정한 19금으로 되살아나다!!! 연암 박지원의 ‘호질’이 19금이 되었다고?? 빨간 동그라미 안의 숫자 19? 낯뜨거운 소리와 장면들? 오호라, 잘 하면 이 ‘19금’이란 단어 하나에 난리가 나겠다. 전하고픈 이야기가 그런 질펀한 상상력들에 묻혀지는 것 또한 안타깝겠지만 그것이 공연의 흥행으로 이어진다면 오히려 다행이겠다.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많으니까. 이쯤 되니 무한한 흥분에 찬물 끼얹어 미안하지만 너무 뻔한 상상은 조금만 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덕인 연출의 ‘호질’은 19금이되 ‘진정한 19금’으로 그 의미마저 재탄생 되었으니까 말이다. ‘호질’은 조선시대 최고의 작가였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관내정사(關內程史)'에 수록된 작품이다. 영물인 호랑이가 극중 현자로 추앙 받는 북곽 선생을 꾸짖는 내용으로 대표적 위선의 인물에 대한 신랄한 조소를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대관절 무슨 이유로 이 작품이 ‘진정한 19금’이 되어 대학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인가? 통하였느냐, 류의 소재가 나오나? 그렇다. 낯뜨거운 성(性)의 묘사 장면과 대사? 다분히 많다. 당연히 19금이다. 수위가 심상치 않나? 심상치 않을 수도 있고 심상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19금이다. 자꾸 묻자 연출이 되묻는다. 아니 아주 뚜렷한 19금이라고 말했는데 왜 자꾸 반복하여 묻느냐고. 대본을 아무리 뒤집어 봐도 대사며 몸짓이 전부 성인인증 받아야 하는 19금 정확히 맞는데 딴 얘기만 하는 연출이 야속하다 싶을 무렵에서야 이야길 해준다. 아직도 이런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로 무대를 꾸며야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고. 너무 더러워서 차마 들추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꼭 보여 줘야 했었던 인간들의 모습이었다고. 러닝 타임 내내 눈 버릴까 염려스럽고, 닮을까 두려운 그런 인간들의 작태가 기가 찰 만큼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그랬다. 진리도 진짜도 아닌 것이 세상의 모든 우러름을 한 몸에 받고 사는 이해불가의 세상! 자각조차 못 하는, 완벽하게 이중적이고 부도덕한 요즘 시대의 인간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이덕인 연출의 ‘19금 <호질>’은 바로 그런 인간들에 대해 반(反)하는 이야기로 각색되었다. 어른이기에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어른들의 모습. 바로 그것들을 신랄하게 들춰내어 절대로 배우지 말아야 할 것들로 분류, 19금이라는 단어로 뭉쳐낸 그의 ‘호질’.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설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벅찬 가슴으로 무대를 연 이덕인 연출과 극단 신명을일구는사람들이 우리 소리와 몸짓이 질펀한 19금의 ‘호질’로 당신을 초대하고자 한다. 정말이지 이 작품,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웃고 또 웃다 보면 어느새 마음 속에 새로운 ‘19금’의 의미가 떠오를 것이다. 

보라, 이것이 진정한 19금이다? ? - 청소년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할 19금은 단지 질퍽한 성의 묘사만이 아니다
‘19금’을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세 성인인증을 요하는 빨간 동그라미 안의 숫자 19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당당할 수 없는 혹은 젊음의 접근금지, 어둠 속에서 은밀히 즐겨야 하는 그 무엇, 그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19금의 내용 전부다. 만약 그것이 문화예술 분야에 사용된다면 아주 예민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데 여기 아주 대놓고 ‘19금’을 표방한 소리극 한 편이 나타났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19금을 표방하고 나선 것일까. 시작부터 화제가 된 이덕인 연출의 소리극 <호질>을 만나 봤다. <호질>은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관내정사에 수록된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통용되는 인간상, 즉 대표적 도학자인 북곽 선생과 정절부인 동리자라는 인물을 통해 부패한 도덕적 관념과 이중적 인간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동물인 호랑이에게 꾸짖음을 받는 것으로 설정, 짐승의 먹거리조차도 안 될 정도로 더러운 인간상이라는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대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원작을 각색한 2008년의 <호질> 또한 요즘 시대의 북곽과 동리자를 등장시킴으로써 위선적인 인간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의식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원작과는 다른 형태와 의미를 재창조해냄으로써 색다른 작품성을 선보이고 있다. 첫 번째로 이덕인 연출(극단 신명을일구는사람들 대표)의 <호질>은 진정한 19금이다. 통(通)하는 소재 분명 나오며, 그것의 분량이며 표현하는 대사 또한 민망하리만치 질펀하다. 그러니 19금 맞다. 새로이 각색된 그의 작품에서도 고매한 척, 가진 척, 아는 척 하는 위선의 탈바가지를 등장시켜 그것을 통해 이 땅의 모든 거짓 인간군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함 또한 이어지고 있다. 허나 뭔가 좀 다르다. 그냥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선의 대표적 인물들을 19금으로 규정하여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너무 더러워 차마 들춰내기조차 부끄러웠던 이중적 인간들의 부도덕한 관념들과 행위들은 극 중 지탄을 받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인생의 반전을 요하게 함으로써 건강한 ‘19금으로 재탄생 된 것이다.  두 번째로 2008년의 <호질>은 소리극의 형태로 무대에 오른다. 판소리와 연극의 만남이라면 이해가 쉬울까? 소리극 <호질>은 끊임없이 우리 소리와 우리 몸짓을 연구해온 이덕인 연출의 우리 소리 사랑의 마음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우리의 음악이면서도 지루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소리’. 타루의 <시간을 파는 남자>,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재기발랄한 젊은 소리꾼들이 선보였던 <엄청난 거짓말쟁이 척척생겨> 등 국악뮤지컬이라는 장르로 재탄생,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우리 고유의 전통음악을 대중화시킨 것으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멀게만 느껴졌던 우리의 소리가 연극적 요소인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와 어깨가 한껏 들썩여지는 신명의 무대로 탈바꿈하여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무분별하게 수입되는 외국 문화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것을 지켜가고자 노력해온 이름난 소리꾼 이덕인 연출은, 원작 <호질>의 묘미를 잘 살려낸 각색은 물론 작창까지 맡아 온몸과 마음을 흠뻑 빨아들일 신명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며 벅찬 포부를 밝혔다. 이렇듯 2008년의 <호질>은 밝은 것으로 재생된 온갖 부조리함을 통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절대로 닮지 말아야 할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함으로써 어둡고 은밀했던 19금의 의미를 새로이 써나가고자 한 것이다. 또한 분야와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문화예술작품 속에서 계속 되어온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간 유형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 고유의 문화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것보다 가까울 수 없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의 결과로 거듭 젊어진 우리의 소리가 오는 16일 대학로 성균관 소극장에서 선보여진다. 선 굵은 소리극 <호질>. 극중 인물들을 만나보면서 우리도 우리가 가진 ‘이름’과 ‘위치’에 걸 맞는 내용과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볼 일이다. 또한 우리의 전통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우리가 지금까지 지녀온 가치들에 대한 새로운 전환을 시도해봄은 어떨까 한다. 한 해를 정리하는 지금 이덕인 연출이 들려주고자 했던 ‘19금의 호질’을 만나 흐드러진 소리의 향연 속에서 들려지는 건강한 ‘인간’의 시작을 재발견해보는 장으로 삼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