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내 것이었던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극단 놀땅의 <벚나무 동산>
2014년. 극단 놀땅은 알베르 까뮈의 <칼리큘라>를 공연하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선보여 호평을 얻었다. 놀땅은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해외고전에 도전한다. 이번 작품은 안톤 체홉의 <벚나무 동산>이다. 이 작품은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 초연 이후, 10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공연되고 있는 20세기 대표 희곡이다. 극단 놀땅이 선보이는 <벚나무 동산>은 혼란과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무력한 개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하는 인간의 모습 속에 현재 우리의 시대상을 투영하고자 한다.
무력한 개인, 그래도 지속되는 삶의 동력
표면적으로 <벚나무 동산>은 시대 흐름에 합류하지 못하고 떠나야하는 사람들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끝까지 갖지 못할 것을 갈구하며, 쓰러지고 있는 벚나무 동산을 애도한다. 이 무력함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인 것이다. 이들의 애착과 무력함은 참으로 무용해 보이지만 삶의 희망만큼이나 간절하게 삶을 지속시키고있다. 삶의 기쁨만큼 애도와 상실 역시 삶의 의미를 만들고 살아가는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벚나무 동산>은 무력한 개인을 보여주면서도 그 속에 살아가는 의미와 아름다움이 스며있는 작품이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극단 놀땅의 <벚나무 동산>
2014년. 극단 놀땅은 알베르 까뮈의 <칼리큘라>를 공연하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선보여 호평을 얻었다. 놀땅은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해외고전에 도전한다. 이번 작품은 안톤 체홉의 <벚나무 동산>이다. 이 작품은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 초연 이후, 10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공연되고 있는 20세기 대표 희곡이다. 극단 놀땅이 선보이는 <벚나무 동산>은 혼란과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무력한 개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하는 인간의 모습 속에 현재 우리의 시대상을 투영하고자 한다.
무력한 개인, 그래도 지속되는 삶의 동력
표면적으로 <벚나무 동산>은 시대 흐름에 합류하지 못하고 떠나야하는 사람들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끝까지 갖지 못할 것을 갈구하며, 쓰러지고 있는 벚나무 동산을 애도한다. 이 무력함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인 것이다. 이들의 애착과 무력함은 참으로 무용해 보이지만 삶의 희망만큼이나 간절하게 삶을 지속시키고있다. 삶의 기쁨만큼 애도와 상실 역시 삶의 의미를 만들고 살아가는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벚나무 동산>은 무력한 개인을 보여주면서도 그 속에 살아가는 의미와 아름다움이 스며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