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2009 게릴라 극장 기획 - 배우를 위한 연극
지난해 4시간30분짜리 연극<원전유서>를 선보인 연희단거리패는 대한민국연극상, 동아연극상, 한국연극베스트를 휩쓸면서 명실공히 한국연극을 대표하는 극단으로 거듭났다. 또한 연희단거리패 전용극장이자 젊은 연극인들의 등용문이기도 한 게릴라극장은 2009 문화공간지원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9 연희단거리패가 게릴라극장에서 출발시키는 첫 번 째 무대는 ‘배우를 위한 연극’ 장쥬네의 <하녀들>이다. 이미 2002년, ‘배우중심연극으로 방향전환’을 선언하며 연희단거리패 여배우 4인방을 내세워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된 <하녀들>은 많은 호평과 함께 그해 한국연극 베스트7 에 선정,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작품이다. 연희단거리패 이윤택은 2002년 <하녀들>공연에 앞서 “지금까지 일관되게 추구해 왔던 전통과 창조의 연극적 탐색이 일단락되었다. 남은 것은 우리의 전통의식을 현대 연극으로 재창조 해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단시일 내에 달성될 수 없는 성격이고, 장기간에 걸쳐서 준비되고 탐색되어야 할 연극적 화두인 것이다. 그 동안 연희단거리패는 ‘배우를 위한 연극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고, 작품 또한 부조리극, 서사극, 사실극 등 세계적인 명작들을 선택하여 배우들의 연기력 향상에 주안점을 두게 될 것이다‘ 라고 극단의 작업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후 연희단거리패는 부조리극 <수업><잠들수없다><원전유서>, 서사극 <옥단어><초혼><아름다운 남자><피의 결혼><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사실극 <서울시민1919><인형의 집,노라><세자매>등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일련의 작업 속에 다양한 배우들과 함께 성장해 왔다. 이제 2009년 게릴라극장에서 다시 선보이는 <하녀들>은 연희단거리패의 중심에선 중견, 신인배우들의 열연과 연극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무대가 될 것이다.

꿈과 현실, 그 경계를 넘나들다
2002년 <하녀들> 초연을 시작할 때도 ‘배우를 위한 연극’ 이란 공연 목표를 내세웠었다. 김소희(쏠랑쥬), 이윤주(끌레르) 두 연희단거리패의 젊은 주역을 위한 무대였고, 정동숙,남미정 두 선배가 마담 역을 맡아 주었다. 당시 두 하녀 역을 소화해 내었던 김소희씨는 올해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되었고, 최근 제1회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여자 연기상, 2009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또 한 명의 배우 이윤주씨는 올해 첫 게릴라극장 무대 (역시 젊은 배우를 위한 무대 기획) <울고 있는 저 여자>의 연출을 맡았고, 올해부터 다시 부산 가마골소극장 대표를 맡았다. 7년이란 세월이 그저 흐른 게 아니라 배우의 성장과 함께 흘렀다. 김소희씨는 서울 우리극연구소 1기생 출신으로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한지 15년차가 되었고, 부산 가마골소극장 워크샵 19기생 출신인 이윤주씨는 연희단거리패 입단 14년 차가 되었다. 한눈 팔지 않고 묵묵히 극단을 지켜온 그들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특히 7년 전 쏠랑쥬를 맡았던 김소희씨는 이번에 후배들을 위해 마담 역을 맡았다. 연기 지도와 출연을 겸하게 된 것이다. 7년만에 다시 연출하는 <하녀들>은 일단, 연기 표현의 구체성과 다양성에 대한 탐색이라고 해 두자.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녀들이 얼마만큼 이 난해한 부조리극을 해석하고 표현해 낼 수 있을지 두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7년 전 <하녀들> 연출이 대본의 해석과 장주네의 언어에 대한 탐색으로 진행되었다면, 2009년 <하녀들> 연출은 대본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연극성에 대한 공부의 과정이었다. <하녀들>이 처한 일상적 장면 연기와 그녀들의 꿈의 연기 -천상으로 향하려는 끌레르의 맑고 투명한 연기양식과 지하의 암흑을 파헤치는 쏠랑쥬의 악마적 표현연기를 대비 시켰다. 그리고 이 현실적 리얼리티와 시적 몽상은 어느 순간 겹쳐져서 그녀들의 삶 의식이 된다. 마담의 연기 또한 퇴폐적인 부르조아 삶의 우울을 드러내는 멜랑코리한 연기와 간교한 현실성이 겹쳐져서 연기의 이중성이 드러나도록 요구했다. 로코코적 로맨티시즘이 부조리한 상황과 뒤섞이면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난해한 현대극을 젊은 배우들은 얼마 만큼 소화해 낼 수 있을까......기대해 본다.

해방과 구원을 꿈꾸는 하녀들
장쥬네는 타인을 억압하고 결국 서로 구속하는 사회적 불평등 구조로부터 해방을 꿈꾼다. 그러나 장쥬네의 해방은 사회적 변혁의지로 나아가지 않고 자기 욕망과 억압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해탈의 정신영역으로 나아간다. 집을 나간 마담은 어디로 갔는가? 단두대로? 아니면 애인과 함께 꿈꾸는 낙원의 섬으로? 그 답은 이 연극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녀들의 반란은 결국 죽음을 담보로 한 최후의 연극놀이에 의해 완성된다. 하녀들의 승리는 결국 죽음이며 연극을 통한 구원의 길이다. 장쥬네의 <하녀들>이 강력한 사회성을 띠는 작품이라기보다 개인적 구원의 길을 열망하는 꿈의 연극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연극을 통한 꿈의 완성, 혹은 자기해탈의 길인 것이다. 장쥬네가 자신들이 7년동안 일하던 여주인을 살해한 ‘빠뺑자매 사건’에서 소재를 구하면서도, 작품에서는 마담을 살해하지 못하는 하녀로 설정한 것 또한 장쥬네의 독특한 상상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쥬네는 하녀와 같은 억눌린 기층민중계층의 저항과 혁명을 기도하는 사회성에 작품의 방향을 잡은 것이라기보다 억눌린 기층민중들의 꿈과 자기구원의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런 자기 구원의 길은 마담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삶의 굴레였던 것이다. 감옥에서 쓰여진 이 작품은 어쩌면 이 세계 자체를 거대한 감옥으로 설정하고, 인간의 삶 자체가 죄의식에서 시작된다는, 그래서 스스로 자기 해탈의 길을 찾게 되고, 여기서 연극은 훌륭한 해탈의 과정일 수 있다는 의미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한 극작가의 작품을 연극으로 표현할 때, 극작가의 상상력 속에 있는 모습을 온전하게 표현해 내기란 불가능하다. 어쩌면 완전한 연극은 극작가의 상상력 속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고, 무대로 표현되는 모든 연극은 불완전하다. 특히 장쥬네 같은 난해한 작가를 읽어내고 무대에 표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작업은 가능한 장쥬네란 극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의 처절한 글쓰기를 따라 가려는 노력으로 연습에 임한 셈이다. 이제 우리 연극도 자기만의 독창성을 내세우는 창작극 뿐 만 아니라, 연극적 유산이랄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제대로 해석해 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일말의 희망사항이 깃들어 있었음도 밝힌다.

줄거리

마담이 외출한 의상실, 두 하녀의 은밀한 연극놀이
마담이 외출한 빈집에서 두 하녀가 은밀한 연극놀이를 시작한다. 항상 받들어 모셔야 했던 마담의 역할을 해보면서 평소 불만들을 연극 속에서 풀어보기도 하고, 마담의 거만한 행동들을 흉내내기도 한다. 그러나 연극놀이가 진행되면서 쏠랑쥬가 마담을 살해하려하고 그 순간, 전화가 울린다. 두 하녀가 거짓 밀고하여 감옥으로 보낸 마담의 애인 무슈가 가석방되었다는 내용이다. 자신들의 음모가 실패했고, 밀고자의 정체가 밝혀질 위기에 처한 두 하녀는 진짜로 마담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외출했던 마담이 돌아오고, 약을 탄 차를 끌레르가 억지로 권하지만, 애인의 무죄석방사실을 알게 된 마담은 차를 마시지 않고 하녀를 비웃으며 유유히 나가버린다. 마담을 놓친 두 하녀는 절망 속에서 다시 연극놀이를 시작한다. 끌레르는 언니 쏠랑쥬가 내미는 독배를 마시며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한 꿈을 완성하며 죽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