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기획의도
1980년대 중반 처음 ‘아기공룔 둘리’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이제 30대가 되었다. 이후 계속되는 재방영을 보던 세대도 20대다. 영원한 어린아이 떼쟁이로 살고 싶은 희동이와 시간이 갈수록 엄마가 그리워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둘리. 그들과 자기를 동일시하던 아이들은 이제 어디선가, 누군가는 끊임없이 떠나기를 갈망하고 또 누군가는 잡지 못해 안달을 하는 불완전한 ‘어른’이 되어 낯선 도시를 떠돌지도 모를 일이다.
<나쁜 뜻으로 그런 게 아냐>는 아이와 어른 사이의 어딘가를 헤매는 불완전한 인물들을 쫒아가 봄으로써 어쩌면 우리가 성장하면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작품 설명
널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 서로의 발목을 잡던 그 순간!!
아기공룡 둘리, 그리고 떼쟁이 희동이를 기억하나요?
색다른 관점에서 본 둘리와 희동, 길동의 이야기.
엇갈리는 욕망과 체념, 아이와 어른 사이의 어딘가를 헤매는
불완전한 인물들을 따라가는 아슬아슬한 추억 여행!!

2015년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겨울 공연, <나쁜 뜻으로 그런 게 아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둘리와 희동, 길동을 중심으로 한 짧은 극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둘리 이야기. 머나먼 그 옛날 빙하 타고 내려와 희동이와 친구들을 만나서 지구별에 살던 둘리. 고길동의 집에 얹혀살며 매일같이 말썽을 부리던 둘리. 애타게 엄마를 찾으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둘리. 당신의 기억 속 둘리는 어떤가?

우스갯 소리로 하는 말 중, 길동의 마음이 이해되고 불쌍해지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어른이 된 거다, 라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 우리가 보던 길동은 그저 귀여운 아기 공룡 둘리는 구박하는 어른에 불과했다. 하지만 커서 돌이켜보니, 남의 집에 무단침입해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무전취식하던 둘리와 일당들을 받아주던 고길동이 새삼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희동이는 어떨까? 기저귀를 차고 둘리를 따라다니던 아기 희동. 우리 모두의 애새끼. 우는 것만으로 떼쓰기만으로 둘리를 이 도시에 주저앉히고, 길동의 인내를 당당히 요구하는 희동, 심지어 어렵게 만난 둘리와 엄마를 바이올린 활질 한 번으로 갈라놓은, 이기적인 희동.

모두에게 친숙한 둘리와 희동, 그리고 길동을 중심으로 한 이 드라마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소소한 시도이다.

난 너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고 싶었을 뿐인데…
둘리, 너는 왜 자꾸 떠나려고만 하는 거야.
나의 욕망과 너의 욕망은 왜 자꾸 어긋나고,
어째서 나의 행복이 너의 행복이 될 수가 없는 거야?

작가의 말
90년대 오후 1시면 아이들은 티브이 앞으로 모였다. 나의 유년시절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후 1시, 전국 노래자랑이 끝나고 할머니는 티브이 앞에 자리를 펴고 누워 단잠에 빠진다. 할머니와 나만 남은 방에는 선풍기 한 대만이 터덜거리며 돌아간다. 커튼이 가볍게 살랑인다. 말갛게 오후의 나른함이 고여 있다. 나는 가만히 할머니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서야 안심한다. 그리고 잠든 할머니 곁에서 티브이를 본다. 그렇게 <영심이>와 <2020 원더키드>, <달려라 하니>, 그리고 둘리를 만났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러나 그래서 더 쓸쓸한 시간이었다.

줄거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꿈인 둘리. 둘리와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하는 희동.
둘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시간을 팔아 힘겹게 돈을 번다. 꿈을 이뤄 줄 열쇠는 바이올린. 완벽한 한 번의 연주가 그를 집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그러나 둘리가 바이올린을 켜려는 순간, 활을 든 희동이의 연주가 시작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