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기억할 때, 모두가 떠나고 조용한 가운데 삼촌의 눈물을 닦으며 말하는 소냐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쉬게 될 거에요.” 이 쓸쓸한 대사는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의 빛을 전해주곤 한다. 이번 토모즈 팩토리의 <바냐 아저씨>는 이 대사에 질문을 던진다. 우린 과연 쉴 수 있을까?

이번 공연은 원작의 감춰진 부분들을 모든 인물에게 노출하며 까발린다. 공장의 노동자들처럼 식탁 앞에 일렬로 앉아 자신 앞에 주어진 식사를 ‘먹어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인물들은 각자 앞에 놓인 잔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그들은 오고 가는 혼잣말 아닌 혼잣말, 대화 아닌 대화들 사이에서 서로 원하는 한 마디조차 해주지 못한 채,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짜증과 분노로 대응할 뿐이다.

결국, 그들이 내뱉는 어여쁜 사랑의 고백조차도 식탁 위에 놓인 음식처럼 소비되고, 사라지고, 버려진다. 마치 순서가 정해져 있는 코스 요리처럼, 아무리 커다란 사건이라도 시간으로 흘려보내는 삶처럼, 그들의 간절함과 절박함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 버린다.

이렇게 원작이 내포하고 있는 소통 불능의 상황, 인물 내면의 불안과 절망은 이번 <바냐 아저씨>에서 고스란히 무대 위에 전시된다. 관객 또한 피할 수 없는 식탁 앞에서 괴로워하는 배우들을 보아야만 하는 강요된 시간의 소비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을 뒤로하고 모두가 무대 밖으로, 극장 밖으로 나가 각자의 앞에 놓인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