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하나. 대중적 소재와 코드로 진지한 대화를 건네는 작가 … 이만희
1999년 영화<약속>으로 더욱 많은 관객과 만나기 시작한 이만희는 이후 <보리울의 여름> <와일드 카드> 등 영화 시나리오로 보다 많은 대중과 조우한다.
대표작 <불 좀 꺼주세요> <용띠개띠> <약속> 등에서 보이듯, 그가 관객들에게 펼쳐 놓는 이야기는 사랑과 우정, 인간의 욕망과 배신 그리고 삶의 추억 등 지극히 대중적인… 바꿔 말하면 통속적인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이 단순한 '오락물'로 비하 되지 않고 평단의 인정과 대중의 사랑을 받는 까닭은 쉽고 친근한 소재를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하는 바가 우리 삶의 본질과 진실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불좀꺼주세요>는 작가 이만희가 그 동안 대중적으로 성공했던 그의 연극과 영화들에 보여졌던 수 많은 모티브들이 응축된, 이를테면 현대 드라마/영화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탄탄한 스토리와 역동적인 캐릭터, 특히 이만희 특유의 시적 감수성을 지닌 대사를 만끽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분신과 본신이라는 연극적 장치를 활용하여 획기적인 변신을 추구했던 작품이다. 2004년 여름, <불 좀 꺼주세요>를 통해 다시 한번 작가 이만희의 빼어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둘. 겉 다르고 속 다른 연극 <불꺼!> 진실 혹은 거짓…
- 미성년자 관람불가 연극 <불꺼>를 둘러싼 몇 가지 오해90년대 문화를 향유한 층이라면 <불 좀 꺼주세요>의 명성은 결코 낯 설지 않다. 그러나 명성만큼 오해와 진실에 갖춰진 작품이 바로 이 연극이다. <불좀꺼주세요>를 생각하면 당신은 어떤 것이 가장 처음 연상되는가? 희미한 조명이 밝혀진 무대 위에 전라의 여배우가 등장하고 객석을 가득 중년 남성들의 숨소리만이 가득한 선정적인 극장의 풍경? 혹은 도대체 불을 끄고 뭘 어쩌자는 것인가? 하는 야릇한 상상? <불 좀 꺼주세요>는 우리의 비뚤어진 상상을 아주 가볍게 뛰어 넘는다. <불좀꺼주세요>는 욕망의 발현과 그것의 억압, 그리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의 실체 혹은 실존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나를 나로 살게 하는 사랑. 하지만 그런 사랑에도 조건이 있고, 제도와 억압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뤄지는 사랑보다는 가슴에 묻어두는 미완의 사랑이 더 많고 그렇기에 인간은 '사랑'이라는 짧은 한 마디에 가슴이 저릿해 진다.
사랑, 그리고 그것을 찾아가는 인간에 대한 슬프지만 아름다운 기록…
이것이 바로 <불 좀 꺼주세요>의 실체다.

셋. 한국연극의 미래를 밝힌다 - 빛나는 배우들의 집합소 <불 좀 꺼주세요>
영화나 TV드라마와 달리 연극에서 가장 주목 받는 배우는 바로 30대.
<불 좀 꺼주세요>는 대학로 배우들의 불 오른 연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중년의중후함과, 20대 청춘의 순수함을 감성적으로 풀어갈 사내 역의 조원희, 극단 작은 신화의 대표 배우로 장르를 넘나들며 천의 역할을 소화해 내는 서현철과 김은석.비교적 늦게 시작한 국내 활동에도 불구하고 현재 가장 주목 받는 여배우로 성장 중인 고수민 등 앞으로 한국연극의 미래를 함께 할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사실 <불 좀 꺼주세요>는 배우가 정해진 상태에서 대본이 쓰여진 작품으로 각 인물의 캐릭터와 해당 배우가 정확히 일치하는 작품이다. 때문에 원년 멤버만이 가장 이상적으로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다소 부담스러운 작품이다. 하지만 2004년의 <불 좀 꺼주세요>는 이러한 한계를 오히려 새로운 작품 창출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배우 고유의 스타일과 새로운 해석으로 90년대 <불꺼>와는 또 다른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여섯 명의 배우들은 이 작업을 통해, 이전 작품의 역사에 새로운 역사를 덧 붙이며 스스로의 역사 또한 만들어갈 예정이다.

줄거리

Part I. 사내, 강창영의 이야기
나는 국회의원 강창영. 나에게는 분신인 또 다른 내가 있다. 나와 달리 모든 것에 솔직한.. 나와 마주보고 있는 여인은 내 오랜 그리움이자 아픔인 박정숙. 젊은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한 그녀. 하지만 갑작스레 그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뇌성마비 아들을 데리고 떠난 다른 곳에서 나는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했고 장인의 도움으로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부끄러운 가정사를 숨기기 위해 위선과 허위로 모든 진실을 감춘 체 살아왔다. 지금 나는 지금까지의 내 삶을 파괴하고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 여인에게도 지금껏 숨겨온 진실을 이야기 할 것이다. 나로 인해 원치 않은 삶을 살고 있는, 물기 없이 메말라 부셔질 것 같은 그녀에게 분갈이를 해 줄 것이다.

Part II. 여인, 박정숙의 이야기
지금 조용히 사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나는 박정숙. 나에게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짧은 스커트에 숏 커트, 언제나 솔직하고 도발적인 나의 분신 -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사내는 조금 전 의원직을 사퇴한 국회의원 강창영. 시골학교 교사 시절, 학교의 과수 지기였던 그 남자를 사랑했었다. 순수한 마음으로…어느날 갑자기 나를 버리고 떠나,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국회의원까지 된 그 남자. 내 남편 달호의 친구인 그 남자. 지금 나는 남편이 남겨둔 집에서 그 남자 강창영의 도움을 받아가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시를 쓰고 싶었지만 무엇하나 하지 못한 채…오늘, 그 남자 강창영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뇌성마비 아들의 출생의 비밀과 그 때 그렇게 홀연히 떠난 이유까지…평생을 두고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드디어 때가 온 것 같다. "불 좀 꺼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