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엄마의 어머니에게...손숙의 어머니
우리나라의 최고 지성파 배우로 불리는 손숙은 세련되고 이지적인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어 강한 생명력을 지닌 “우리시대의 어머니” 상을 보여줌으로써 대배우다운 면모를 재삼 확인케 한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전개되는 입심과 유머감각, 특유의 애련한 연기로 표현되는 절정의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수년간 호흡을 맞춰온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는 수준 높은 관극 체험을 선사하며 객석을 웃음과 감동 속으로 몰아넣는다

근원적인 울림, 우리의 어머니!
가치관이 혼돈되고 가족의 공동체 의식마저 희미 해져가는 이 시대에 다시 불현듯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 혼돈의 시대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어머니의 정신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묻어 두었던 그 근원적인 울림, 우리의 어머니를 새삼 기억하고자 한다. 어두운 세월도 싱싱한 생명력으로 관통해가는 어머니를 통해 우리 삶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삶의 흔적을 이미지로 드러내는 연극
연극이 우리의 의식 속에 그려지는 한편의 이미지가 될 수 있는가. ‘손숙의 어머니’는 어머니의 기억 속에 삶의 흔적처럼 남아있는 이미지들을 무대에 표현해 내려고 한다. 그 이미지들은 이미 현실 속에서는 보지 못하는 과거의 재생이거나,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초현실적 모습들이다. 이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을 표현해내기 위하여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무대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차갑고 직선적인 아파트의 실내 구조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따뜻하고 색 바랜 추억의 장면들은 분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우리의 의식을 보이지 않는 세계에까지 가 닿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와 현실을 오가는 환상적인 무대연출-
“손숙의 어머니”는 현실과 희망, 이승과 저승, 산 자와 죽은 자가 한데 어울려 전개되는 이중적 구조 속에서 한 여인의 '살'과 '한풀이'로 전개된다. 글공부 못함, 첫사랑과 헤어짐, 남편과의 억지결혼, 첫사랑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기, 남편의 바람기 등의 개인적 '살(비극)'은 징병 간 첫사랑의 죽음, 분단, 전쟁, 전쟁 중 첫아이의 죽음과 같은 역사적 '살(비극)'로 확대되고 그 살들은 신주단지 풀어내기, 망자를 불러내는 초망자굿 등의 '한풀이'로 풀어지는 것이다. 이중적 구조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연극적 장치들이 동원되고 있다. 무대장치를 보면 현대의 아파트 구조물에 감나무가 들어오기도 하고, 아파트 문을 돌리면 과거가 밀려들어 와 초가삼간이 되고, 아파트 방문을 돌리면 청진항이 나오고, 베란다 뒤에는 고향마을이나 청진항이 펼쳐지기도 한다. 침대가 들어와 병원이 되고, 다시 한번 들어오면 피난막사가 되는 식이다. 배우들은 현재의 인물 사이에 과거의 인물이 들어와 말하기도 하고, 과거의 아이들이 아파트 마루에 있는 컴퓨터를 만지기도 하고, 현재의 사람들이 과거 속에 들어가 같이 놀기도 하는 등, 매우 자유롭게 운용되고 있다. 이 밖에 의상이나 조명도 과거의 환상적인 톤과 현재의 세련되고 현실적인 톤을 계속 뒤바꾸면서 연극적인 재미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줄거리

엄마의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어머니는 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계집년이 글 배워 뭐에 쓰냐’는 어른들 때문에 문맹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네 총각을 사랑했지만, 부모 생각대로 엉뚱한 남자에게 팔려가듯 시집갔습니다. 하필이면 기생 출신인 별난 시어머니를 만난 탓에 여느 시집살이의 몇 배 고된시집살이에 시달리고, 설상가상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마음고생도 겪게 됩니다. 그리고 6.25 전쟁 속에 어머니를 그렇게 아끼던 갸륵한 아들이 학질을 질을 얻어 어머니 품에서 죽게 됩니다. 문맹인 채로 지냈던 어머니는 마침내 손주한테 한글을 깨우치고, 자신의 이름 ‘황 일 순’이라는 석 자를 유리창에 쓰며 죽은 남편을 따라 저승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