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해방과 구원을 꿈꾸는 하녀들
장쥬네는 타인을 억압하고 결국 서로 구속하는 사회적 불평등 구조로부터 해방을 꿈꾼다. 그러나 장쥬네의 해방은 사회적 변혁의지로 나아가지 않고 자기 욕망과 억압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해탈의 정신영역으로 나아간다. 집을 나간 마담은 어디로 갔는가? 단두대로? 아니면 애인과 함께 꿈꾸는 낙원의 섬으로? 그 답은 이 연극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녀들의 반란은 결국 죽음을 담보로 한 최후의 연극놀이에 의해 완성된다. 하녀들의 승리는 결국 죽음이며 연극을 통한 구원의 길이다. 장쥬네의 <하녀들>이 강력한 사회성을 띠는 작품이라기보다 개인적 구원의 길을 열망하는 꿈의 연극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연극을 통한 꿈의 완성, 혹은 자기해탈의 길인 것이다. 장쥬네가 자신들이 7년동안 일하던 여주인을 살해한 ‘빠뺑자매 사건’에서 소재를 구하면서도, 작품에서는 마담을 살해하지 못하는 하녀로 설정한 것 또한 장쥬네의 독특한 상상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쥬네는 하녀와 같은 억눌린 기층민중계층의 저항과 혁명을 기도하는 사회성에 작품의 방향을 잡은 것이라기보다 억눌린 기층민중들의 꿈과 자기구원의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런 자기 구원의 길은 마담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삶의 굴레였던 것이다. 감옥에서 쓰여진 이 작품은 어쩌면 이 세계 자체를 거대한 감옥으로 설정하고, 인간의 삶 자체가 죄의식에서 시작된다는, 그래서 스스로 자기 해탈의 길을 찾게 되고, 여기서 연극은 훌륭한 해탈의 과정일 수 있다는 의미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한 극작가의 작품을 연극으로 표현할 때, 극작가의 상상력 속에 있는 모습을 온전하게 표현해 내기란 불가능하다. 어쩌면 완전한 연극은 극작가의 상상력 속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고, 무대로 표현되는 모든 연극은 불완전하다. 특히 장쥬네 같은 난해한 작가를 읽어내고 무대에 표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작업은 가능한 장쥬네란 극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의 처절한 글쓰기를 따라 가려는 노력으로 연습에 임한 셈이다. 이제 우리 연극도 자기만의 독창성을 내세우는 창작극 뿐 만 아니라, 연극적 유산이랄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제대로 해석해 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일말의 희망사항이 깃들어 있었음도 밝힌다.
장쥬네는 타인을 억압하고 결국 서로 구속하는 사회적 불평등 구조로부터 해방을 꿈꾼다. 그러나 장쥬네의 해방은 사회적 변혁의지로 나아가지 않고 자기 욕망과 억압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해탈의 정신영역으로 나아간다. 집을 나간 마담은 어디로 갔는가? 단두대로? 아니면 애인과 함께 꿈꾸는 낙원의 섬으로? 그 답은 이 연극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녀들의 반란은 결국 죽음을 담보로 한 최후의 연극놀이에 의해 완성된다. 하녀들의 승리는 결국 죽음이며 연극을 통한 구원의 길이다. 장쥬네의 <하녀들>이 강력한 사회성을 띠는 작품이라기보다 개인적 구원의 길을 열망하는 꿈의 연극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연극을 통한 꿈의 완성, 혹은 자기해탈의 길인 것이다. 장쥬네가 자신들이 7년동안 일하던 여주인을 살해한 ‘빠뺑자매 사건’에서 소재를 구하면서도, 작품에서는 마담을 살해하지 못하는 하녀로 설정한 것 또한 장쥬네의 독특한 상상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쥬네는 하녀와 같은 억눌린 기층민중계층의 저항과 혁명을 기도하는 사회성에 작품의 방향을 잡은 것이라기보다 억눌린 기층민중들의 꿈과 자기구원의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런 자기 구원의 길은 마담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삶의 굴레였던 것이다. 감옥에서 쓰여진 이 작품은 어쩌면 이 세계 자체를 거대한 감옥으로 설정하고, 인간의 삶 자체가 죄의식에서 시작된다는, 그래서 스스로 자기 해탈의 길을 찾게 되고, 여기서 연극은 훌륭한 해탈의 과정일 수 있다는 의미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한 극작가의 작품을 연극으로 표현할 때, 극작가의 상상력 속에 있는 모습을 온전하게 표현해 내기란 불가능하다. 어쩌면 완전한 연극은 극작가의 상상력 속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고, 무대로 표현되는 모든 연극은 불완전하다. 특히 장쥬네 같은 난해한 작가를 읽어내고 무대에 표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작업은 가능한 장쥬네란 극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의 처절한 글쓰기를 따라 가려는 노력으로 연습에 임한 셈이다. 이제 우리 연극도 자기만의 독창성을 내세우는 창작극 뿐 만 아니라, 연극적 유산이랄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제대로 해석해 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일말의 희망사항이 깃들어 있었음도 밝힌다.
줄거리
마담이 외출한 빈집에서 두 하녀가 은밀한 연극놀이를 시작한다. 항상 받들어 모셔야 했던 마담의 역할을 해보면서 평소 불만들을 연극 속에서 풀어보기도 하고, 마담의 거만한 행동들을 흉내내기도 한다. 그러나 연극놀이가 진행되면서 쏠랑쥬가 마담을 살해하려하고 그 순간, 전화가 울린다. 두 하녀가 거짓 밀고하여 감옥으로 보낸 마담의 애인 무슈가 가석방되었다는 내용이다. 자신들의 음모가 실패했고, 밀고자의 정체가 밝혀질 위기에 처한 두 하녀는 진짜로 마담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외출했던 마담이 돌아오고, 약을 탄 차를 끌레르가 억지로 권하지만, 애인의 무죄석방사실을 알게 된 마담은 차를 마시지 않고 하녀를 비웃으며 유유히 나가버린다. 마담을 놓친 두 하녀는 절망 속에서 다시 연극놀이를 시작한다. 끌레르는 언니 쏠랑쥬가 내미는 독배를 마시며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한 꿈을 완성하며 죽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