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오가는 100분간의 1인극…남다른 충실감을 느끼죠”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손상규·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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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일 개막하는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동명의 프랑스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1인극이다. 극은 새벽 해안가에서 서핑 보드에 오른 청년 시몽이 온 몸의 감각을 열고 파도를 타는 장면에서 시작해 그가 불의의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오르며 벌어지는 24시간의 기록을 담았다. 생동하던 한 생명이 빛을 잃어가는 순간, 그리고 그 죽음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여러 인물들의 ‘섬광 같은 순간’들이 농밀하게 압축된 작품이다.  

지난 20일, 이 작품의 초연(2019)을 성공적으로 이끈 배우 손상규·윤나무가 재연을 앞두고 연습 중인 현장을 방문했다. 두 번째 공연이면 조금은 편해질 법도 한데, 이들은 잠깐의 침묵과 미세한 표정 변화, 짤막한 감탄사가 남기는 미묘한 여운까지 치밀히 되짚으며 작품을 다듬어가고 있었다. 극중 시몽이 파도를 타는 순간, 배우들이 입은 검은 셔츠 뒤로 팽창하는 근육과 심장 박동이 생생히 느껴졌다. 더욱 촘촘히 완성될 공연을 기대하게 한 두 배우의 이야기.

Q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초연(2019)은 두 분께 어떤 경험이었나요. 어떤 마음으로 재연에 참여하셨는지도 듣고 싶고요.
윤나무:
무대에 혼자 서는 경험을 한다는 것, 그렇게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고 행복했어요. 원작은 프랑스 소설이지만, 한국의 관객 분들과 맞닿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 같고요.

근데 개인적으로는 (초연)당시 공연 횟수도 적었고 ‘더 잘 전달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더 많은 관객 분들과 많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재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손상규: 일단 작품 외적으로는 이 팀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공연을 다시 한다고 했을 때 같이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설렜죠. 그리고 공연에 대한 기억은, 무대에 들어가기 전에 어딘가 다른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느낌이었어요. (극중 펼쳐지는) 24시간과 거기서 확장되는 다른 세계로 다녀오는 느낌 자체가 되게 좋았어요. 나무가 얘기한 것처럼 초연 때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있어서 하나씩 더 깊이 만나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기회가 생겨서 다시 출연하게 됐죠.
 
▲ 손상규

Q 아까 연습하시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세세한 부분까지 논의를 하시더라고요. 텍스트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윤나무:
(초연 후) 1년 반쯤 시간이 흘렀고 저라는 사람도 좀 달라졌을 테니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이 많죠. 근데 어떤 한 지점을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워요. 각 인물에 대한 좀 더 심도 깊은 디테일을 찾기도 하고, 관객 분들이 좀 더 몰입하게 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를 깊게 파고들어 찾아가고 있어요.

손상규: 확실히 안 보이던 것들이 좀 보여요. 예전에는 ‘아, 이렇구나’하고 (대본상의) 설명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종종 있었다면, 이제는 설명을 넘어서 본질적으로 그 인물의 삶에서 중요한 것들, 딜레마, 심장을 뛰게 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있어요. 전체적인 틀은 크게 바뀌지 않지만, 그 과정이 저에게는 굉장한 기쁨과 충실감을 주고 있어요. 만약 몇 년 뒤에 이 작품을 다시 한다면 또 달라질 것들이 있을 것 같은, 그런 매력이 있는 작품이죠.
 
▲ 윤나무

Q 혼자 100분간 무대를 이끌어야 하는데, 다른 공연과 어떻게 다른가요? 
손상규:
다른 배우와 호흡을 주고받으며 그 시너지효과로 공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 안에서 쌓아가는 리듬과 에너지로 공연이 진행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오롯이 무언가를 경험하는 충실도가 좀 다른 것 같아요. 물론 앙상블 공연도 굉장히 좋아해요. 다른 배우들이 주는 자극과 감각들이 나를 생각지도 못한 지점으로 이끌어 주기도 하거든요. 반면에 이건 아까 말씀드린 ‘충실도’라는 매력이 있죠.

윤나무: 항상 동료들과 공연을 하다가 처음 혼자 무대에 서는 것을 상상했을 때는 악몽을 꾼 기분도 들었어요. 대사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혼자 무대에 덩그러니 서 있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초연 때 실마리가 풀렸던 지점이 있어요. ‘내가 혼자 무대를 이끌어 간다’는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시몽과 그 주변 인물들을 한 명씩 진심으로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걸 알았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이 편해지고 쾌감도 느꼈던 것 같아요. 내가 이런 좋은 경험을 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너무 행복한 순간을 지나고 있죠.
 
▲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2019년 공연(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Q 뇌사 판정을 받은 청년 시몽 랭브르를 비롯해 시몽의 어머니와 여자친구, 의사 등 여러 인물들을 연기해야 하는데, 특히 접근하기 어려웠던 인물이 있나요?
윤나무:
제가 지금 37세이고 미혼인데, 그보다 위의 연령대에 있는 캐릭터들, 결혼을 했거나 부모인 인물들에 다가갈 때 좀 어렵고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어요. 시몽 랭브르의 부모나 중년의 의사 같은 인물들이요. 형님을 보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죠.

손상규: 사실 표현하는 것보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이 인물을 이런 사람으로 가져가야 될지, 저런 사람으로 가져가야 될지, 둘 다 말이 되는데 어떤 것이 더 적확할까, 어떤 것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가장 잘 맞을까를 결정하는 것이 어렵죠. ‘왜 이랬을까? 실제로는 어떨까?’라는 질문도 해보고 연출이 어떤 질문을 던져주면 ‘아, 이 사람의 마음은 사실 이런 게 아니었을까?’하는 것들이 생겨나면서 적확한 지점을 찾아가고 있어요. 나무를 보면서도 많이 배우고요.
 
Q 연습과정에서 서로의 접근방식이나 관점이 달라서 흥미로웠던 부분을 꼽으신다면.
손상규:
너무 많아요. 저는 더블캐스트로 공연을 하는 것이 처음이었어요. 같은 텍스트를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걸 처음 본 거죠. 보다 보면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새로운 것을 굉장히 많이 발견하게 돼요. 우리 팀이 합의한 전체적인 틀이나 접근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각 인물들의 사소한 사유들 같은 걸 서로 많이 배워요.

윤나무: 형님은 제가 본 배우들 중에 ‘가장 배우같은 배우’에요. 동물적인 감각이 뛰어난 배우가 있고 이성적인 배우가 있는데, 형님은 그 두 가지를 굉장히 적절히 다 갖고 계세요. 그런 사유와 감각을 배우고 싶고, 형님 정도의 나이가 됐을 때 저런 배우가 되어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그런 순간들이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되게 많았어요. 일상 생활에서도 본 받을게 너무 많은 형님이자 배우에요. 같이 있으면 그냥 되게 좋아요.
 
Q 시몽이 파도를 타는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첫 장면처럼, 내 생애 가장 생동했던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인가요.
윤나무:
지금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연습하고 있는 순간? 이렇게 생동감이 넘칠 수가 없어요(웃음).  

손상규: 어떤 순간을 꼽기는 어렵고, 죽기 전에 어떤 순간을 떠올린다면 아마 아이들이 생각날 것 같아요. 아쉽지만 잘 만났어, 라는 기분으로.

그리고 막 생동했던 순간은 아니지만 유난히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있어요. 옛날에 뉴질랜드에 어학연수를 갔었는데, 어느 날 해안 앞 잔디밭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요. 학교를 관두고 그냥 놀고 있었거든요(웃음). 그날 낮에 햇빛을 받으면서 앉아 있는데 저쪽 버거킹에서 어떤 아저씨가 청소를 하고 있는 거에요. 그 때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원하는 게 그렇게 많지 않구나, 이 정도면 충분하구나. 그냥 저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순간의 바람과 햇빛, 한적함이 선명히 기억에 남았어요.
 
Q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죽음과 장기이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이 질문을 드려보고 싶었어요. 인간에게 육신이 사라져도 남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윤나무:
있죠. 그 사람의 삶이 세상에 남겨 놓고 간 기록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제3자가 봤을 때 느끼는 무언가가 있고, 그 삶의 기록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형체는 없더라도 그 사람이 갖고 있었던 가치 있는 기록은 분명히 어떤 영향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해요.

손상규: 종교는 없지만,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있어요. 인생의 전체 타임라인이 이미 통째로 존재하고, 그 안에서 인지되는 순간들에 따라 (삶이) 현재와 과거, 미래로 나뉘는게 아닐까, 때때로 거대한 압력이 있을 때는 그 타임라인이 어느 지점에서 틀어져서 전체 삶의 모습도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왜 그런 걸 믿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상대성이론이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들에서 시작된 생각 같아요.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들, 혹은 데자뷰 같은 것도 그 타임라인 밖의 것들이 갑자기 어떤 이유로 영향을 미쳤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했더니 좀 위안을 받은 부분이 있어요. 이미 (삶이) 덩어리로 존재하고 있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조바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타임라인을 좀 더 충실하게 살아내면 되지 않나 싶거든요.
 
Q (손상규 배우가 속한)양손프로젝트의 1인프로젝트 첫 작품 ‘데미안’도 곧 개막합니다. ‘데미안’에 창작자로 참여하셨는데, 어떤 작품인가요?
손상규:
둘 다 소설 기반이지만,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극중 인물들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데미안’은 배우에게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텍스트가 배우를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중점을 두고 공연 형식을 실험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죠.

애초에 이런 질문을 했거든요. ‘’데미안’은 이미 책으로 존재하고 있는 훌륭한 작품인데, 왜 이걸 굳이 공연으로 만들어야 할까?’. 그런데 ‘데미안’을 손상규가 읽었을 때와 양종욱이 읽었을 때, 윤나무가 읽었을 때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지잖아요. 그렇다면 그 다르게 받아들여진 것을 공연하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나는 이걸 이렇게 받아들여, 이게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해’라는 것을 공유한다는 관점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Q 윤나무 씨는 최근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데, 장르를 넓혀 활동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셨나요. 
윤나무:
한 5년 전부터 드라마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네요. 근데 카메라 앞이든 무대 위든 제가 어떤 캐릭터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본질적인 과정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를 맡든 그 뿌리는 저로부터 시작하는 거고요.

예전에는 매체와 무대 사이에 미세한 경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런 경계도 거의 허물어진 것 같아요. 그게 더 좋고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배우로서 제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고, 공연이나 드라마, 영화를 굳이 구분하고 싶지는 않아요. 앞으로도 더 경계가 없어진다면 배우가 마음껏 뛰어 놀기에 더 좋은 환경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Q 앞으로의 계획 혹은 바람이 있다면.
손상규:
연기하는, 그리고 연극을 만드는 즐거움을 오래오래 느끼며 작업하고 싶어요. 이 일이 내게 즐겁고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할 수 있으면 좋겠죠. 그리고 (양손프로젝트의) 1인극 중장기 프로젝트는 공연 일정을 미리 잡아 놓지 않고 원하는 만큼 충분히 준비를 한 다음 공연을 해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서, 내년에 그걸 만드는 것이 굉장히 기대돼요.
 

윤나무: 저는 일단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을 잘하고,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촬영을 계속 할 것 같아요. 바람이 있다면 가족들이 건강하고, 제가 사랑하는 동료 분들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해서 지금처럼 하고 싶은 거를 정말 80세 넘어서까지 하는 거에요. 이렇게 좋은 분들이 연극을 만들어야 세상에 좀 빛이 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연출님과, 일다와, 정동극장과, 모두 다 건강하고 행복하시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계속 제 마음이 동하고 이끄는 대로 주체자로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제가 하는 연기에 순수와 진정성이 있을 것 같아요. 세상과 부딪히다 보면 이리저리 휘어질 수도 있겠지만, 잘 부여잡고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꾸준히 관객 분들과 만나고 제 연기를 봐주시는 분들께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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