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윌리엄스를 그리며,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뉴욕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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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토마스 슐만 각색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뉴욕 초연

갑작스런 사망소식으로 세상을 안타깝게 했던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대표작 1989년 동명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가 지난 11월 중순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화제 속에 초연됐다. 원작의 명성도 한 몫 했지만, 교탁 위에 우뚝 서서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을 외치던 존 키팅 선생을 스크린이 아닌 무대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제작 초반부터 큰 관심을 모았고, 원작자 토마스 슐만이 연극대본을 집필했고, 뮤지컬 <스위니 토드>와 <컬러 퍼플>의 존 도일이 연출한다는 소식까지 알려지면서 프리뷰 전부터 티켓 전쟁이 시작됐다.
 
로빈 윌리엄스가 살아 돌아온 듯, 제이슨 서데이키스의 존 키팅

뉴욕 타임스의 비평가 벤 브랜틀리는 이번 연극 리뷰에서, 원작 영화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명대사 하나로 관객의 감정 선을 자극하며 인기를 노린 극”에 불과했지만, 로빈 윌리엄스의 카리스마 넘치는 명연기가 작품을 살렸다고 언급했다. 그의 평대로, 로빈 윌리엄스는 그만의 시원시원한 목소리, 장난기 넘치는 따뜻한 눈빛으로 모두가 꿈꾸는 인생의 진정한 스승인 존 키팅 선생을 완성시켜 관객을 사로잡았고, 그를 통해 영화가 전하고자했던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과 개성을 중시하는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부담스러울 수 있었던 이 배역에 , 시트콤 <30록>, 영화 <호러블 보스> 등으로 유명한 배우이자 코미디언 제이슨 서데이키스가 발탁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작품에 대한 기대 또한 더욱 높아졌다.

연극이 시작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제이슨 서데이키스의 키팅 선생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트위드 재킷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교실로 들어와,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며 학생들 사이를 누비기 시작하는 순간 그는 로빈 윌리엄스가 서데이키스의 모습으로 살아 돌아온 듯 관객을 홀리기 시작한다. 그는 로빈 윌리엄스보다 좀 날씬하고, 샤프한 느낌이지만, 연극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무대에 서 온 듯 자연스러운 연기와 중후하고 깊은 바리톤의 목소리로 극장을 “시가 흐르는 키팅 선생만의 독특한 수업시간”으로 만든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리워해온 우리의 우상이 전하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너의 인생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라” 라는 주옥같은 가르침은 원작에서 받았던 감동을 기억하며 감동받을 준비가 된 관객의 가슴을 툭툭 두드린다.
 
“왜 여러분은 남들과 똑같이 박수를 치고 있나요?”

<뉴욕 타임스> 리뷰처럼,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존 키팅이 네 명의 학생들에게 교실에서 행진을 시키는 장면이다. 처음 학생들은 각각 수줍게, 활기차게, 잔뜩 긴장해서, 과시하듯이 각자의 개성대로 걷기 시작하지만, 곧 서로의 패턴에 맞춰 똑같이 발맞춰 걷게 되고, 그때 키팅 선생은 관객에게 그들의 행진에 맞춰 박수를 쳐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가 됐을 때, 미스터 서데이키스는 관객을 향해 대중 속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조하면서, “만약 여러분이 각자의 개성대로 다르게 걸어야한다고 믿는다면, 왜 지금 남들과 똑같이 박수를 치고 있나요?”라고 질문하며 허를 찌른다.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이 충족되는 순간이었다.

원작의 아쉬움을 고스란히 가져온 무대

피터 위어 감동이 연출한 원작 영화는 1959년, ‘전통, 명예, 규율, 최고’를 강조하는 보수적인 입시사관학교 웰튼을 배경으로, 학생의 타고난 개성과 자유를 말살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를 비판해 큰 이슈를 일으키며 아카데미 각본상과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 음악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영화 상영 당시,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많은 문제점도 지적됐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버라이어티>는 이번 연극을 두고 “슐만이 자신의 원작을 더 확장하고, 등장인물을 더 발전시키거나 또는 스토리와 주제를 더 심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하며, “영화의 감동을 기억하는 팬을 만족시킬 수는 있겠지만, 나머지 관객을 위해서는 작가가 연극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writer didn’t seize the play)”라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품 후반에 닐이 자살하는 장면 이후부터 스토리를 압축시키는 바람에 원작에서의 감동도 다 전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향수를 부르는 존 도일의 심플한 연출

처음 극장에 들어섰을 때,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는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연상시켰다. 억압적인 교육현실 비판이라는 주제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이 주로 학생이라는 점, 그리고 심플한 무대연출. 교실로 세팅된 극장, 막이 오르기 전 학생 배우들이 객석을 돌아다니며 플레이 빌을 직접 나눠주는 깜짝 이벤트, 책을 이용한 소품 사용, 그리고 뮤지컬 연출의 거장답게 아카펠라를 음악적 장치로 사용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이디어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책상 위에 우뚝 선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최소한의 소품 사용 콘셉트 때문인지 그 장면 또한 압축적으로 표현된 부분은 많이 아쉬웠다.

이번 작품의 후기를 준비하며 개인적으로 <죽은 시인의 사회>는 원작도 연극도 미국보다는 우리나라 정서에 훨씬 잘 맞는 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승전결을 강조하는 미국과는 달리 내면의 갈등과 정서에 더 쉽게 공감하는 우리 정서도 그렇고, 미국에서는 억압적인 교육현실이 과거의 이야기가 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오늘의 이야기이니까. 그래서 영화 상영 당시에도 미국에서는 로빈 윌리엄스 밖에 볼 게 없다는 평을 받지 않았을까? 이번이 초연이었던 만큼, 앞으로 잘 디벨롭 돼서 만약 우리나라에서 공연된다면 누가 키팅 선생이 되면 좋을까? 나날이 치열해져가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개선될 기미 없이 열악해져가는 교실 교탁에 우뚝 서서 “너만의 목소리를 찾아라”라고 외쳐줄 우리의 키팅 선생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강경애
뉴욕에서 뮤지컬극작 전공 후,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 <비 라이크 조> 등을 쓴 작가. 뉴욕에 살며 오늘도 뮤지컬 할인 티켓 구할 방법과 재미있는 작품 쓸 방법을 궁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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