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투알 발레 갈라> 발레리나 김지영&피아니스트 김선욱
작성일2009.11.17
조회수22,498
해가 부쩍 짧아져 어둠이 미리 내려와 있던 11월의 어느 늦은 저녁, 쌀쌀한 초 겨울의 바람을 피해 어서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기자의 발걸음을 잡는 따뜻한 인사가 울린다. 언제나 그녀가 그랬듯, “안녕하세요”라며 낯선 이에게 먼저 웃는 사람은 발레리나 김지영이었다. 취재가 만남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 요기 할 빵이 든 비닐 봉투를 들고 서 있는 김지영과 그 뒤에 순하게 웃으며 커피를 홀짝이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함께이다. 마치 출근길에 이웃을 만난 것처럼, 오래진 않았지만 문득 반가운 친구를 만나 “잘 지냈어?”를 건네는 것처럼 일상의 하루와 같이 발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 그러나 결코 일상처럼 특별하지 않을 무대를 향해 가는 이들을 따라가 본다.
국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계, 클래식계 별들이 모였다. 한 사람의 솔로 공연으로도 관객들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이들이 한 무대에 같이 선단다. 발레리노 김용걸, 발레리나 김지영, 서희, 강화혜의 무용과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의 연주가 함께하는 발레 갈라 무대에서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낯선 발레 갈라와 무대 위에서 연주자의 라이브 음악이 함께 한다는 시도가 <에투알 발레 갈라>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외국에서는 많은 안무가들이 이런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죠. 피아노 뿐만이 아니라 첼로 솔로와 발레 무용수가 같이 하기도 하고요.”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한 후 18살의 나이로 최연소 국립발레단에 입단했지만 2002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으로 향해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던 김지영이 다시 2009년 국립발레단으로 재입단 했을 때 그녀를 더 가까이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많은 발레 팬들은 설레었다. 1998년 USA 국제발레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동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파리국제무용콩쿠르 듀엣1등(파트너 김용걸), 2001년 러시아 카잔 국제발레콩쿠르 여자 은상 및 베스트 예술상 수상 등 세계 무대에서 한껏 빛을 발하고 있는 그녀가 해외에서 큰 매력으로 경험했던 갈라 무대를 이제 국내 무대에 선사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오케스트라는 무대 밑에 있으니 조금 떨어진 느낌이 들 수 있거든요. 무대 위에서 연주자와 같이 호흡하니까 더욱 주목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물론 연주자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더 안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겠지만, 반대로 잘 맞는다면, 그 순간에만 나올 수 있는 뭔가가 나올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무대의 매력이에요.”
그러고선 김지영은 흔쾌히 “이번 무대 정말 잘 될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 한다. 오늘이 같이 하는 첫 연습이나 무언가 ‘통하는 호흡’을 이미 느낀 모양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에게서 말이다.
“처음에는 막 두렵기도 했던 게, 피아니스트는 실내악도 할 수 있고, 성악 반주도 할 수 있고, 조금 다르게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긴 하지만 발레는 또 다른 분야이잖아요. 같은 예술이긴 하지만, 항상 첫 경험은 두렵죠.”
2006년, 열 여덟의 나이로 동양인 최초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해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지난 해 피아니스트 에프게니 키신, 첼리스트 요요마 등이 소속된 클래식 기획사 아스코나스 홀트와 계약 이후 영국을 주거지로 하며 활발한 연주 활동을 벌이고 있다. 피아니스트로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그는 낯선 무대를 두고 두려움과 설레임을 모두 맛보고 있는 중이란다.
“근데 참 좋은 게, 이런 기회를 통해서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됐다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을 정말 좋은 무용수와 함께 하게 됐다는 거에요. 그런 행복감 때문에 이번 무대도 하게 된 거죠. 무언가를 해 봤다는 건 앞으로도 제게 큰 자산이 되니까요.”
말 못 놓게 하는 동생, 침 흘리게 하는 누나
김지영과 김선욱의 만남은 지난해로 거슬러 간다. 예술의전당에서 연주를 하던 김선욱을 본 그녀의 첫 인상은 “파워풀”이었단다.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음악회 가는 건 좋아해요. 무용하는 사람은 음악을 잘 알고 익히고 또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선욱씨를 본 당시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굉장히 파워풀한 느낌을 크게 받았어요.”
잠시 “언제지?”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선욱이 문득 큰 웃음을 짓는다. “맞다, 머리 짧았을 때죠?”하고 시간을 가늠한 그에게 김지영이 “그 때 참 멋있었어요”하며 농반진담의 재치를 던진다.
“나이는 저보다 한참 어린데(웃음). 예술가로서는 정말 제가 말을 못 놔요. 몇 번 만났고 하니 말을 놓을 수 있을 법 한데, 그렇게 못할 정도로 존경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예술가죠. 만나면서 늘 많은 걸 배워요. 나중에도 좋은 작업 또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김선욱이 발레를 만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 따라 호두까기 인형 보러 간 적이 있었지만 작정하고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런 그의 첫 무대는 마침 김지영이 올 초 주역으로 섰던 <신데렐라>였다.
“진짜 시쳇말로 침 흘리면서 봤어요. 정말, 와, 어우…. 경외심 드는 거 있죠. 뭔가로 머리를 꽝 얻어맞은 듯한. 처음부터 너무 좋은 작품을 봐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아, 왜 내가 이제까지 이런 걸 모르고 있었지?’ 그랬어요, 정말.”
늦은 저녁 시간에 이들이 모인 것은 내년 <에투알 발레 갈라> 무대에 함께 설 작품의 첫 연습을 위해서다. 김선욱은 발레리노 김용걸, 발레리나 서희와도 함께 하지만 오늘은 김지영과 같이 만들어 갈 ‘빈사의 백조’를 연주한다. 미하일 포킨이 러시아의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를 위해 안무한 이 작품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에 맞춰 선보이는 단막 솔로 발레로 제목처럼 죽음에 임박한 한 마리 백조의 처연한 날갯짓이 더한 아름다움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음악을 모르고 무용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정말 좋은 연기와 좋은 음악은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이론이 있어서 조각조각 평가를 내는 게 아니라, 정말 내 마음이 동하고, 그걸 보면서 몸이 동하고 귀가 동하면 그건 정말 좋은 작품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작품이 되게 특별했던 것 같아요.”
유난히 ‘빈사의 백조’가 특별히 다가왔다는 김선욱의 연주에 김지영이 손을 뻗는다. 발을 모으고 허리를 굽힌다. 하나의 몸짓이 결코 하나의 몸짓으로 끝나지 않는 순간이다. 속삭이듯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음악과 몸짓으로 주고 받던 두 사람이 다시 한 자리에 앉아 마음을 합해 “우리들이 주고 받는 무언가를 분명히 관객들도 다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둘의 연습을 보던 한 발레 전공 여고생은 “두 명인데 다른 발레 보는 것 보다 더 풍부한 느낌이었다”며 두 거장 앞에서 수줍은 고백을 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_신혜(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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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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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 2009.12.02
발레를 너무 좋아해 국립발레단 작품은 다 보고 있고, 더구나 선욱군과 함께라니.^^ 제가 좋아하는 발레와 피아니스트 김선우의 만남.. 이런 뭉침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네요. 여기에 abt에서 활동하는 서희, 얼마전 한국으로 복귀한 김용걸씨까지.. 너무 기대됩니다. 에투아 갈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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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 2009.11.23
젊은 예술인들의 신선한 공연이라 기대감 백만배입니다.. 공연하시는 그 날까지 건강챙기시고, 멋진 무대 보여주세요~^^ 피아노와 발레의 만남이 어떨지도 궁금하구요..이번 공연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예술문화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될 것같네요..그럼 공연하시는 날까지 화이팅입니다~ p.s: 제가 당첨되어 악보를 받게된다면 2010년 내내 행운이 따를거 같네요..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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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 2009.11.20
귀와 눈이 모두 즐거운 공연일꺼같네요~~^^ 연주자들도 서로 좋은경험일거같다고 하지만 관객들은 더욱 더 값진 경험을 할수 있을거같아요. 언제 또 이런 좋은 연주와 , 아름다운 발레를 함께 감상할수 있을까요? 두 분의 서로 존중해주는 모습이 참 좋아보여요~~ 진짜 어떤 공연이될지 너무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