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소나타> 손숙, 추상미

 

_엄만 사랑의 억양과 몸짓에 대해선 전문가였죠. 엄마 같은 사람은… 암적인 존재에요. 엄마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못하게 격리돼야 해요. 엄마와 딸, 감정과 혼돈과 파멸의 끔찍한 조합이에요!

_난 엄마라는 내 모습이 어색하고 불안했어. 난 네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어. 난 내가 너만큼이나 무력하고, 아니 너보다 더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네가 알아주길 바랬어.

비수 같은 말의 향연이다. 7년 만에 엄마를 만난 딸은 가슴속에만 묻어뒀던 응어리를 한꺼번에 뱉어내듯 풀어놓는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이미 곪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딸의 날 선 원망에 엄마는 도망치듯 한 인간의 두려움과 나약함을 꺼내 보인다. “나도 너만큼이나 무력한 인간이었을 뿐이야”라며.

엄마로서 미숙한 한 여자와 그 때문에 깊은 상처를 입은 딸의 이야기. 이 생경하면서도 알 것 같은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펼치는 이들은 47년간 연극 무대를 지켜온 손숙과, 연극 무대에 서면 더욱 예민한 연기를 펼치는 추상미다. 엄마와 딸로 분해 2시간 동안 이들이 선보이는 것은 보일듯 말 듯한 속내와 마침내 폭발하는 분노, 그리고 여운이다.

“부모 자식과의 관계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보이지만 사실 내면을 들여다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어떤 관계도 애증 관계라고 생각해. 거의 다. 속내까지 들여다 보면 실제로 무조건 엄마를 사랑해요? 어릴 땐 그럴 지 모르지만 철들고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자식이니까 엄마에게 바라는 게 더 많아서 그럴 수 있고.” (손숙)

<잘자요, 엄마> <손숙의 어머니> 등 지난 해와 올해 유독 ‘엄마’로 무대에 오른 손숙에게 이번 무대는 그녀 스스로의 이야기다. 소위 대학로를 휩쓴 무조건적이면 희생적인 모정을 벗어나 이 작품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족관계, 특히 엄마와 딸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세 딸의 엄마이자 배우인 손숙은 극중 피아니스트 엄마 샬롯의 입장을 같은 ‘예술가 엄마’ 입장에서 이해한다.

“정말 이해가 가요. 실제 나는 이 작품에 나오는 어머니와 많이 닮았어요. 딸에게 주는 애정도 서툴고 표현 방식도 서툴고, 늘 일이 많아 집을 비웠고...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어요. 사랑했지만 애들이 느끼기에는 굉장히 부족하고, 다른 엄마하고 좀 다르고, 그런게 많았을 거에요”

샬롯의 딸이자, 엄마에게 오래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에바역을 맡은 추상미에게도 <가을소나타>는 그녀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게 하는 작품이다. 배우였던 아버지(고 추송웅)와 어린 시절의 자신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고.

“엄마 샬롯은 저희 엄마, 아빠를 섞어 놓은 것 같아요. 엄마와 딸의 관계에 있어서는 저희 엄마와 비슷하고, 유명인이어서 순회공연을 다니는 것은 아빠와 똑같거든요. 그런 것에 대해 에바가 느끼는 섭섭함과 서러움은 굉장히 똑같죠. 덕분에 에바를 이해하기는 빨랐는데 작품 난이도가 높다보니 힘든 건 마찬가지네요(웃음).”

<가을소나타>는 1978년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로 잉그리드 버그만의 유작이기도 하다. "내용 자체가 공감갔지요. 나와 우리 어머니의 관계, 나와 내 아이들의 관계, 그게 다 어누 부분 닮아 있었으니까. 옛날엔 딸 쪽에서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세월이 흘러서 이제 딸은 못하니까 엄마 입장에 서게 됐네요. 엄마 입장에서도 참 할 이야기가 많은 작품이에요."(손숙)

영화 속 건조하지만 폐부를 찌르던 대사는 연극 무대에서 더 날카롭게 태어났다. 한 번에 한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대사량이지만 연습에 들어가자 좀처럼 대사가 틀리는 경우는 없다. 감정이 몰아치면 몸을 떨며 눈시울을 붉히는 두 배우 덕분에 연습실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대사의 맛을 살린 이 작품에 대한 애정에 대해 두 배우의 애정은 각별하다. 추상미는 세 번 이상 영화를 보았고, 손숙은 직접 대본을 들고 제작사를 찾을 만큼 애정이 깊다.

“요즘 가벼운 코미디 이외에는 다른 연극을 찾기 힘들잖아요. 이 작품은 품격 있게, 연극을 제대로 봤다, 할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가족 관계, 엄마와 딸의 관계, 그밖에 관계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손숙)
“마지막엔 감동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지체장애를 가져 엄마에게 버림받다시피 한 동생 레나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거든요. 제 생각엔 이 ‘일’이 있고 나서 모녀의 관계는 한 발자국 발전했을 것 같아요. 그게 결국 가족이니까요.”(추상미)
 

<가을소나타> 미리 보기

 



 





 
           
     * 연습 들어가기 전, "흉내지만 완벽하게"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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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ojh8** 2009.12.18

    엄마와함께 가서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