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체육관> 김수로 "흉내내지 않는 권투에 전율"

 


김수로가 권투 글러브를 꼈다.

술에 절어 사는 왕년의 챔피언, 아버지 반대에도 권투를 열망하는 여자, 상사 생떼에 하루에도 몇 번씩 욱하는 직장인, 자신을  때린 애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날라리 고등학생... 각자 사연을 안은 사람들이 모인 허름한 체육관에, 김수로는 자신의 영웅 이기동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청년 이기동으로 분한다. <밑바닥에서> 이후 2년 만의 연극. 방송과 트위터를 통해 “많은 걸 포기하고 선택한 연극”이라고 할 정도로 김수로는 <이기동 체육관>에 꽂혔다.

“<밑바닥에서> 이후에 틈틈이 많은 연극을 봤는데, 이 작품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2년 전엔 외국작품을 했으니, 이번엔 창작극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모든 게 딱 맞아 떨어진 거죠. 이 작품을 하기 위해 돈 벌 기회를 포기했어요. 돈 벌 욕심보단 관객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수로는 방송에서의 모습보단 말수가 적었다. 최근 체력 훈련과 방송을 겸한 탓에 피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개월간 이어진 권투 훈련으로 그는 체중이 줄고 팔 근육이 탄탄해졌다.
“매일 오전 3시간씩 권투만 특훈을 했어요. 요즘은 매일 두 시간씩 기초체력 훈련을 하는데 줄넘기, 스파이링, 섀도우복싱을 하고 있고요. 지금 내 왼손은…누가 하나 걸리면 죽을 걸요?(웃음) (손을 가르키며) 이 녀석이 굉장히 빨라졌답니다.”

<이기동 체육관>이 2009년 초연 당시 화제가 됐던 건 권투 체육관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이 ‘진짜 권투’를 선보이기 때문. 흉내를 내는 수준이 아닌, 프로급 실력을 지닌 배우들이 진짜 흘리는 땀방울은 관객들에게 전율을 주기 충분했다. 특히 마지막 5분 동안 보여준 배우들의 투혼은 이 작품의 백미다. 마지막 5분씬을 말해달라고 하자 의외로 손사래를 친다.

“후기에서 그 장면 좋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줄넘기로 서커스를 하는 줄 알았대요(웃음). 서커스는 아니지. 마냥 죽어라, 열심히 뛰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배우들이 수 개월간 진짜 권투 선수들처럼 피나는 훈련을 했기 때문에 결코 무대에서 권투를 흉내 내진 않아요. 거기서 오는 살의 부딪힘, 전율이 클 겁니다.”

 

김수로의 트위터엔 <이기동 체육관> 권투 훈련 모습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고 있다. 대부분 초연 배우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했다.
'한 운동' 하지만 권투는 처음이었던 그는 이를 계기로 앞으로도 권투를 계속 해볼 생각. “권투 체육관을 하나 할까”라며 웃어보인다. “초연 때 공연했던 친구들이 워낙 권투를 잘 하니까 자극이 되더라고요. 만약 다들 처음하는 배우들이었으면 꾀부렸을 것 같아. 그 친구들이 잘하니까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죠.”

“캐릭터가 한정돼 있었던 것 같다”
그 말대로 ‘센’ 역할을 주로 연기하던 김수로가 이번엔 순한 청년 ‘이기동’으로 분한 점도 흥미롭다. 어려서 아버지한테 맞고 우연히 켠 TV에서 권투 선수 이기동을 보고 그를 동경해 온 청년이다.
“희망을 향해 달려가나가는, 투지 있는 이기동 선수를 영웅으로 생각해요. 삶의 목표가 없어졌다고 생각한 어느 날 옛날의 영웅을 찾아 체육관에 입관하면서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인간적인 감동을 주더군요.”

단순히 복싱 드라마였다면 아마 출연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사실도 강조한다.

“이기동은 뭔가 안에 빈자리가 큰 친구에요. 마음 한 쪽이 아프고 부족한 사람. 그 사람이 뭔가 채워나가려고 권투를 불태울 때 많은 걸 공감할 수 있죠.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돈이 없다던가, 목표가 없다던가, 희망이나 꿈이 없는 사람이 많아요. 이를 채워보려는 사람들이 이 체육관 안에 있는 거에요.”

2000년 <택시드리벌> 이후 2009년 <밑바닥에서>에서까지, 그가 다시 연극 무대에 서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간 영화와 드라마, 예능을 종횡무진하며 김수로 특유의 코믹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굳혔다. 여러 장르를 오가면서 그만의 원칙은 있다.
“예능에 출연할 땐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버려야해요. 내게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어도 내가 거기에 맞춰야 하는 것이지. 영화라는 옷을 다시 입을 때도 내가 잘 맞추면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이고요. 내가 매체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못 맞추면 못하는 거에요. 콜이 없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집에서 6mm 틀어놓고 해야죠.”

매체에 자신을 맞추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배우이지만, 연극 무대에 대해선 이상과 꿈, 행복의 단어를 자주 쓴다.
“연극과 출신이고, 연극을 통해 연기를 배웠기 때문에 TV나 영화보단 연극이 더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사실 로또만 당첨되면 연극만 하면서 살 수 있어요. 배우가 무대에 서는 건 당연하니까. 공연이 매력 있거든요. 내가 무슨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날까를 고민하면 행복해지는 거지.”

“좋은 벌이가 있으면 연극만 하면서 살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무대에 애정이 있는 그는 앞으로도 1년에 한번은 연극 무대에 서고 싶은 욕심이 있다. 물론 그가 찾는 무대는 평범함을 거부한다.
“평범한 연극은 하고 싶지 않아요. 독특한 소재와 독특한 웃음, 독특한 휴머니즘, 스포츠에서 오는 감동, 묘한 인간관계의 힘, 스릴러…저도 어려운 건 싫고,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것들을 찾고 있어요.”

언젠가는 영화나 뮤지컬처럼 연극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도 있다.
“영화도 쉬리 때문에 시장이 커졌고, 뮤지컬도 호기심을 끌만한 외국 라이선스 작품이 시장을 크게 했어요. 연극도 그런 날이 오지 않겠어요? 그런 시기를 준비하는 거죠. 언젠가는 관객 여러분이 알아주시니까.”

12월 31일, 2010년의 마지막 날을 김수로는 <이기동 체육관>과 함께한다. 2011년 새해도 이 작품과 함께 맞으니 "2년을 이 작품으로 보낸다"며 웃어 보인다.
“연습 하면서, 영화나 TV 대신 이 작품을 하게 된 게 새삼 자랑스럽더라고요. 이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이 좋은 감성을 가져간다면 더 이상 우리는 바랄 게 없어요. 많은 걸 가져가시리라고 확신해요.”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스튜디오 춘(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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