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말을 걸어 옵니다' 첫 단독 콘서트, 빅마마 신연아
작성일201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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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건네는 목소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 곁에 더욱 다가가야 들릴 법하다. 무대가 좁도록, 공연장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가창력을 선보여 온 빅마마에서의 모습과 달라 흠칫 놀란다. 목소리가 커지면 엄한 아버지의 꾸중을 듣기도, 또 워낙 말수가 적기도 해서 말하는 것 보다 오히려 노래할 때 힘이 덜 들고 편하다는 신연아. 빅마마가 아닌 신연아로서 첫 단독 콘서트를 앞둔 그녀는 작지만 또렷한 한마디 한마디처럼 고요하지만 단단하게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오고 있었다.
하루하루, 그렇게 이뤄진 날들
올 4월, 신연아는 ‘하루만’이라는 첫 에세이집을 내었다. “꿈과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신연아의 굴곡진 희망 일기가 한 권 가득하다.
“20대 때에는 매일 10년의 계획을 세웠어요. 앞으로 올 날들에 대해 걱정도, 하고 싶은 것도 정말 많았거든요. 빨리 뭘 이뤄놓아야 될 것 같고. 그런데 한 해 지나고, 또 매해 다시 계획을 짜도, 그대로는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 크게 볼 필요가 없구나.(웃음) 하루하루 생각하다 보면, 알아서 그것이 내게 도착하겠지, 나를 달래는 차원의 제목이랄까요?”
‘하루만’에는 빅마마와, 남편과, 무엇보다 음악과 함께 하게 된 지금까지를 이룬 하루들이 빼곡하다. 로라 피지, 핑크 마티니, 조수미, 카미유, 김현식, 데미안 라이스 등 삶의 매 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신연아의 ‘잇 뮤지션’ 들이 어울려 있다는 것이 다른 글과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음악 하시는 분이 아닌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실까봐 좀 걱정이 됐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는 거였으니. 그런데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있을 거란 작은 믿음으로.(웃음)”
나와 같은 생각하는 사람, 있겠지요
‘내가 좋아하는 것’은 곧 ‘어디에 있어도 떳떳하게 나를 말할 수 있는 것’이란 뜻과 닿아 있다. 적어도 신연아에겐 그렇다. 노래 잘하던 불문과 학생, 가요 음반의 7, 80%에 참여했던 코러스 활동, 인정도 자리도 돈도 잡았던 그 시절, 주변의 우려를 뒤로 하고 떠났던 프랑스 유학이 그 고집의 첫 번째 실천이었을 것이다.
“당시 한국 대중음악이 싫었어요. 웬만한 가요 음반은 다 녹음했으니 들어보게 되잖아요. 다 비슷비슷해요. 오죽하면 듣자마자 코러스를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코드도 비슷하고 작곡가나 연주자도 다 똑같고 회사와 가수만 바뀌는 거죠. 결국 똑같은 음을 계속 찍어내는 거에요. 내가 자판기가 된 느낌이었어요. 버튼 누르면 그냥 나오는. 내 음악을 하고 싶어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는데, 자판기가 되어가고 있구나, 절이 싫으니 중이 떠난거죠.”
2년이 못 되는 파리에서의 생활도 녹록치는 않았다. ‘내가 여기 뭐 하겠다고 온 거지? 도망 온 것일까?’ 질풍노도는 그곳에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진짜 내가 누구인지 나와 대면할 수 있는 최초의 시간’이라는 결실이 뒤따랐다.
“그 나라 말을 잘 모랐으니 TV나 라디오 소리도 집중하지 않으면 소음일 뿐이에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담을 쌓은 거죠.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상태에서 나와 정면으로 만났어요. 그 때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된 거에요. 성격, 취향,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그 때서야 알게 된 거죠.”
“빅마마라는 팀이 아니었으면, 저는 대중음악을 안 했을 것 같아요. 그 만큼 빅마마가 하려는 음악이 다를 수 있었어요. 그것에 대한 자부심은 정말 크게 있어요. 적어도 내가 하는 음악이 부끄럽지 않다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마마 음악이 너무 많이 어렵지도 않잖아요. 그 경계를 잘 찾아나가는 게 숙제라고 생각을 했죠.”
유학길을 서둘러 마치고 2003년 탄탄한 실력의 네 명의 여성 보컬이 뭉친 빅마마의 등장은 한국 가요계에 ‘노래 잘하는 가수’의 이름을 새롭게 정의하기에 충분했다. 한 파트에 얽매이지 않고 장르와 분위기에 따라 서로의 자리를 교차하며 새로운 색을 만들어 내는 이들의 라이브는 그 해 신인가수들 중 음반판매 최고의 기록을 세웠으며, 그녀들의 힘은 지난 해 3월 발매한 5집 앨범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풍요로워진 신연아, 이제는 여러분께 속삭입니다.
“프랑스는 여러가지 문화가 다 들어와 있어서, 다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 굉장히 좋았어요. 음악적으로,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기분, 진짜 그게 너무 행복했었죠.”
일부러 어떤 공연장을 찾지 않아도, 음반 가게를 뒤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전 세계의 음악들. 그것 만큼 감격스럽고 고마운 것은 먼저 손을 내밀어 준 헌신적인 남자친구, 지금의 프랑스인 남편일 것이다.
“아마 남편이 프랑스 사람이 아니었다면 벌써 짐 싸서 프랑스로 갔을 거에요. 프랑스에 있을 때도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졌는데 여기 와서도 층을 나누는 한국 문화의 일면들이 답답해서 티 안 나는 이방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히려 남편이 긍정적으로 볼 때가 있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니 제 시선도 편해지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에세이 집에 실린 미니 앨범은 기타도, 피아노도 잘 치는 남편과 홈레코딩으로 완성했다. 총 세 곡의 노래 중 ‘Redemption Song’에서는 남편의 맑고 귀여운(?)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게 목소리에 다 나와요.(웃음) 성격도 그래요. 애교 있고 맑고 순수하고. 우연히 다른 분 공연장에서 같이 불렀었는데 그 생각이 나서 같이 부르자고 했죠. 우리 신랑의 꿈은 나와 같이 음악하는 거거든요. 저 때문에 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한국에 왔는데, 지금은 그게 너무 미안해요.”
“빅마마로서는 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죠. 화려하고 스케일 큰 음악을 좀 더 가까이 했었다면 이번 미니 앨범처럼 작게 속삭이는 노래에 대한 갈망은 조금 있었어요. 보컬로서 저의 장점은 감성표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감성을 섬세하게 해석해서 담아내는 것. 처음 음악의 시작도 그랬지만, 여전히 아픈 사람들, 슬픈 사람들, 슬픔에 못이기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은 게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에요. 제 노래를 듣고 혼자가 아니구나,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음악이 있구나, 그게 정말 뿌듯해요.”
이번 단독 콘서트에서는 ‘춤추고 싶은 사람들’보다는 ‘슬픔을 함께 털고 아련한 멜로디에 감성을 적시고 싶은 사람들’이 더욱 웃고 울 수 있는 무대가 될 듯 하다.
“월드 음악도 많을 거에요. 꺼이꺼이 우는 슬픔이 아닌, 스폰지에 뭍어나는 것 같은 슬픔, 다 울고 나서 하, 하고 숨을 내 쉴 때의 느낌, 잔잔한 서글픔이 담겨질 것 같아요. 빅마마 노래도 박민혜씨랑 같이 새롭게 바꿔 부르기도 할 거고, 신랑이랑 몇 곡도 함께 부르고요. 여행 가시는 느낌 들 거에요, 파리로, 이탈리아로, 브라질로, 다시 한국으로.(웃음)”
대중성과 예술성은 다수 앞에 서는 예술가에게는 언제나 난제로 주어진다. 신연아는 “어느 것을 선택하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임을 이제서야 조금 알겠다고 한다. 그리곤 그녀는 “남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무작정 하는 음악은 아마도 안 하게 될 것 같다”는 다짐을 꾸욱 눌러 말한다.
“작은 믿음 하나는,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시대적으로 느끼는 부족한 점들을 나 역시 느낄 것이니, 내가 느끼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조금은 느낄 것이다, 라는 것이에요. 시대의 감각에 귀가 열려 있는 아티스트라면, 뭘 해도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모르죠 뭐, 저 혼자의 생각일지.(웃음)”
20대 때 매일같이 쓰던 계획들 중 그녀는 “그때의 바람보다 시기는 많이 늦어졌지만, 더 많은 것을 이룬 지금이다”라고 말했다. 느리다 하더라도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인 아티스트는, 걸어 온 길과 걸어갈 길이 결코 초라하지 않다는 것을 그녀 스스로가 증명해 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하루에 그녀가 스치고 또 하루에 그녀의 음악이 스미어 온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 장소협찬: 뜨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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