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송영훈, 첼로에 그의 심장이 뛴다


1%의 노력으로 5%를 얻은 ‘행운’이 아니라, 110%의 열정으로 100%를 만들고 있는 첼리스트 송영훈은 ‘행복’해 보였다. 쉼 없는 연주 여행, 끝이 없는 연습, 그리고 다양한 음악 활동까지 오늘의 발걸음을 무겁게 할 만한 것들이 차고 넘치는 듯 하지만 그는 내일이 가져다 주는 기대에 여전히 흥분된 모습이다.
 



며칠 후 그는 핀란드 행 비행기를 탄다. 매년 6월 열리는 난탈리 음악 축제를 위해서다. 10시간이 훌쩍 넘는 하늘 여행의 파트너는, 언제나 그러하듯 첼로다.
“제 선생님(난탈리 음악 축제의 창시자이자 세계적인 첼리스트인 Arto Noras)이 음악감독으로 계세요. 15살 때 학생으로 처음 참가했었는데, 이제 선생님이 되어, 연주자가 되어서 두 번째로 가요. 13일간 총 8번 연주 할 예정인데 그 정도면 그리 빡빡하진 않은 거예요.(웃음).”

11세 서울 시향과 협연, 줄리어드 음대 장학생, 영국 노던 왕립 음악원을 거쳐 영국 잉글리시 쳄버 오케스트라 최연소이자 최초 동양인 첼로 수석연주자 등 국내외 화려한 그의 이력을 나열하는 것은 부질 없다. 세계 속 빼어난 솔로이스트로, 실내악단의 멤버로, 오케스트라의 협연자로 그를 원하는 무대가, 그가 기꺼이 가야만 하는 무대가 셀 수 없을 정도인 지금이기 때문이다.
“말이 안 통해도, 다른 교육을 받았어도, 연령대가 달라도, 함께 모여 하나를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이에요. 공부할 때는 배우고 싶은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무조건 갔고, 지금은 스스로 완벽한 연주를 위해 자연스럽게 몸을 싣는 겁니다.”

비올리스트 아버지와 바이올린을 먼저 잡은 형 등 음악 가정에서 송영훈은 ‘형을 이기고 싶어’ 5살 때 바이올린 보다 더 큰 첼로를 선택했다.
“나중에 보니까 더 큰 콘트라베이스가 있더라고요(웃음). 재주는 분명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남들이 잘 한다고 하고, 대회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대학교 졸업 즈음 ‘내가 정말 잘 하는 것이 첼로’임을 깨달았어요. 그 후부터 어떻게 해야 청중들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죠. 그런 사명감으로 시작하게 되면 그 순간 재주라는 것은 없어져요. 오로지 노력이고, 첼로가 없으면 안되고, 그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은 없는 거죠.”



오케스트라 협연과 독주 뿐 아니라 세종 솔로이스츠, 금호 현악 사중주단에 이어 현재 클래식계 실력파 꽃미남 모임으로도 유명한 MIK앙상블 단원으로, 꾸준히 함께 하고 있는 실내악 무대는 여러가지로 그에게 의미가 크다.
“솔로이스트가 되더라도 쿼르텟(Quartet, 사중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기회가 생겨서 국내외 많은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다른 연주자와 함께 한다는 것도 즐겁고, 무엇보다 음악 자체가 저에게 굉장히 신선해요. 가령 첼로에는 모차르트 레퍼토리가 없는데 4중주를 통해서 모차르트를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요.”

2004년 실내악단의 멤버로 전국 12개 병원 호스피스 병동 복도에서 연주를 펼친 호스피스 콘서트는 연주자가 음악을 통해 악보에 새겨져 있지 않은 또 다른 선율을 느끼게 된 뜻깊은 무대였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었죠. 어떤 음악을 들려드려야 하나, 고민도 컸고요. 하지만 음악은 추억을 떠올리거나 어떤 사람을 생각하거나 듣는 사람에게 조그마한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잖아요. 그것이 환자분들에게 줄 수 있는, 소박하지만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하게 되었어요. 세상에는 음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또 어떤 형태로든 음악을 통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면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고요.”
이런 다짐은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음악가의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의 선생님이 된 것. 한 기업체에서 주관하고 있는 해피스쿨의 음악감독인 그는 학생들의 전체적인 학습 프로그램 등을 담당하며 주말마다 첼로를 잡는 고사리 손을 이끌고 있다.
“정말 대단한 게 뭔지 아세요? 벌써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선생님 같이 자기 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굉장히 보람되죠.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의 겨울 무렵 실현되리라 생각했던 일이 벌써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연주여행을 다니는 음악가가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키는 것은 몹시도 힘든 일일 터. 하지만 우리는 매일 아침 9시 라디오를 통해 송영훈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연주자 입장에서 클래식 음악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그것도 연주자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방송 하나 할 때마다 꼭 연주 한번 한 것 같다니까요. 똑 같은 에너지, 똑 같은 청중과의 교감, 전파를 타고 많은 것들이 오고 가는 것 같아요. 새롭고 굉장히 즐거워요. 클래식 대중화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고요. 힘들긴 하지만, 뭐 조금 덜 자고 다른 시간을 줄이면 앞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연주자, 선생님, 그리고 라디오DJ 등 음악과 함께하는 남다른 시간들이 하루를 가득 채우는 그, 착한 남편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제 아내는 연극배우인데, 저와 결혼한 이유가 딱 한가지, 제가 첼로를 했기 때문이래요. 그만큼 첼로를 좋아해요. 제가 연습할 때는 같이 공부하고, 물론 자기 일에 열심이고요. 조금 있으면 한 달 만에 아내와 만나는데, 그래서인지 더 애틋해요. 결혼은 자기 시간을 반으로 쪼개지만 한 사람과, 더한 사랑을 얻는 거잖아요. 가끔씩 지지고 볶고 하지만, 집에만 다녀오면, 연주든 얼굴이든 무언가 하나는 좋아진다고 주변에서도 그러더라고요(웃음).”
‘지지고 볶고’라니, 훈남 연주자와는 영 맞지 않는 말 같다.
”결혼 해 보세요, 그거 안 하면 부부가 아니지(웃음).”



타인과의 앙상블과 세상 속 일들에 대해선 누구보다 부드럽고 신선한 시선의 그가 자신의 연주에 대해선 타협을 모르는 독불장군이 됨은 클래식 계에서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선생님들 곁을 떠난 뒤에는, 제 스스로 선생님이 되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연습할 때는 용서가 안되죠. 연주라는 것은 피나는 훈련과 연습이 있어야만 할 수 있어요. 올림픽 나가는 선수들도 몇 년 전부터 준비하잖아요. 연주자들은 매일 연주를 하는데 얼마나 큰 노력들이 있어야 하겠어요. 정말 피나는 노력,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될 때까지 실력을 쌓기만 하면, 기회는 와요. 언제나 스스로 용서하지 못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첼로죠.”


그의 첫 앨범<TANGO>는 탱고음악의 최고봉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음악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을뿐더러 뛰어난 음악적 면모로 첼로의 가능성을 또 다르게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대학생 때 피아졸라를 좋아했어요. 피아졸라의 원래 구성엔 첼로가 안 들어가지만 바이올린 역할을 첼로가 하죠. 탱고라는 것 자체가 제게 무게감 있는 색으로 다가왔는데, 첼로로 하니까 그 포스가 더 느껴지는 것 같아요. 두 번째 앨범하고도 분위기가 좀 다르죠? 제가 좋아하는 음악, 악보, 연주자, 세 가지가 갖춰지면 다른 어떤 것도 침범할 수 없지요.”

이달 말 가수 김동률과 일본의 탱고그룹 ‘쿠아트로시엔토스’가 함께 하는 콘서트는 그가 첼로로 풀어내는 열정과 관능의 탱고 선율을 만나볼 수 있는 무대가 될 예정이다.
“제 공연 관객 대부분은 입소문을 통해서 오세요. 공연 보고, ‘첼로 소리 참 좋더라, 가보자’해서. 이번 공연은 그렇게 오랫동안 찾아오셨던 팬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하죠. 첼로 연주든,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든, 무슨 일이든 오로지 사명감, 책임감, 그게 아주 큰 것 같아요.”
훌륭한 연주자의 꿈과 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첼로 연습이나 연주, 공식적인 일정 이외의 시간에는 또 다른 아이디어들로 머릿속이 꽉 차 있어요. 아직 무어라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다른 장르들과의 무대, 또 다른 연주 등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리스트로 만들어서 하나하나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내 가슴에 악기의 몸을 받치고 연주하는 것’. 그는 첼로의 매력을 이렇게 이야기 했다. 가슴과 맞닿아 몸의 일부분이 된 첼로여야만 연주자의 생각과 감정이 온전히 전해지는 것 같다는 그. 뚜렷한 목적과 즐거움에서 시작되는, 스스로의 몸을 울리면서 내는 그의 첼로 소리가, 현과 활과 가슴으로 행하는 하나하나의 일들이, 이미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음을 그도 조금은 알았으면 한다.



글 : 황선아 기자(인터파크ENT suna1@interpark.com)
사진 :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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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A** 2008.06.03

    송영훈씨가 연주한 피아졸라 가슴을 울립니다. 넘 좋아요. 음.. 근데 어찌보면 좀 느끼하시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