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사랑에 빠진 남자들, <보이첵> 김수용 & 김다현
작성일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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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모차르트!>에서 카리스마 있는 영주이자 정치와 종교를 지배할 수 있는 최고의 권력자 콜로레도 대주교로 활약한 김수용과 지금도 매일 저녁 <헤드윅> <프리실라>에서 여자 보다 더 예쁜 여자로 변신하고 있는 김다현은 그들이 지금까지 연기했던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색과 결을 가진 <보이첵>으로 관객들과 새롭게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불던 가을의 초입에서 만난 그들이 여름 내내 땀 흘려 연습한 <보이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보이첵>은 독일의 천재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미완성 희곡을 바탕으로 <명성황후> <영웅>을 만든 윤호진 대표가 8년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야심 차게 준비한 창작뮤지컬이다. 이 희곡은 1879년 발표된 이후 세계 각국에서 오페라·연극·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만들어졌지만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생체실험’이라는 극단의 선택까지도 불사하는 보이첵이라는 남자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표현해 내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순수하고 처절한 한 남자, 보이첵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인터뷰 당일 큰 눈을 껌뻑이며 낮은 목소리지만 본인의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던 김다현은 작품 속 보이첵의 상황을 직접 경험해보기 위해 완두콩 실험을 한 달 이상 감행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루에 두 끼를 먹고 있어요. 한 끼는 완두콩을 한 끼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요. 무엇보다 식욕에 대한 욕구를 이기고, 몸이 점점 말라가면서 나타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체크해보고 싶었어요. 마리에 대한 보이첵의 사랑 감정을 극한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일단은 체중 감량은 기본이고, 첫 번째 증상이 기력이 쇠해지고, 두 번째가 면역력이 떨어져서 몸의 여기 저기서 반응이 오고, 세 번째가 기억력 감퇴. 그 다음에는 눈꺼풀의 떨림이 오고 있어요. 제대로 먹고 있는 한 끼가 절 유지시키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괜찮은데, 공연 2주 전부터는 진짜 제대로 한 번 해보려고요. 몸 상태를 체크해보고 공연 할 수 있을 정도로 한 번 테스트해서 무대에 서 보고 싶어요.”
‘생체실험’이라는 극한의 상태에 놓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는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 뜨겁고 순수한 감정을 어떻게 끌어올리게 될 지 궁금하다.”며 눈을 반짝인다.
반면 김수용은 “저는 다현이처럼 그렇게 했다가는 서 있지도 못할 수 있어요. 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또 고민을 많이 하게 되니까 살은 저절로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나잇살은 안 빠져서 속상해요." (웃음)
그는 이번에 맡게 된 보이첵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한마디로 ‘소시민’이라고 정의했다.
“주인공 보이첵은 군인이지만, 가진 것이 전혀 없는 힘 없는 인물이에요. 결국에 아내와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생체실험에 지원하게 돼요. 그들을 위해서 그가 보여주는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그 사랑에 대처하는 이야기에요. 희곡이 100년 전에 쓰여졌고, 사건의 진행이 굉장히 참혹하지만 그런 장치들 때문에 등장인물인 보이첵이나 마리를 통해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세상의 선택받은 1%가 아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김수용)
<보이첵> 제작발표회에서 윤효진 대표에게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보이첵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김수용은 “그때 대표님의 그 말씀 이후로 ‘동정 수용’이라는 별명이 생겼어요. (웃음) 제가 없어 보이진 않는데, 그 말씀 때문에 궁핍하고 피페한 아이콘이 되어 버렸어요. 대표님 말씀처럼 보이첵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그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보이첵>은 배우에게 도전 정신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에요. 고전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배우에게 굉장한 훈장 같은 의미거든요. 기분 좋고 기쁜 일이죠.”
김다현도 대본을 처음 받아 봤을 때 보이첵은 배우로서 도전 의식이 생기는 정말 흥미로운 캐릭터라고 설명한다. "고전 작품을 통해 깊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생겼지만, 그와 동시에 느낀 건 '어느 선 까지 보여줘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도 하게 됐어요. 실제로 보이첵이 겪는 극한의 상태를 꼭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흥미로움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어요."
“연기적으로 연극에 대한 갈증이 있던 차였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조금 더 깊이 있고 진짜 아마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배우가 저런 연기까지도 하는구나’ 그런 말을 아마 듣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어요.” (김다현)
"보이첵의 순간 순간의 감정에 충실해 보고 싶어요. 진짜 진실되게 순수하게 찾아가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하고요. 그것이 어떻게 표현될 지는 지금은 모르겠어요. 어쨌든 저는 순수한 감정에 모든 것을 걸어볼 생각이에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고요. 분석도 하고 인물의 전사도 그려보고 다 하지만 최대한 진실되게 찾아가려는 것 밖에는 답이 없는 것 같아요.” (김수용)
베테랑 뮤지컬 배우들의 고백
김수용은 보이첵처럼 극한의 연기든 아니면 극단적으로 즐거운 연기를 하든 모든 연기는 어렵다고 고백한다.
“모든 것은 무대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에요. 무대 안에서 스스로 이유를 찾아나가고 알맹이를 찾아가고, 거기에 맞는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 연기하는 사람들의 몫인데 그 과정은 어찌됐든 힘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렵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재미있고 즐거울 때가 있어요. 남들이 보면 살 빠지고, 머리 아프고, 힘들고 짜증나는데 그런 것들이 하면서 조금씩 풀리면 그렇게 재미가 있어요.”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항상 자신감과 여유가 넘치는 연기 경력 베테랑인 김수용도 첫 공연을 하기 전에는 굉장히 긴장을 많이 한다고.
“예민해지고, 첫 공연 날 아침에는 집에서 잘못 건드리면 화도 내고요. 그래서 첫 공연 때는 미칠 것 같아요. 그날 먹는 것은 다 개어 내고 소화불량도 오고요. 그래서 어떤 날은 첫 공연 날 먹은 게 위와 장에 남아 있지 않으니까 거의 공복 상태에서 무대에 섰던 적도 있어요.”
그동안 여장 역을 많이 해오고, 여자보다 예쁜 배우라는 수식어가 있는 김다현은 ‘어떤 한 캐릭터에 국한되게 연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헤드윅> <프리실라> <라카지> 캐릭터는 여장이긴 하지만 그들을 선택했던 것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매번 다른 느낌을 받았었죠.”
“전 국민과 연예인을 통틀어서 이름 앞에 꽃 자가 붙는 사람은 저 밖에 없을 거에요. 그것이 부끄럽고 지겨울 때도 있었는데요. 이제는 제 이름 앞에 꽃이라고 불려지는 게 나의 브랜드가 된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앞으로는 이 꽃을 더 향기롭고 아름답게 가꾸려고요.”
여러 창작뮤지컬 무대에 서 온 김다현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봤다. “창작 뮤지컬은 흰 도화지에서 그림을 시작하는 것처럼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작업이에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얼핏 누가 스케치를 해 놓은 거에요. 지우개로 지워서 다시 시작 할 수도 없고, 덧칠을 잘못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아요. 이게 보통 작업이 아니에요.”
지금 그의 고민은 이 작품과 어울리는 말을 찾는 것이다. “<보이첵>을 뮤지컬화 한다고 해서 음악적인 부분이 들어갔지만 그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원작 희곡을 다양한 방면으로 읽으면서 이 장면에서 작가의 의도가 도대체 뭘까? 이 다음에 연결은 왜 이렇게 갔을까? 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요. 숨겨진 서브텍스트를 생각하며 늘 고민하고 있어요."
김수용도 결국은 같은 고민이다. “결국은 대본에 답이 있어요. 원작도 있지만, 일단은 우리 앞에 놓인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잘 버무리느냐의 문제인데. 결국은 대본 안에 답이 있기 때문에 계속 그걸 가지고 파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이끌고 있는 윤호진 연출은 김수용과는 2년 전 <영웅> 때 처음 만났고, 김다현의 대학 은사이기도 하다. 그는 배우들에게 감정선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마치 4학년 졸업 공연의 지도 교수님과 학생처럼 앉아서 연출님의 말씀을 경청해요.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고, 다시 한번 초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이죠. 대사 한 마디를 하더라도 그 대사를 하는 상태, 그 대사를 하기 전까지의 어떤 상황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 하나 체크하세요." (김다현)
김수용은 “제 몇 안 되는 특기 중 하나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것이다’에요. 배우가 아무리 분석하고 연구해도 초반에는 연출가, 작가, 작곡가보다 작품에 대해 절대 많이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작품의 의도,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 연출가가 배우에게 주는 디렉팅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고 이미 충분히 연구해서 그 작품에 최적화된 연기와 노래라는 확신에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윤호진 대표에 대한 무한 신뢰를 전한다.
무대와 지독한 사랑에 빠진 남자들
언제나 기대되는 작품은 다음 작품이라고 말하는 김다현은 ‘무대에서 행복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뮤지컬 무대 뿐 만 아니라 배우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앞으로의 십 년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이달 말에는 일본 첫 팬미팅 겸 콘서트 무대를 앞두고 있다.
“신 내림 받은 사람들이 작두 안 타면 몸 아프듯이, 배우들은 무대에 안 서면 병이 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로 인해서 불행해지고 고통을 받는 다는 것은 죄악이죠. 그래서 전 항상 행복하게 무대에서 즐기면서 하고 싶어요. 나로 인해서 그 행복감과 즐거움이 관객들에게 전달이 된다는 것. 그래서 그들이 나로 하여금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유지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연기 잘하는, 정말 배우 같은 사람이었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평생 연기쟁이 김수용은 “저는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금사빠에요 (금세 사랑에 빠지는 남자) 동시에 고지식할 정도로 믿음이라는 단어에 굉장히 많은 가중치를 두고 살죠. 작품을 하면서 공연을 선택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 프로덕션이 나를 믿어주느냐에요. 그런 나만의 두 가지 기준이 이 작품에도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믿음과 사랑이 살면서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이 작품을 하면서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김다현과 김수용은 <보이첵>에 대해 ‘그저 순수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한 남자가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멋진 일 같아요. 그것이 무엇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보이첵의 경우는 마리와 아들이고요.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인간이 어느 한계에 미쳐 있을 때 느껴지는 매력도 있겠지만 거기에 따르는 처절함과 거기에서 오는 부작용도 있을꺼에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인생의 굴레 안에 들어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김다현)
“공연 기간이 짧아요. 역시 알려진 라이선스가 아닌데다가, 연극을 뮤지컬로 바꾼다는 자체가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죠. 좋은 크리에이티브 팀과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작업을 해보자고 뭉쳤어요. 관객 분들을 위해서 이런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가는, 이런 순기능이 계속 이어지기를 원하신다면 공연장으로 찾아와 주세요. 그래야 <보이첵>은 물론,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이런 과정과 작업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수용)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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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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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rang**님 2014.09.24
어쩐지 김다현님 헤드윅보니 점점 말라가는것 같더라구요. 건강 잘 챙기면 해주세요. 무대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