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열전2의 프로그래머, 조재현

작년 말 <서툰 사람들>을 시작으로 현재 공연 중인 <라이프 인 더 씨어터>에 이르기까지, 1년간 총 11편의 작품을 선보이는 연극열전2는 여섯 번째 작품의 막을 올리며 프로젝트 중반부를 넘어섰다. 시작 전부터 말도 많고 사람도 많고 화제도 많았던 연극열전2의 중간 결산, 연극열전의 프로그래머로 나선 조재현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80% 만족, 그러나

평균 90%를 넘나드는 객석 점유율, 200석도 안 되는 소극장을 찾은 10만 명이 넘는 관객. 대학로에서 공연되는 수 많은 연극들이 극장 대관료 조차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비하자면, 연극열전2는 흥행 면에서 단연 성공적이다.

“외형적인 것이나 홍보, 마케팅 면에서는 80%정도 만족을 합니다. 하지만 좀 내적인 문제들, 연극열전이 보여주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많은 보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높은 지명도를 갖고 있는 스타 배우와 연출 등이 포진한 연극열전2의 라인업을 두고 스타 마케팅과 지나친 상업성 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조재현이 모를 리 없었다.

“다행인 것은, 보완하고 수정해야 할 점이 보인다는 거죠. 예를 들면, <서툰 사람들>하고 <돌아온 엄사장>을 빼 놓고는 다 자체 제작 시스템이잖아요. 다른 대학로의 연극들보다 상대적으로 잘 되니까 본의 아니게 소외 당한 사람들의 원성도 들려요. 다음에는 같이 갈 수 있는 사람들, 잘 어울릴 수 있는 파트너와 섞여서 하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죠. 지금은 자체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서 내부는 너무 버거운 반면 외부에는 굉장히 독자적으로 보이잖아요.”

관객들을 독식한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선, 차근히 상생의 논리를 펼친다.

“연극열전1은 주최자만 손해를 봤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참여하는 사람이나 주최자 모두 손해를 안 보는 셈이에요. 그 다음에는 조금 더 시각을 넓혀 상생하는 쪽으로 가겠다는 거죠. 너무나 순수하고 뜨거운 가슴만 가진 사람들은 전술이나 전략보다는 일단 올인하고 최선을 다해요. 그러면 금방 지쳐요. 우리 연극열전 힘 있다, 무조건 좋다, 들어와라, 지금부터 그러면 100% 망해요. 아직 그 단계는 아니라는 거죠, 서서히, 서서히 해야지요.”

스타면 된다?
<서툰 사람들>의 한채영, <리타 길들이기>의 최화정, <돌아온 엄사장>의 고수 등, 첫 연극, 혹은 실로 오랜만의 연극이라는 타이틀은 그들에게도, 연극열전에게도 득과 실 모두가 되었다.

“연극은 그래요, 연극은… 유명한 스타라고 해서 다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죠. 그리고 그 사람에게 연극이 도움이 된다고 내가 판단하는 사람이 있고요.”

연극열전2의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기도 전에 연출가 장진에게 연극을 하고 싶다고 먼저 찾아온 한채영과 17년 전 리타였지만, 다시 무대에 오르길 주저한 최화정, 그리고 그저 ‘극단을 소개만 해 줬는데 이미 스스로 빠져 든’ 고수까지.

“내가 알런을 20대 때 하고 40대 때 했었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40대 때의 알런이 더 행복하고 사랑스러웠거든, 그래서 당신도 느껴봐라, 그러면서 최화정씨한테 자신감을 불어 넣었죠. 물론 연기 적인 부분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해요. 하지만 최화정의 열정, 리타에 대한 표현은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관객들의 평도 좋았고요. 더 원초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그렇게 매체에서 라디오 진행을 잘 하는 사람을 소극장에서 가까이 봤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잖아요.”

연극을 보는 행복에 조재현은 작품 자체 뿐 아니라, ‘배우를 가까이서 보며 함께 호흡하는 것’을 넣었다. 또한 그는 연극을 ‘잘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시각이 다름을 분명히 지적한다. 더불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관점과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위험한 발상임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모습이다.

“고수는 같이 산에 다니면서, 제대 후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순수하게 연극이라는 것을 한번 해 봐라, 그런 의미에서 극단을 소개해 줬어요. 그런데 고수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극단 골목길이라는 시스템을 너무나 좋아하는 거야, 이미 제대 전부터 준단원처럼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열정적으로 연기하고, 또 굉장히 잘 하는 또래 배우들을 보고 자극을 받고,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 잘 생긴 거거든(웃음). 또 부족한 게 무엇인가. 그런 건 냉정히 알아야 해요. 그런 점에서 아주 보람있고,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죠.”

실험성, 그것이 본 모습

<에쿠우스>, <남자충동>, <청춘예찬>, <이발사 박봉구> 등 2004년 연극열전1의 라인업은 그야말로 ‘이 정도 작품에 딴지 걸지 못하지?’ 할 만큼 인정받은 것들이다. 반면 연극열전2의 작품들은 ‘못 들어본’, 그리고 ‘웃긴’ 이름들로만 가득하니 적잖이 그 작품성에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연극열전2에서 코미디라고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늘근도둑 이야기>하고 <서툰 사람들> 밖에 없어요. 너무 재미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할 연극열전의 작품들의 대본을 봤느냐, 보지도 않고 어떻게 판단하느냐고 묻고 싶어요. 이미 검증된 작품들이었던 연극열전1이 오히려 상업적이었던 거지, 연극열전2는 굉장히 실험적이에요. 연극을 오랫동안 봤던 사람들이라면 이번의 라인업은 정말 활력소 같은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기억 속 작품들에 머물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을 제시하겠다는 것이죠.”

<블랙버드>, <라이프 인 더 씨어터> 등은 유럽 젊은 작가들의 국내 초연작이며, <돌아온 엄사장>, <민들레 바람되어>는 국내 창작 초연작이다.

“블랙버드 같은 작품은 정말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최근 에딘버러 개막작이라는 것을 떠나서라도 세계 연극의 흐름을 제공해 줬다는 것에 큰 의미를 줄 수 있잖아요. 현재 대학로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고 장기간 좋은 공연을 보여줄 만한 여력이 있는 곳은 없어요. 그런데 했다는 것은 연극열전의 힘이죠.”

조재현이 직접 출연 예정인 <민들레 바람되어> 역시 연극열전의 취지를 살려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자 많은 작품 중에 선별한 창작극이다.

제일 어린 친구와 제일 나이 많으신 분에게

조재현 스스로도 “내가 무슨 프로그래머 한다고 하니까 ‘이거, 조재현이 가오마담인가 보다’다들 그랬다(웃음)”고 말했지만, 틈만 나면 무대 위에 올라가서 인사하고, 핸드폰 꺼 달라고 하는 모습에서 ‘그저 한번 기웃’은 분명 아니었음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좀 생산적인 일을 좋아해요. 장점 중 하나가 부지런하다는 것이고요. 호기심도 많고 창조적인 것도 좋아하고. 그래서 연기하면서도 별개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 오바야(웃음), 너무 일이 많아.”

영화 촬영 때문에 허옇게 염색한 머리를 하고 온 인터뷰 날에도 낮에는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고, 인터뷰 중간, 연습 미팅을 묻는 배우들의 전화가 쉼 없이 걸려 왔으며, 또 다른 기자가 아래층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2, 30대 여성들이 관객의 80%잖아요. 그렇게 잠깐 스쳐 지나가는 문화가 되지 말고, 어린 사람부터 중장년층으로 이어지는 관람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대 인사 나가면 제일 어린 친구와 제일 나이 많으신 분에게 배우 사인이 들어간 팜플렛을 드려요. 어린 친구한테는 ‘내가 보여주는 연극은 최소한 기본 이상의 작품이고 그럴 자신이 있으니까 너 정말 잘 왔다’고 기념해 주는 거고, 나이 드신 분께는 와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는 거죠. 최고 나이 많으신 분이 82세 분이셨어요.”

차가운 머리로 뜨거운 연극

불현듯 자신은 ‘연극에 대한 뜨거운 가슴은 덜 하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저는 옛날 선배님들만큼 연극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없다고 생각해요. 선배들이 가진 뜨거운 가슴이 작다면, 나에게는 냉정한 머리가 있는 것 같아요. 자생적으로 연극이 돌아가는 판을 만들어 보겠다, 이거죠.”

연극열전2를 통해 자체 관객 수의 증가 뿐 아니라 연극에 대한 관심도가 커졌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친근감 있는 배우들로 연극을 외면했던 관객들을 끌어 당겼다고 해도,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연극 내에서도 스타가 탄생해야 한다, 스타 배우가 나오고 그것이 티켓으로 이어지는 것이요. 평소에도 윤석화, 박정자 같은 선배님들이 열 분만 계셨어도 지금 연극 현실이 이렇지 않다라고 이야기 해요.”

예고 없이 사진기를 들이대도 그는 강한 카리스마와 숨막히는 압박감을 앵글에 가득 채웠다. ‘배우가 좋냐, 프로그래머가 좋냐’는 유치한 질문에도 “배우가 좋지, 그럼, 배우가 좋지”하고 말하는 그, 하지만 안정적인 배우의 길이 아니라 계속 도전하고 실패하더라도 호기심 많은 배우가 자신과 어울린다는 그에게 연극열전3과 자신의 미래 그림을 물어봤다.


“장영남, 고수희, 서주희, 이런 분들이 열심히 하고 있고, 티켓 파워를 발휘하는 그 날이 연극열전이 꿈꾸는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또 내가 배우 보는 눈은 분명히 있다고. 지금 <잘자요, 엄마> 연습하는 여자 황정민! 그 친구 배우로서 굉장히 좋은 DNA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배우와 진한 멜로, 정말 금기시 하는 사랑 작품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물론 연기도 잘 해야겠지만 인간으로서도…참 좋은 배우거든요.”

내년에는 <에쿠우스>를 연출하고 알런이 아닌 다이사트 박사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또한 극장 지을 계획도 서 있다는 그에게 연극열전2는 누누이 강조했던 연극판의 변화 중 ‘기초’임이 분명했다. 관객평을 평균 2번 이상 본다는 그는 앞으로도 쏠릴 많은 관심과 그에 따른 막중한 책임을 기꺼이 짊어져야 할 것이다. 좋은 작품과 되는 작품 중 "당연히, 좋은 작품이지"라고 말하는 그. 주사위는 이미 던져 졌다. 떨어진 가장 윗 면의 숫자가 1이라 하더라도 그는 기꺼이 다시 주사위를 들어 공중에 던질 것 같다. 모두가 무모하다 생각했던 불확실을 여러 번의 시도를 통해 ‘확률’이라는 가능성으로 만드는 것 처럼.


글: 황선아 기자(인터파크INT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