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릴 미> '나'로 다시 서는 나 - 강필석
작성일200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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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출연한 전작을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자에게 ‘에네르기파’를 쏘아대던 강필석의 얼굴에 시종 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김종욱 찾기>를 통해 웃음의 힘을 깨달았다는 그는 확실히 유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대학시절 자신의 별명이었던 ‘턱 선의 외로운 각도’를 이제 <쓰릴 미>에서 더욱 아찔하게 발휘할 참이다. 잠시의 여유를 마다하고 <쓰릴 미>의 나, 네이슨으로 몰두 중인 강필석을 만나보자.
“소극장 뮤지컬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특히 이 작품은 단 둘이 나오는 거라서 되게 연극적이고, 그래서 다시 해봐야겠다고 선택을 한 거죠. 또 초연 때 워낙 짧게 참여했기 때문에 뭔가 덜했다는 느낌도 있었고요.”
실제 유괴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심리묘사, 동성애적 색채가 더해져 2007년 한국 초연 당시 신선한 화제가 되었던 뮤지컬 <쓰릴 미>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무대에 선다. 초연 앵콜 공연에 합류했던 강필석이 2009년 첫 공연의 시작에 서서 관객들을 맞을 참이다.
"2007년에는 연출 선생님(김달중)이 많이 풀어놓는 스타일이셨죠. 해석의 여지도 배우들한테 많이 맡기고요. 안경을 떨어트리는 장면도 배우들마다 해석이 달랐어요. 일부러 그랬다, 아니다, 모르고 떨어트렸다. 배우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좋다, 혹은 넘친다, 그렇게 만들어가셨어요. 이종석 연출님은 전반적인 통일성을 주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구성하는 스타일이세요.”
좁은 공간, 강렬한 피아노 음색, 그리고 단 둘의 대화로만 진행되는 이 밀도 높은 작품에서 강필석은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사건을 서술함과 동시에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나’를 맡았다.
“배우로서 ‘나’라는 인물이 훨씬 더 매력이 있어요. ‘나’는 작품의 베이스가 되고, ‘그’가 멜로디를 하는 사람인데, 베이스를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방향이 틀려지죠. 자기가 계획했던 대로 연기의 다양성이 상당히 넓어지는 부분이 참 재밌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연습하면서 그를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굉장히 직선적인 느낌의, 하나의 힘으로 쫙 밀고 가는 역할,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역할이잖아요.”
작년 ‘나’로 섰던 김우형이 이번 공연에서는 강필석과 함께 ‘그’로 서는 것처럼 내년엔 ‘그’의 강필석을 볼 수 있는 것 아니냐 물었다. 돌아오는 개구진 대답, “15분이면 관객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데 그 15분간 ‘키가 너무 작아’라고 이야기 것 같은데요?”(웃음)
스스로, 도전이 되는 것인가?
뚜렷한 공연색으로 수 없이 재관람하는 마니아 관객층을 만들어 낸 것도 <쓰릴 미>만의 특징이다. 호불호가 뚜렷하다는 것, 많은 관객들의 관심 속에 있는 배우에게는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실험적인 형태들을 좋아해서인지 워낙 색이 강한 작품을 많이 했어요. 초연 때 <쓰릴 미>를 처음 보는 관객들이 왔을 때와 마니아들이 많이 오는 날 느껴지는 반응이 달라 좀 생소하기는 했죠. 합류했을 때 이미 너무나 잘 되고 있던 공연이라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었지만 심리적으로 그렇지는 않았어요. ‘난 내가 해석하는 걸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죠. 여러 번 보신 분들은 어제와 다른 오늘의 세세한 장면들까지 묻기도 하지만 제가 그렇게 한 이유는 분명히 있었거든요.”
<지킬 앤 하이드>의 프룹스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 이후 <갓스펠>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통해 ‘예수 전문 배우’의 타이틀을 갖기도, <나인>의 귀도와 <나쁜 녀석들>의 로렌스로 도시적인 이미지를 선사하기도 했으며 <씨 왓 아이 워너 씨>의 경비원과 신부의 역할로 서며 그전까지의 이미지를 말끔히 지워내는 또 다른 모습을 그려냈던 강필석이었다. 팔색조 배우의 길을 만들고 있는 중? 그런 건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김종욱이 가장 대중적인 역할이었죠. 그런데 하면서도 이런 이미지로 날 바꿔보겠다든지 지금의 이미지로 가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아무래도 극적인 작품을 좋아해서인지 텍스트를 가장 먼저 봐요. 텍스트가 좋고 분명 나에게 도전이 되는 것이어야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그러면 도전하는 거죠.”
그래서인지 자신의 목소리와 가창력이 가진 매력에 대해 무척이나 쑥스러워하던 그는 “난 정말 노래 못한다”는 겸손에 이어 “굳이 노래와 연기 중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나는 연기하는 배우”라고 덧붙인다. 조만간 꼭 연극을 하고 싶다는 말에 힘이 가득 실린다.
음악, 여유를 타고 자유로
지난 겨울 홍대 앞 한 클럽에서 열린 작은 콘서트에서 그는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삑사리’가 한 번 났지만 관객들은 몰랐을 거라며 활짝 웃는다.
“군대에서 배웠어요. 육군 사단 군악대 출신이거든요. 스물 넷? 그 때 배우를 안 하고 음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에요. 치아 교정하면서 안 불다가 작년에 한 7년 만인가? 한 공연 스텝이 제가 클라리넷 하는 걸 알고 제의하셨는데 사실 합주를 되게 해 보고 싶었거든요. 음악 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느 밴드에 가서 합주 한 번 하실래요? 그럴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오케이! 했죠(웃음). 이왕이면 재즈 스타일로 편곡한 크리스마스 캐롤을 하면 좋겠다고요. 띠라띠라 띠라디?(웃음)”
어렸을 때 ‘여자는 피아노, 남자는 운동!’을 부르짖으며 그렇게도 피아노를 안 배우려 했던 게 가장 후회스럽다는 그는 조만간 기타 연주 배우기에 도전할 참이란다. 군인이셨지만 너무나 자상했던 아버지와 미인이셨던 어머니를 두루 닮았다는 강필석에게 음악은 더욱 유연히 자유롭게 배우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조력자임이 분명하다.
프로, 배우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
배역을 맡아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는 것이 배우의 몫이겠지만, 어떤 배역을 찾아 갈 것인가, 역시 배우의 몫이다. 그래서 강필석에게는 다작(多作)이 아니라 다상(多商)작이 우선이다.
“좋은 배우를 만드는 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생들에게도 ‘절대 조바심 내지 마라. 계속 배우 할 건데 뭔가 성장을 할 수 있는 작품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하죠. 전 ‘넌 프로잖아’라는 말도 싫어해요. 배우에게 프로라는 말이 안 어울리잖아요. 프로라면, ‘슬퍼’ 그러면 막 슬퍼하고 ‘그만해’ 그럼 그만해야 하는 건가요? 무대 위에서 똑같이 교감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나 몇 십 년을 한 분이나 똑같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상대를 내려다 보고, 끌어줘야겠다, 이런 생각만 들지, 서로 교감 할 수 없어요.”
마음에 세월이 입힌 옷이 켜켜이 쌓여 무엇에 찔러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 무뎌지는 감성이 가장 무섭다는 그. 그래서 강필석은 가장 무서운 존재로 ‘자신’을 꼽았다.
“배우로서 감정적으로 무뎌진다던가, 여유가 없어지면 뭔가를 남에게 줄 수가 없게 되잖아요. 정신 없이 바쁘다 보면 단절이 되고, 그렇게 될 때 내가 과연 관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요. 테크닉 적인 면이 아니라 그 안의 담긴 것들, 그래서 저 자신이 가장 무섭죠.”
배우 강필석은 적어도 무대 곁에서 믿음의 이름으로 불려도 좋을 것 같다. 완벽은 아닐지라도 나아가고 있는 무대 위에, 사람의 시선을 한 순간에 빼앗진 못해도 결국 오랜 기억 속에 또렷이 그가 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배우임을 고뇌하는 몫을 그에게 맡겨둔다. 다양한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휘둘려서는 배우로 설 수 없기에 관람평을 멀리한다는 또렷한 주관도, 클라리넷을 들고 여럿이 더불어 꿈꾸고자 하는 마음도 그에게는 모두 있기 때문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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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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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 2009.03.07
다시 강네이슨을 볼수있게 되서 너무 기쁩니다!!!!!! 다시 보게 된 쓰릴미가 더욱 더 쓰릴해질것 같아요!! 오늘 보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