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솔롱고도 현실이다" 임창정
작성일2009.04.13
조회수21,684
연기를 한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런 임창정이기에 뮤지컬 무대에 선다는 소식이 결코 낯설지는 않았다. 특히나 서민들의 힘겨울 삶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는 뮤지컬 <빨래>에서 몽골에서 온 노동자 솔롱고 역은 소박하고 정감 어린 그의 이미지에도 더욱 잘 어울린다. 따라서 이번 만남은 호기심이 아닌, 반가움에서 시작되었다.
맞아요. 주변 사람들도 요즘엔 “너, (TV) 틀기만 하면 나온다” 그래요(웃음).
뮤지컬 <빨래> 연습이 한창이죠? 작품을 보신 적 있나요?
네, 초연 때도 봤고, 세 번 봤어요. 지금 우리 팀에 초연 멤버들이 많아요.
개인적으로는 욕쟁이 주인 할머니 팬입니다.
저도 그랬어요. <빨래> 본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그분 팬 되요. 그리고 희정 엄마도! 정말 웃기죠. 그러고 보면 솔롱고 역할이 너무 작아(웃음).
<빨래>를 통해 유명해진 배우들이 참 많아요.
그럼요. 아마도 작품이 가진 어마어마한 힘 덕분에 그럴 거에요. 자극적이지 않게,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힘이죠. 거창한 인생의 이데올로기, 그런 걸 직접 다루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우리 일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강요하지 않은 웃음과 또 눈물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게 제일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이 되요.
얼마 전 공개된 작품 티저 영상에서 이 작품을 보고 많이 울고 웃었다고 하셨어요.
진짜 시도 때도 없이 울었어요. 처음 볼 때는 1막 끝날 때 (직접 노래를 부르며)“비오는 날이면, 외롭고 쓸쓸한 날에 우산~” 거기서 나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누가 우리의 삶의 위로해 주지~” 거기서도 진짜 짠, 했어요. “서울 살이 몇 핸가요”, 그 마지막 씬에서는 정말 펑펑 울었어요. 너무 좋고 감사해서요.
뭐가 감사했나요?
첫 번째는 나한테 이런 삶에 대한 위대한 욕심이 있다는 것에, 그리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고 그냥 열심히 살기만 했었는데, 내 삶의 의미가 뭘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줘서 감사했고, 마지막은 이렇게 좋은 작품을 내가 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했어요.
초연 때부터 할 계획이 있었던 건가요?
제가 16, 7년 전에 <에비타>, <마의태자>라는 뮤지컬을 했을 때 지금 <빨래> 제작자인 (김)희원이 형이 코러스를 했었어요. 제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어 하고 방황하던 때였는데 저를 많이 잡아줬죠. 형 집에서 거의 살았거든요. 너는 잘될 거다,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만 하면 분명 잘 될 거라고요. 그 때 매일 형이랑 소주 한잔씩 하면서 나눈 얘기가, “형은 뮤지컬 제작자가 되어 있을 테니, 너는 잘 나가는 배우가 돼서 나중에 꼭 우리 좋은 작품 만들어보자”였어요. 그러다 저는 바빠지고, 희원이 형도 외국으로 나가서 연락이 두절 됐었거든요. 그렇게 7, 8년이 흐르고 영화 ‘시실리 2km’를 촬영하면서 같이 했던 배우 (김)윤석이 형한테 혹시 연극하시는 분 중에 김희원이란 사람을 아냐고 물었더니 지금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다음 날 공연장에 가서 봤죠. 보고 막 웃었어요(웃음). 정말 거기 있는 거예요. 그날 희원이 형도 제 웃음소리 듣고, ‘창정이가 왔나?’ 그랬대요. 그 후에 같이 영화 3편에 출연하고, 그 도중에 형이 <빨래> 제작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같이 하자고 이야기가 된 거죠. 그런데 초연 때는 제가 다른 영화를 찍느라 합류를 못했죠.
<동숭동연가>, <에비타>, <마의태자>, 세 작품을 했어요. 대학 재수하던 21살 때 추천으로 오디션을 보게 됐죠. <동숭동연가>의 이종훈 연출님이 저를 잘 챙겨주시던 방송국 PD님한테 이병헌이나 김민종을 섭외해 달라고 말씀하셨다는데 “그 사람들 시간도 없을 뿐더러, 더 좋은 얘 있으니까 한번만 봐라” 그러시면서 저를 연습실에 보낸 거죠. 그런데 딱 보니까 제가 키도 작고 촌스럽고 여드름도 나고, 좀 그렇게 생겼거든(웃음). 실망하시는 눈빛이 역력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전 ‘이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정말 갈 데가 없다’고 생각해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그랬더니 책을 주시면서 내일부터 나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하게 되었어요.
앙상블이나 단역의 경험 없이 비교적 쉽게 주인공이 되셨어요. 그렇다면 뮤지컬 무대에 계속 있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요?
그때는 뮤지컬 배우로서 유명해지기보다는 스타가 되고 싶었고,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래를 하게 됐고, 영화 연기를 하게 됐던 거죠.
그 이후에도 할 기회가 없었나요?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이 많은 스케줄을 하면서 무대에 서기가 겁이 났었어요. 민폐도 될 것 같고, 또 불량품 만들기가 싫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 보니까 할 수 있겠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앞으로도 좋은 작품 있으면 할 생각이에요. 내가 너무 겁을 내지 않았었나, 그랬던 것 같아요.
솔롱고 역은 홍광호씨와 함께 맡았습니다.
전에는 광호를 잘 몰랐었는데, 와,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희원이형한테 “저 친구는 누구야” 그렇게 물어봤더니 “대학로에서 제일 유명한 얘야” 그러더라고요(웃음). 되게 고맙게 생각했죠, 그렇게 유명한 배우와 같이 솔롱고를 한다는 게 얼마나 영광이에요. 그렇지만 전 꼭 광호보다 잘 할 거에요(웃음). 진짜 열심히 해서 더 잘 할 거에요.
작품이 좋으면 배역은 관계 없어요.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노래도, 노래만 좋으면 장르는 안 가리고 해요. 제가 대중음악 하는 사람이고 대중예술 하는 사람이 뭘,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것 하면 되는 것이죠.
‘사람이 많이 좋아하겠다, 아니다’라는 감은 오나요?
네, 제가 좀 그게 많아요. 보편적 정서에 관한 이야기인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슬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아요. 영화 찍을 때나 노래 선곡할 때도 그렇고요. 저라는 색깔이 대중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지금까지의 맡았던 악역도 밉지 않게 느껴져요.
굳이 그런 역할을 한 건 아닌데, 어떤 역이든 작품이 좋으면 하는 거죠. 저는 늘 열려 있어요. 소시민적이고 어디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 제게 있으니까 그런 배역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긴 하죠.
일부러 다양한 역할로 연기의 폭을 넓히려고도 하잖아요.
87년도부터 했으니까 지금까지 연기 생활이 22년이에요. 그런데 저는 변화, 변신, 그런 것에 대해 잘 생각 안 해요. 물론 변화는 모든 연기자들에게 수반되는 것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기도 모르게 내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변신인 것 같아요. 저는 단지 순간순간에 충실한 것 뿐이죠.
결혼은 삶의 큰 변화이겠죠?
그럼요. 좋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너무 잘한 것 같아요. 이 나이 되도록 내가 결혼을 안 했다? 우리 얘들이 없다? 어휴, 상상도 하기 싫어요.
아이들은 임창정씨를 어떤 아빠로 보고 있을까요?
불량 아빠죠. 매일 밖에만 나와있으니. 아들만 둘, 4살하고 2살 됐는데, 끼가 진짜 많아요.(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이들 동영상을 보여주며 한참이고 웃었다) 이제 딸도 낳을 거에요(웃음).
불량아빠 개선의지가 별로 없어 보이는데(웃음).
돈 벌어야죠, 그래야 아이들도 먹여 살리고(웃음). 결혼, 그리고 책임감이 일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일단 접근 방식이 틀려요. 예전에는 다음 스케줄 있고, 그러면 찍고, 그랬는데 이제는 ‘아, 즐겁다, 내가 일이 있어서 얘들이랑 같이 살아갈 수가 있구나’ 그래요. 지금도 목이 완전히 쉬었는데도 인터뷰하는 게 너무 즐거워요.
잘하는 것은 연기, 좋아하는 것은 노래라고 하셨어요.
노래는 정말 타고 나야 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가수라는 타이틀로 노래하고 있지만 가수는 아닌 것 같아요. 이승철, 김건모, 임재범, 나얼 처럼 정말 타고난 사람들이 몇몇 있어요. 그런 사람은 노력 안 해도 99점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98점까지는 가되 99점은 절대 못 넘거든요. 하지만 연기는 몇 점을 타고났건 노력만 하면 다 100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력만 하면 그 1점을 넘길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요, 저는.
그렇다면 스스로는 몇 점을 타고난 것 같으세요?
연기는 90점 이상 타고난 것 같아요.
연기력을 타고났다는 건 언제 아셨나요.
‘아, 내가 연기를 곧잘 하는구나’ 하는 건 17살 때 영화 ‘남부군’을 찍으면서요. 첫 씬 촬영하면서 감독님이 “어, 이놈 연기 잘하네” 이런 말씀 하시더라고요. 제가 막 밥을 퍼 먹는 장면이었는데 안성기 선배님이 “너, 연기 잘한다” 그렇게 말씀해 주셨거든요. 그래서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했고, 확신을 갖게 된 건 영화 ‘비트’ 찍으면서. 첫 컷이 제가 막 욕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주변 스텝들이 다 쓰러지는 거에요. 그래서 ‘아,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100점은 가겠구나’ 그랬죠.
그렇다면 본인의 약점은?
노래가 그렇죠. 계속 연습하지만, 지금 한 87, 8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요?) 이번 앨범도, 그 정도? (그렇다면 지금에서 최선을 다하신 거군요). 그럼요. 최선이에요(웃음)
고등학생 때 독서실을 오가며 들었던 곡이 임창정씨 5집 ‘진달래꽃’이었어요. 그래서인지 그 노래만 들으면 독서실이 생각납니다.
제가 바로 그걸 하고 싶었던 거에요. 내 노래를 들으면서 “아, 임창정 노래 새로 나왔네”가 아니라, “아, 옛날에 임창정, ‘소주 한잔’, 아, 그때 내가 누구 만나고 있었는데” 이런 추억을 끄집어 내는 것, 그렇다면 아주 만족이죠. 그렇다면 앨범 판매나 여러가지가 같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을 하고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좋네요(웃음).
앨범 제목도 ‘리턴 투 마이 월드’고 지금도 배우로 첫 발을 딛던 뮤지컬 무대에 다시 섰습니다. 이제 자신의 세계로 돌아오신 건가요?
그렇죠. 이것 저것 막 하는 저의 세계(웃음).
임창정의 세계를 한마디로 하자면?
비지(busy). 저는 현실이에요. 닥치는 대로 해 나가죠.
그렇다면 임창정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때도 지금처럼 막 일 벌리고, 끝없이 도전하면서 살 것 같아요. 영화 감독도 해 보고 싶어서 시나리오도 써 놓은 게 있고. 그때도 바쁘지 않을까요? (바쁜 게 좋으신가요?) 네, 그럼요. (바쁜 것 말고 제일 좋은 것은요?) 우리 얘들!(웃음)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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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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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 2009.04.16
어제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 다녀왔어요.. '기발한 자살여행' 보고왔지요 ㅎㅎ 뮤지컬 '빨래' 보러 갑니다. 지금예매합니다 ㅋㅋ 여러 말이 필요없는 엔터테이너죠.. 임창정씨 기대할게요~~~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