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고마워> 부부로 만난 박준규, 오정해

일상속에서 자연스럽게 “여보, 고마워” 라고 말할 수 있는 대한민국 남편, 아내는 과연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에서 외치기엔 낯 간지러운 제목, 하지만 이것이 바로 아내의 잔소리가 잦아들기를 바라는 남편들이  배워야 할 핵심문장이다. 잔잔하고 감동스런 부부운동 물결에 박준규, 오정해가 시한부 부부가 되어 큰 출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각자의 남편과 아내를 뒤로하고 부부의 연을 맺으셨어요.
오정해: 선배님이 하자고 하셨어요(웃음).
박준규: 9년 만이에 돌아온 연극무대에요. 그 동안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섭외요청도 많았는데. 글쎄, 가슴을 울리는 게 없었다고 할까? 사실 우리 <여보, 고마워>는 대형 뮤지컬에 비해선 밋밋하죠. 경쾌한 맛은 부족해도 현실에 딱 맞아 떨어지는 매력이 있어요. 관객들과 가깝게 마주할 수 있는 소극장 이고, 우리 창작뮤지컬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선뜻 오케이 했죠. 그리고 바로 정해한테 연락해서 같이 하자고 했어요. 단아함의 결정체 아닙니까. 물론, 그 사이에 괄호 닫고 괄호 열고는 나만 알고 있지.

같이 출연하시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친해지신 건가요?
오정해: 십 년 전인가?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에 선배님이랑 같이 출연해서 그 때부터 알고는 있었죠. 당시에 박준규 선배님 카리스마가 대단했어요.
박준규: 그 때도 악인이었어. 우리가 이렇게 부부로 출연할거라곤 상상도 못했지. 지금 같이 출연하는 ‘붕어빵’을 통해서 많이 친해졌어요. 아이들이랑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보니까 애들을 보면 ‘아, 쟤는 버릇없게 컸구나’ 라는 게 보이거든요. 그런데 정해는 애도 참 잘 키웠고, 착하고, 결정적으로 남편이 저를 참 좋아해서 좋더라고요.
오정해: 남편이 정말 선배님 광팬 이거든요, 선배님이 저희 식당에 오신다고 했더니 저한테도 안 보여준 특별식 메뉴를 짜놓고 대기하더라고요. 방송 끝내고 가족끼리 모임도 자주해서 친해졌어요. 언니는 (박준규 아내)는 저희 모임(붕어빵 출연자 모임) ‘왕언니’로 통해요. 성격도 화통하시고 정말 멋있어요.
박준규: 멋있지, 우리 와이프가.

이번 공연에서 경제적으로 능력 없는 남편 역할을 맡으셨어요.  
박준규
: 연기를 하다 보면, 우리 아내가 현명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껴요. ‘야인시대’ 쌍칼로 뜨기 전에는 제가 계속 헤맸거든요. 삼류영화도 찍고 매일매일 바쁜데 일은 전혀 안 풀리고 동료들은 쭉쭉 뻗어나가고. 바쁜데 남는 게 없는거에요. 속상해서 매일 술 먹고 싸움하고 다니니까 하루는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당신, 남들보다 조금 늦게 되는 건데 왜 그래? 누고도 당신 보다 잘난 사람 없어” 그러면서 제가 지방공연 다닐 때 항상 쫓아다니면서 박수 쳐주고, 어디를 가든 제 기를 팍팍 살려주면서 지켜줬거든요.  
오정해: 제가 언니를 처음본 게 첫 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공연장에 왔을 때 였거든요. 선배님 작품 할 때마다 공연장에 오시덜. 그 때 저도 대단하다고 느꼈죠.
박준규: 원래 ‘야인시대’ 쌍칼도 안 하려고 했어. 그 때 영화 시나리오가 삼 십 개가 줄줄이 들어오는 거야, 그때 난 영화배우였는데 왜 드라마를 해, 그랬더니 아내가 딱 한 마디 하더라고. “너 미쳤구나” 그래서 바로 했지, 안 했음 얼마나 속상할 뻔 했어.
오정해: 맞아, 무조건 아내 말을 들어야 된다니까요.

오정해씨는 워킹맘으로 나오시죠?
오정해: 남편은 6년 째 전업주부고, 돈벌이를 해야하는 아내 입장으로 나와요. 경제적인 고충 때문에 일을 하는데, 대한민국 아내들은 퇴근하고 와서 집안일을 해야하는 원더우먼으로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잖아요. 엄마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도 부족하고, 집에 있는 시간도 적으니까. 워킹맘들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격지심을 가지고 사는 경우가 많거든요. 대한민국 워킹맘들의 대변인 역할이에요. 

실제로도 워킹맘이잖아요.
오정해:
남편이 많이 도와줘요, 외조의 왕이죠. ‘붕어빵’에 나간 것도 남편이 추천해서 나갔어요. 첫 녹화 끝내고 이제 할 얘기 없으니 그만 나가야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방송 나가면 내가 술 끊을게” 이러더라고요. 영현(아들)이가 방송에 나오니까 신나가지고(웃음). 제가 일하는데 있어서 남편의 원칙은 ‘일로 하면 안 된다, 즐겁게 할 수 있으면 해라.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주의거든요. 제가 하고싶은 일이니까 우리 남편 앞에서는 힘들다고 하면 안되요(웃음).

결혼 10년 차 넘는 부부에게는 싸운 이후 화해의 노하우가 있을 것 같아요.
박준규:
우리집은 100% 내가 잘못해서 싸우는 거라. 원래 잘 싸우지도 않고 싸워도 오래 못 가요. 아침에 싸우고 나가면 전화나 문자로 무조건 해결을 해야 일을 시작할 수 있거든요, 빨리 끝내요. 그런데 반성문도 써봤는데 한 장 이상은 못 쓰겠더라.

100% 잘못이라면?
오정해: 술이지요, 뭐.
박준규: 백 프로야, 백 프로.
오정해: 전 지나간 잘못에 대해서는 안 물어봐요. 말을 안하고 있으면 잘못한 사람도 미안한 마음을 표시해요. “여보, 사과 사다 줄까?” 이런 식의 애교로 화해를 청해오거든요. 그 때 옛날 일을 들춰서 다시 따지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안 묻거든요. 궁금해도 저 스스로 쿨한 척 하는거죠.

신혼 때는 많이 싸우지 않나요?
박준규: 신혼 때는 그랬지. 나는 네로 스타일이라 싸우면 내가 이겨야 되는 거에요. 소리 지르고 “조용히 해!”이러면서 아내한테 말도 못하게 할 때도 있었고. 그런데 10년이 지나니까, 내가 큰소리쳐서 되는 게 아니더라고. 20년 가까이 애들 키우면서 살고 있는데 서로 속속들이 너무 잘 알게 되잖아요. 저희 아내는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짜증을 내는 스타일인데. 신혼 때는 여행 잘 다녀와놓고 나한테 짜증을 내는 거에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되는거죠. 그러니까 저도 “그거 버틸 체력도 안되냐?” 이러면서 싸움을 하고. 그런데 지금은 “여보 자, 당신은 자야 해” 이러면서 제가 재워줘요. 투정부리면 받아주고. 그렇게 살아야지, 그러니까 이제 싸울 일이 없잖아요.
오정해: 저희 남편은 13년 동안 치약뚜껑을 닫아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이걸 왜 안 닫냐고 따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전 신혼 때부터 저랑 생활방식이 달랐던 사람이니까 전 그냥 ‘그래, 나중에 또 쓰는 거니까” 그러면서 이해하고 그냥 뒀어요.


박준규:
와, 현명하다.
오정해: 맞아, 난 진짜 현명해(웃음).
박준규: 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수건 똑바로 놔!” 하면서 하나하나 고치려고 하면 어렵잖아요. 그럼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거고 다른 사람하고 살아야지.
오정해: 저희 남편이 하루에도 수건을 열 개는 더 써요. 한 번 휙 던져두고. 그럼 전 아까우니까 털어서 쓰고. 남편이 양말도 그냥 거실에 벗어두면 그냥 제가 다 걷어서 빨래통에 넣어요. 아, 그냥 이건 이 사람 습관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박준규: 그런데 어느 순간 ‘아, 이 여자도 힘든데’ 그러면서 직접 빨래통에 넣을 때도 있는데.
오정해: 맞아요, 그럼 또 감동받고.
박준규: “이 남자가 이제 별 짓을 다하네, 왜 이래” 그러면서 서로 한 번 웃고. 이런 게 부부가 사는 맛인 것 같아요.

두 분에게 ‘여보’는 어떤 존재일까요?
박준규:
오직 하나요. 아들은 둘이잖아요. 엄마도 장모님이 계시니까 둘이고. 저한테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제 사람이죠.
오정해: 영원한 내 편이요. 든든할 때도 있는데 남편이 미운 아들처럼 느껴질 때도 있긴 하죠. 저희 연극에 남편이 암에 걸리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연습을 하면서 남편의 존재에 대해서 새삼 느껴요. 아무리 미워해도, 이 사람이 사라진다는데 용서가 안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희 연극을 보신다면, 한곳에 있지만 어쩌면 대각선에 서 있을지 모르는 부부들이 서로의 시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에요.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 (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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