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퀸> 섬뜩한 애증의 모녀, 홍경연 김선영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함이다. 시간이 더할수록 무대를 향한 두 눈은 또렷해졌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충격적인 나날들을 살고 있는 이 모녀의 이야기에 소름이 돋고 이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다시금 고개가 떨린다. 2010년 신년 연극 무대에 큰 이슈를 몰고 오고 있는 연극 <뷰티퀸>에서 홍경연과 김선영은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강한 연극성으로 찾아온 마틴 맥도너의 첫 희곡
연극 <필로우맨>의 작가로 더욱 유명한 마틴 맥도너의 첫 희곡인 <뷰티퀸>은 아일랜드 린낸에 살고 있는 칠순 노모 매그와 한 때 ‘린낸의 뷰티퀸’을 차지했지만 지금까지 연애 한번 못 해보고 엄마를 돌보며 살고 있는 마흔의 딸 모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해부터 무대에 불고 있는 모녀 이야기가, 또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라는 타이틀을 보고 쉬이 떠올릴 수 있는 로망스가 아닌, 지독히도 전투적이며 필사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모녀, 홍경연과 김선영을 마주했다. 공연 후엔 작품 속 인물로서의 여파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하여, 공연을 앞둔 넉넉한 시간에 말이다.

첫 희곡을 접했을 때, 그리고 연습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 작품 자체에서 나오는 연극적 에너지가 무척 강했다. 굉장히 오랜만에 이런 작품을 대해서 배우로서 너무나 설레고 흥분 되었다. 강한 느낌의 소재여서가 아니라, 극 구성 자체가 가진 에너지가 크다.

: 원작에서 모린의 행동이나 해석을 좀 틀었다. 그래서 인물에 대한 서브 텍스트가 달라지고, 어떻게 인물을 풀어야 할지 연습할 때 충돌이 있었다.

평범한 모녀 관계는 아니다. 각자 맡은 역을 캐릭터로서, 인간으로서 이해하는가?
  : 평범하진 않지만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심한 말투, 심한 몸싸움을 하진 않지만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을만한 신경전들 아닌가. 나 역시 엄마를 모시고 극과 똑같은 상황에서 살고 있다. 강한 모티브이긴 하지만, 일상의 사람 사는 이야기,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풀고 싶다. 모녀 이야기가 다 슬프고 나중엔 화해하고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 매그가 충분히 이해됨에도 불구하고 극중 일흔이라는 나이 때문에 표현의 어려움은 여전히 있다.

: 인물을 사랑해야 이해도 할 수 있는 거라서, 모린을 이해하려고 계속 노력 중이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게 쉽지 않았다. 대본을 읽고 나서 이 여자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고까지 했다. 그랬더니 연출이 “맞다,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도 사랑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라고 좋아하더라(웃음).

: 원작 역시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일상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풀어서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 엄마 입장에서는 무덤 같은 집안에서 딸이 유일한 삶의 끈이다. 그런 애착 때문에 딸을 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또 둘은 지식 수준도 높지 않을 뿐더러 도회에서 떨어진 농가에서 살고 있기도 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이렇게 격한 표현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처음엔 우리도 굉장히 버겁고 생소했지만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런 것 때문에 표현을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 걸 느낀다.

매그가 입은 화상의 원인을 다르게 기억하는 모녀, 파토를 향한 모린의 사랑이 진정 ‘사랑’인지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해방구일 뿐인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 원작에서 딸은 스스로의 행동을 모두 기억하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좀 다르다. 핵심인데 노출해도 될까?(웃음) 극의 첫 대사가 모든 걸 다 설명해 준다고 생각하는데, 모린이 집에 들어오자 매그가 “비 맞았니?” 하면 딸이 “말이라고”라고 한다. 그냥 “응” 그러면 될 것을, 싸움은 딸이 건다. 처음엔 둘의 싸움이 커질수록 이들의 애증이 잘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출은 화를 더 속으로 누르고 참아야 한다고 해석했다. 그래야 관객들이 모린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해석하기론, 모린은 파토를 너무나 사랑한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나를 정말 사랑해 주는 걸까, 하는 두려움은 있지만. 이런 것들을 관객에게 분명하게 주지 않으려고 하는 건 어찌 보면 연출의 의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배우가 연기를 모호하게 할 수는 없다. 그게 바로 우리 네 배우들의 매일의 과제다.


완벽주의자 연출가와 평화주의자 배우들, 우리는 환상의 짝꿍

4주간 런쓰루(실제 공연처럼 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가는 연습)를 했다고 한다. 1주, 많아야 2주 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느냐.
: 그게 한국 연극의 문화인데(웃음) 이현정 연출은 다 그렇게 길게 한다. 연습 시작 전부터 철저하게 계획이 쫙 나와있다. 늦거나 하루 이틀 달라지면 난리가 난다.

배우들간의 호흡은 어떤가?
: 네 명의 배우들 중 내 성격이 가장 세다.(웃음) 세 분은 내가 만난 어떤 배우들 중에 가장 평화롭고 퍼펙트한 팀이다. 완벽하게 평화주의자다. 난 파이터인데 얼마나 힘들었겠는가(웃음). 작업을 하다 보면 저마다의 철학과 연기 접근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적인 교류나 바탕이 잘 다져져야 팀이 잘 진행될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는 여기 배우들이 너무나 훌륭하다. 우리 연출님은 복 받은 거다.(웃음)

: 다 처음 만난 후배들이지만, 누구 하나 모 난 것 없이 다 안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선영씨가 파이터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런 기질 때문에 오히려 문제에 있어 바로 깨고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난 겉으로 웃고 있어도 안에서는 피고름이 흐르는 전형적인 A형 스타일이라서 선영씨 같은 성격을 굉장히 부러워했다. 오감이 살아 있는 배우다. 고향이 경상도라 그냥 얘기하는 걸 보고 싸우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웃음)

: 정말 억울한 경우가 많다. 가만히 있는데 화났냐고 물어보고. 하긴 신랑도 아직까지 왜 화났냐고 하니 오죽하겠는가.(웃음)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나. 경력이 상당하다.
: 흔히 영덕 대게라고 하는데, 영덕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강구 항이 있어 실은 ‘강구 대게’다. 집이 바로 그 강구다. 학생 때 EBS 문화 프로그램에서 연극 <나만의 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전에 연극이라는 걸 아예 몰랐으니 그 충격이 장난 아니더라. 연영과는 특별한 사람만이 가는 줄 알고 전혀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대학 극회에서 처음 연극을 시작했고 그 후 공연예술아카데미에 들어갔다.

: 고등학생 때 <사운드 오브 뮤직>을 단체관람 했다. 그러고 나서 연극 <죄와 벌>을 단관 했는데 ‘저건 내가 할 거다’(웃음) 했다. 그래서 학력고사 끝나자 마자 <죄와 벌>을 했던 시민극장을 찾아갔더니 내일부터 프로그램하고 표 팔라고 해서 교복 입고 머리 땋고 표 팔았다.(웃음) 다음해 서울예대에 들어갔는데 학교보단 극장에 있었다.

3월 워크숍 공연 때 주인공을 시켜줘서 계속 열심히 했는데 어느 순간 연극 하는 사람들에 좀 치여서 스물 아홉 살 땐 무대를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 떠나보니 어디나 다 똑같더라.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람들과 더 싸워보자, 해서 서른 한 살에 다시 돌아왔다. 최근 몇 년간은 나를 좀 깨보고 싶어서 연극보단 영화 쪽을 많이 했는데 이번 작품은 너무 좋아서 죽어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명, 스타 배우가 되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은 없는가.
: 없을 수가 없다. “아, 나 떠야 해” 그러기도 한다.(웃음) 배우는 늘 선택을 받아야 하니까 참 불쌍한 존재이다. 내 작품을 봤던 조연출의 추천으로 영화 <잠복근무>에 잠깐 나온 적이 있는데 그전에 연락도 없던 친구들한테 전화가 오더라. 지금은 충분히 이해하는데, 그땐 어린 마음에 기분이 되게 나쁘더라. 뭐지? 그렇다면 연극은 인정을 안 해주는 건가? 하고. 그런 것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연극 배우 하기 힘들 것이다. 신념과 자신의 철학이 있어야 될 것 같다. 또 공연 끝나고 관객들이 막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열렬히) 이렇게 박수 치는 걸 보면 그게 뭔지 모르지만 너무 감사하다.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겠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연극으로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연극이 분명 힘이 있다는 것이다.

: 내가 연극을 시작할 때는 스타의 개념이 아예 없었다. 지금은 흔하게 배우들을 볼 수 있는데 그 때만 해도 로비에 관객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배우가 밖에 나가면 안 됐다. 분장한 상태로 누가 찾아왔다고 해서 나가면 어디선가 선배의 슬리퍼가 날아왔다.(웃음) 그래서 난 스타 시스템이나 스타에 대한 꿈이 없다. 좋은 작품에서 정말 잘 한다, 하는 말과, 저 사람 정말 좋은 사람이야,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꿈이다. 사람이 싫으면 연극 절대 못하고 그게 연극의 매력인 것 같다. 어느 정도만 떴으면 좋겠다.(웃음)


<뷰티퀸>이 전해 주는 이야기

개막과 동시에 좋은 평이 이어지고 있다.
: 아직 직접적으로 칭찬은 못 들었는데, 남편이 잘한다고 해 줬다.(웃음)

: 지인들이 보고 나서도 선영씨가 참 잘한다고 다들 이야기 한다. 워낙 예민한 친구라 이렇게 끌고 오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 확 가는 미친 역할들이 함정이 있어서 정말 미친여자로 끝나버리기 십상인데 이성을 갖고 제어하면서 가는 것, 김선영과 모린이 싸우며 고민하는 것이 다 보인다.

작품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어둠 속의 댄서’를 보고는 정말 싫어하게 되었다. “주인공 미친 여자 아니야?”하면서 분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연출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그 작품 너무 좋아한다, 그걸 원하는 것이다”라고 하더라. 아, 연출이 가고 싶은 곳이 바로 그곳까지구나, 여기까지 내려가고 싶은 거구나, 하고 희한하게 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공연을 하면서 내가 점점 이렇게 눈이 넓어지고, 그걸 단 한 명의 관객에게 전달돼서 나처럼 생각이 변한다면 이건 성공한 거다. 작품이 나를 계도하고 있다.(웃음)

: 특히 한국 정서는 사랑 표현에 서툴지 않느냐. 모린, 매그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만 삶에 찌들다 보니 너무나 익숙한 것들에 그것이 덮여있는 것 뿐이다. 사랑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당신들도 사랑이 있으니 표현을 해 봐라, 하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매그가 모린과 싸우다가도 문득 애처로운 눈길로 볼 때가 있다. 그건 말은 안 했을 뿐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걸 관객들이 알아봐줬으면 좋겠다. 1차원적으로 나쁘게 보일 순 있어도 절대 악인이 아닌 모습으로 그려갈 수 있게 우리들 모두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하는 중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_신혜(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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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A** 2010.01.26

    이름 바꾸신줄 알았네요.. ㅋㅋ 김선경.. 이라고 표기하신 배우분은 김선<영>;씨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