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의 봄 나들이, 루시드폴

'공학박사 가수’, ‘음유시인’ 등 이색경력과 음악성으로 회자되어 온 루시드폴에게 또 하나의 타이틀이 붙었다. '전석매진 가수, 루시드폴’. 전쟁터라 불렸던 지난 해 연말 콘서트에서 전석매진 이라는 기분 좋은 흥행기록을 세운 것이다.  ‘최고의 중독성’을 가진 노래로 공연, 음반시장의 '소리 없는 강자’로 불리고 있는 루시드폴이 봄맞이 무대에 나섰다.

“전석매진, 5년만의 봄 무대”

지난 해 크리스마스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루시드폴은 올 해 화이트데이에 맞춘 <4집 발매 기념 앵콜 콘서트>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3월 13,14일 양일간 예정됐던 이번 공연은 뜨거운 티켓판매에 힘입어 3월 12일 한 회 차를 추가 오픈 하며 순항 중이다. “학업 때문에 주로 연말공연만 했었는데”라는 루시드폴의 목소리에는 이번 봄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잔뜩 실려있다.

“인터파크 사이트에 들어가서 제 이름을 치면 공연 히스토리가 나오잖아요. 그걸 쭉 살펴보니까 봄에 공연을 하는 게, 거의 5년 만이더라고요. 앵콜 공연이라는 타이틀을 달긴 했지만, 지난 번 공연과는 다른 변화를 주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노래는 4집 앨범이 주가 될 것 같고,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서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를 공개할 생각이에요.”

음악을 만들어내는 루시드폴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신문의 ‘사회면’ 이라면 무대에 선 루시드폴의 아이디어를 자극하는 것은 티켓 예매 사이트에 남겨진 ‘관객후기’다.

“가끔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봐요. 공연을 준비할 때 공연후기가 굉장히 좋은 정보가 되거든요. 사람들이 어떤 부분을 아쉬워하고 좋아해주는 건지 생각하게 되요. 후기를 하나하나 다 읽지는 못하지만, 공연을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되요. 후기의 개수를 보면서 간접적 이나마 공연의 평가를 할 수  있거든요. 제가 ‘아, 이번 공연 후회 없이 잘했다, 재미있었다’고 생각한 공연들이 확실히 후기도 많이 올라와요.


지금 공연을 준비하면서 제 팬이 아닌 분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어요. 제 공연에 오셨다고 해도 루시드폴의 노래를 한 두 곡만 알고 오신 분도 계시고, 여자친구랑 한 번 오시는 분도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은 제 공연이 어렵거나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래서 공연장 크기, 공연 포맷을 고려하면서 공연을 준비하려고 해요.”

루시드폴의 노래를 들을 때는 끊임없이 리플레이를 누르게 된다. ‘그대 손으로’,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가 그렇고 4집 앨범 ‘평범한 사람’, ‘고등어’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조근조근한 속삭임의 중독성을 간직한 그의 노래들이 공연장에서는 어떤 빛을 낼까?

“음악을 듣는 건 나와 음악과의 일대 일의 이야기지만, 공연장에서는 나와 같은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 간의 교감이 큰 폭을 차지하잖아요. 스위스에서 클럽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관객 간의 교감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브라질 여자 보컬이 잘 알려진 보사노바 넘버를 부르는데, 그 음악에 맨 앞줄에 있던 예순 살의 할아버지, 이십 대 연인이 다 같이 행복해하더라고요. 그 때 ‘아, 라이브에는 관객들끼리의 교감이라는 게 있구나’는 걸 느꼈죠.

“음반작업, 라이브 무대 - 행복의 맛이 다르죠”

입 소문을 타고 알려진 루시드폴의 작곡, 작사 능력은 덧붙임 없이 ‘천재’라는 수식어로 일컬어졌다. 루시드폴의 가창력에는 폭발적인 가창력들의 소유자들이 미치지 못한 따스함이 담겨있기는 하나, ‘유희열 보다 노래 잘한다’는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아쉬운 매력이 있다. ‘무대 위 황제’ 보다 ‘작업실의 황제’에 가까운 그에게 음반이 선사하는 행복의 파이가 조금은 더 크지 않을까.

“작업을 마쳤을 때, 공연을 마쳤을 때의 행복감은 다른 종류에요. 노래는 기록물을 남기는 느낌에 가까워요. 당시의 기억을 가지고 노래를 만드는데, 나중에 가서는 처음 그 느낌을 잊어버릴 때가 많죠. ‘고등어’를 쓸 때도 ‘아, 이게 좋으니까 가사를 써보자’고 썼는데, 그런 것들이 잘 기억이 안 나요. 노래는 앞으로 저와 함께 존재하는 것들이니까 소중하죠. 공연은 당시의 기억이 뚜렷해요. ‘아, 2008년 겨울 공연 때 그랬지’ 하면서 생각이 나거든요. 잘 끝낸 공연에서는 카타르시스 덕분에 그 때의 기분이 여운처럼 쭉 남죠. 음악 작업을 완성 했을 때, 공연을 무사히 마쳤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많이 달라요.”


20대, 30대들이 루시드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에서 벗어난 넓은 주제에 있다.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가사와 선율을 뽑아내는 루시드폴의 족집게는 어디에서 시작될까?

“정말 많아요. 오늘처럼 비 오는 날도 감성을 건드리는 것 중에 하나죠. 비 오는 날이 좋아요. 저는 일단 마른 게 싫거든요. 유럽에 살 때는 마른 음식들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국물이 있고, 따뜻한 음식이 좋아요. 밥도 갈수록 진밥이 좋고(웃음). 햇살 좋은 쨍쨍한 날씨도 좋지만, 눅눅하고, 비가 내리고, 안개 낀 날씨를 좋아해요. 왠지 모르겠는데, 뭔가를 만들든, 느끼든, 생각하든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절 더 감성적으로 만들어줘요.”

“공학박사는 이제 그만! 가수 루시드폴 입니다”

루시드폴에게 4집은 큰 의미였다. 24시간 음악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음악 전업 선언’ 이후 낸 첫 앨범이었다. 전업가수 루시드폴로 살았던 4집 활동 기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공부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그리고 음악적으로도 힘든 게 없었는데…. 물론 힘들었지만, 그건 즐거운 힘듦이었죠. 음악 외적인 것들에 끄달리기 시작한 것 같아요. 미디어와의 관계, 음악 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 회사와의 관계 이런 것들요. 취지에는 공감하나, 제가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한 부탁도 많이 들어와요.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많아요. 저는 절 노출시키는 걸 별로 좋아 하지 않거든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는데, 정신적인 피로도가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 다 잘 지나왔으니까 잘 마무리해야지요.”

4집 앨범 초반 활동에는 한 장소에서 세 개의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4집 활동 끝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루시드폴에게, 그 동안 정신적 피로도를 안겨준(?) ‘음악 외적인 활동’ 중 하나인 인터뷰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물어봤다.

“인터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보도자료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때, 인터뷰어가 대신 물어줌을 통해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게 인터뷰잖아요. 그런 측면은 좋다고 생각하는데, 간혹 3~4시간 진행하는 깊게 들어가는 인터뷰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인터뷰어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 인터뷰를 하고 나면 허탈해요. 인터뷰이 입장에서 인터뷰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인터뷰이는 수동적인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게 싫거든요. 정말 화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인터뷰도 있어요.


“고등어 가격이 얼마인 줄 아세요?” 이런 걸 물어보는 분들도 있어요, 물론 제가 막기는 했지만(웃음). 인터뷰를 하는 순간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아요.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못하게 되더라고요.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난 이거 싫다, 이런 점은 안 좋다’ 같은 공격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잖아요. 굳이 그런 걸 활자로 남기고 싶지 않아요. 몇 번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까, ‘인터뷰는 정치적으로 해야 손해는 안 보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양한 해석, 재밌죠”

루시드폴의 가사는 퍼즐 맞추기를 하는 재미가 있다. 인터넷에서는 루시드폴 가사 뒷면에 숨겨진 의미를 적은 해석을 실을 다양한 의견들을 여기저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번 4집에서는 ‘정치적인 의미가 숨어있다’는 해석까지 더해지기도 했다.

“'정말 다양하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특히 이번에. 정말 예리하게 제 생각을 읽어내시는 분들도 있고, 전혀 엉뚱한 곳에 가 계신 분들도 있어요. 듣는 분들 마음이잖아요. 감성의 차이고, 듣는 입장의 차이인 것 같아요. 마음 먹은 것 중에 하나는,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썼던 간에 “이 노래는 이런 생각으로 썼습니다”라는 이야기를 웬만하면 하지 말자라는 생각했어요. 노래를 완성하고 나서는 말로 덧붙이고 싶지는 않아요.”


감성을 자극하는 루시드폴의 멜로디 속에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가 적은 것도 의외다.

“제가 하지 않더라도 워낙 많이 하잖아요. 사실 가사를 쓸 때, 가장 쉬운 이야기가 ‘연애’에요. 그래서 관습에 빠지기 쉬운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데, 이런 노래들이 귀에는 참 잘 들어와요. 연애에 실패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아파하잖아요. 그 때 노래를 많이 듣고, 부르고 싶고. 이별 이야기를 쓰는 게 노래를 만다는 쉬운 방법이지만, 현재는 별로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없어요. (행복한 연애 이야기는요?) 음, 모르겠어요. 당분간은 피하지 않을까요? 사랑이야기를 노래로 만드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함몰되고 싶지는 않아요. ”
 
“루시드폴 노래 좋더라”는 입소문으로 내달려온 루시드폴의 소망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제 노래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은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조금씩 생겨났어요. 센세이션이 일어나서 확 모인 게 아니라 십 년 동안 조금씩 모인 그 과정이 좋아요. 일 년이 지나도 이 만큼, 십 년이 지나도 이만큼. 그랬으면 좋겠어요. 공연장 규모가 확 늘어나고, 음반 판매량이 늘어나고 그런 건 원하지 않아요. 지금처럼 조금씩, 조금씩. 지금처럼 이렇게 쭉 흘러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큰 욕심 없이.”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 안테나 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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