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듯 모를 듯, 오묘한 마력의 눈동자 <디 오써> 김영필
작성일2011.04.18
조회수16,004
<청춘예찬>의 스물 두 살 고등학생 청년은 간질을 앓고 있는 연상의 다방 여자와 동거를 시작하고 <선착장에서> <돌아온 엄사장>의 버스기사는 능글맞고 처세술에 강하다. <경숙이, 경숙 아버지>의 아비는 처자식은 안중에도 없이 바람 따라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이며 <너무 놀라지 마라>의 남편은 허황된 영화 제작에만 골몰하고 있다.
평범하나 결코 보통의 존재는 아닌 이들을 투영해 내는 건 김영필이다.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화가 났는지, 외로움을 느끼는지 도통 한 단어로 명명할 수 없는 그의 표정이 무대 위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빚어낸다. 충무로에서는 떠오르는 블루칩으로 주목 받고 있으나, 대학로에서는 이미 자신만의 색으로 존재감을 심어놓은 배우. 김영필은 지금 연극 <디 오써>로 또 하나의 도전을 준비 중이다.
불편함을 통한 저마다의 생각, 색다른 친밀감 <디 오써>
‘불편함은 우리가 의도한 것’이라 <디 오써>(The Author)는 말한다. 2009년 영국에서 초연한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하며 출연까지 한 팀 크라우치는 “오로지 ‘말’이라는 수단만 사용하는 것이 매우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청중을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오는 4월 26일 국내 공연을 앞두고 열린 관객 리허설 현장을 지켜보니, 객석 사이에 앉아 있는 배우들, 쉼 없이 주고 받는 말들의 관계는 듣고 보는 이들을 결코 편안하게 하지 않았다. 여가로 공연장을 찾는 이들에겐 인고의 시간이 될 수도, 새 형식의 작품을 탐하는 사람에겐 색다른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작품일 수도 있겠다.
“작품 안에서 또 다른 공연 이야기를 해요. 그 작품을 공연한 배우, 극작가, 관객이 저마다 경험한 것에 대한 이야기요. 요즘은 말을 위주로 하는 작품이 거의 없잖아요. 말에 대해 깊게 파고 들어가는 연출도 거의 없는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 같아요.”
작가, 관객, 그리고 두 명의 배우 등 총 네 인물이 등장하는 <디 오써>에서 김영필은 배우 역을 맡았다. 배역 이름도 ‘영필’이다.
“헐리우드 배우들은 영화 할 때 8, 9개월 동안 맡은 인물에 몰입하다 보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심리치료를 받는다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잖아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배우라면 왜 그런 게 없겠어요. 팀 크라우치 라는 작가가 배우의 그런 마음이나 상태를 표현했다는 것이 독특한 발상이고,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대화, 이야기로 풀어지는 극이니 말하는 배우의 모습 또한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배우가 말을 잘 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그래서 무대에 오르기 전 지금의 연습 과정 역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고 덧붙인다.
“배우로서 말을 잘한다는 건,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죠. 작가가 쓴 글을 배우의 입을 통해서, 글 보다 더 힘있게 표현하는 게 배우가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에는 말을 잘하는 배우가 드문 것 같아요. 말에 대해서 습관이 되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크게 파고들어가지 않고 하게 된 달까요? 그럴 즈음에 말에 중요성에 대해 아주 충분히 폭넓게 생각할 수 있게 해 줘서 정말 소중한 작업이에요. 마지막 공연까지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자유로운 영혼? 난 그렇게 살았으니까
<디 오써> 중 “그간 냉정하고 야비한 역을 주로 맡았다”는 영필의 대사가 나온다. 배우에 맞게 수정된 부분이다. 꾸준히 김영필을 무대 위에서 봐 왔던 관객들은 이 부분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겠다.
“건실하면 재미 없잖아요.(웃음) 변명 같이 보일 수 있겠는데, 그런 것들을 경험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이 비슷한 역할을 맡았을 때 전혀 다를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박)근형 선배님이 제게서 그런 모습들을 발견하신 거겠죠.”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김영필은 ‘경험해 본 사람’ 쪽이다.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굉장히 어려운 거거든요. 누가 그러고 싶어해요. 적당히 감추고,다 표현을 하려 해도 잘 안되고요. 그런데 근형 선배님은 배우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자유로운 것이다, 라고 계속 이야기 해 주셔서 그렇게 좀 더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모습들을 무대에서 보여 주면서 그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도 할 수 있고, 반대로 그런 성향이 어느 정도 가라 앉는다고 할까요? 그치만 그런 정서를 계속 갖는다는 거 자체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진 않을 거에요. 저도 다른 역할 잘 할 수 있어요. 까불고(웃음). 얼마 전엔 시크콤도 한 번 해 봐야겠다, 그런 생각도 들고.(웃음)”
극단 골목길의 배우로서, 그는 박근형 연출을 “가장 소중한 인연”으로 꼽았다. “집 보다는 밖에, 보통 한 곳에 머무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타고난 역마살을 인정하고 또 잡아준 것 역시 박근형 연출이었다.
<경숙이, 경숙아버지>(위)와 <너무 놀라지 마라>(아래) 중
“20대 때는 참 잘 도망 다녔던 것 같아요. 공연하다가, 연습하다가 사라져버린 적도 있고, 연습실이 숨이 꽉꽉 막혔으니까. 그런 걸 이해해 주는 사람이 근형 선배님이었어요. 선배 만나고 한 6개월 있다가 대전에 내려가서 1년 2개월을 있다가 온 적도 있죠. 마음이 정리가 되었는지, 아님 다시 연극이 하고 싶어졌는지. 그 때 다시 올라와서는 ‘이젠 도망다니지 말자’ 생각을 했어요. 그 때부터 외부작품 할 때는 어찌나 시간도 열심히 지키는지.(웃음) 지금도 미리 오는 건 아니지만, 어설프게 어설픈 분위기 속에 있는 것 보단 어디가서 내 시간을 갖고 생각도 하다가 제 시간에 들어와 같이 하는 게 효율적인 것 같고, 전 그러네요.(웃음)”
김영필은 <청춘예찬>의 청년 역을 통해 “배우로서 처음으로 뭘 보여줬던 것 같”고, 박근형은 그런 그에게서 “거기 무대 위에 서 있어보라”며 <대대손손>에서 없었던 역할을 김영필에게서 뽑아내었다.
“<청춘예찬> 할 때 공연 기획사 대표님부터 해서 저를 너무 잘 봐주셨죠.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배우가 있다, 소개도 해 주시고, 그 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던 것 같아요. 이후 했던 <선착장에서> <서쪽부두> <맨드라미꽃> <애니깽> <경숙이, 경숙아버지>까지 쭉 작업을 해서 대학로에 알려지기도 했고요. 배우로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봐 주는 것, 아주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가장 오랜 시간 나를 사로잡고 있는 연극
& 새로운 즐거움의 영화
늘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었던, 대단히 주관적으로 내 생각에 푹 빠져 있던 고등학생 김영필은 교회에서 성극을 접한 뒤 친구가 있던 YMCA의 청소년 극단에 들어가게 된다. “주말마다 모였지만, 친구들은 맨날 연애만 하고(웃음) 뭔가 내 성에 차지 않았다”는 그는 대전에 유일하게 소극장을 갖고 있던 극단에서 본격적으로 연극에 빠지게 되었다.
“처음 본 작품이 <유리 동물원>인데 너무 재미있게 봐서 푹 빠졌죠. 자율학습 안 하고 와서 노니까 얼마나 좋기도 하겠어요.(웃음) 연영과 시험을 봤는데 떨어져서(웃음) 일반 대학가서 연극반이라도 하자, 했죠.”
큰 키와 말끔한 이목구비, 알 듯 모를 듯 대상을 응시하는 호소력 짙은 눈빛은 그만의 매력이다.
“워크숍 같은 거 하면 선배들이 같이 하자, 이런 이야기는 나왔죠. 자질 보다는, 제가 흔히 ‘니마이’ 같이 생겼잖아요.(웃음) 지금은 많이 망가졌지만, 그땐 아주 반듯하고 곱상하게 생기고 키도 180cm은 되겠다, 주인공 하나 생겼구나, 그랬던 거죠.(웃음)”
자라고 연극을 시작했던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2003년 극단 골목길에 입단한 그는, 이제 TV드라마, 영화로 그 무대를 좀 더 넓히고 있다. 2010년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그의 첫 주연작이기도 하다.
“감독님이 <경숙이…>와 <너무 놀라지 마라>를 첫 공연 때 보셨어요. 상업적인 걸 배제할 수 없는데 그걸 관철시키고 저로 갔다는 게, 정말 제 운이 좋은거죠. 그런데 불행히도, 그때가 근형 선배가 1년쯤 쉬어라, 할 정도로 제가 상태가 안 좋을 때라서.(웃음) 그때 감독님을 만나서 많은 훈련을 받았고, 정말 좋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감독님께 “날 질질 끌고 갔으면 좋겠다, 절대 나를 방임하면 안될 것 같다”고 말씀 드렸는데, 정말 엄청 깨지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힘들게, 또 너무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로드무비는 배우가 평생 한 번 경험하기도 어려울 거라고. 그런 면에서도 아주 소중한 경험이죠. 영화, 참, 너무 재미있어요.”
연극 <디 오써>가 끝나면 제목부터 독특한 <로맨스 조>의 ‘조’ 역으로 새로운 스크린에 나설 참이다. 배우 김영필에게 서른 아홉의 지금은, 가장 좋은 때이다.
“늦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남들은 한 물 간 거 아니냐, 그때 기회를 놓쳤다고(웃음) 그러는데, 작년에 임 감독님도 만나고. 절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때가 오면 가서 재미있게, 잘 하는 거 아닐까요?”
<디 오써>의 객석에 들어서면 내 옆 자리에 그가 앉아 있다 해도, 맞은편의 그와 눈이 마주쳐도 너무 놀라지 마라. 객석을 잘 안보는 그 역시 이 작품을 통해 “내가 얼만큼 관객과 눈을 바로 마주할 수 있는지” 그대와 친밀해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렇게 무대를 즐기며 생각하는 김영필처럼, 무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kr)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평범하나 결코 보통의 존재는 아닌 이들을 투영해 내는 건 김영필이다.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화가 났는지, 외로움을 느끼는지 도통 한 단어로 명명할 수 없는 그의 표정이 무대 위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빚어낸다. 충무로에서는 떠오르는 블루칩으로 주목 받고 있으나, 대학로에서는 이미 자신만의 색으로 존재감을 심어놓은 배우. 김영필은 지금 연극 <디 오써>로 또 하나의 도전을 준비 중이다.
불편함을 통한 저마다의 생각, 색다른 친밀감 <디 오써>
‘불편함은 우리가 의도한 것’이라 <디 오써>(The Author)는 말한다. 2009년 영국에서 초연한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하며 출연까지 한 팀 크라우치는 “오로지 ‘말’이라는 수단만 사용하는 것이 매우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청중을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오는 4월 26일 국내 공연을 앞두고 열린 관객 리허설 현장을 지켜보니, 객석 사이에 앉아 있는 배우들, 쉼 없이 주고 받는 말들의 관계는 듣고 보는 이들을 결코 편안하게 하지 않았다. 여가로 공연장을 찾는 이들에겐 인고의 시간이 될 수도, 새 형식의 작품을 탐하는 사람에겐 색다른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작품일 수도 있겠다.
“작품 안에서 또 다른 공연 이야기를 해요. 그 작품을 공연한 배우, 극작가, 관객이 저마다 경험한 것에 대한 이야기요. 요즘은 말을 위주로 하는 작품이 거의 없잖아요. 말에 대해 깊게 파고 들어가는 연출도 거의 없는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 같아요.”
작가, 관객, 그리고 두 명의 배우 등 총 네 인물이 등장하는 <디 오써>에서 김영필은 배우 역을 맡았다. 배역 이름도 ‘영필’이다.
“헐리우드 배우들은 영화 할 때 8, 9개월 동안 맡은 인물에 몰입하다 보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심리치료를 받는다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잖아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배우라면 왜 그런 게 없겠어요. 팀 크라우치 라는 작가가 배우의 그런 마음이나 상태를 표현했다는 것이 독특한 발상이고,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대화, 이야기로 풀어지는 극이니 말하는 배우의 모습 또한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배우가 말을 잘 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그래서 무대에 오르기 전 지금의 연습 과정 역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고 덧붙인다.
“배우로서 말을 잘한다는 건,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죠. 작가가 쓴 글을 배우의 입을 통해서, 글 보다 더 힘있게 표현하는 게 배우가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에는 말을 잘하는 배우가 드문 것 같아요. 말에 대해서 습관이 되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크게 파고들어가지 않고 하게 된 달까요? 그럴 즈음에 말에 중요성에 대해 아주 충분히 폭넓게 생각할 수 있게 해 줘서 정말 소중한 작업이에요. 마지막 공연까지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자유로운 영혼? 난 그렇게 살았으니까
<디 오써> 중 “그간 냉정하고 야비한 역을 주로 맡았다”는 영필의 대사가 나온다. 배우에 맞게 수정된 부분이다. 꾸준히 김영필을 무대 위에서 봐 왔던 관객들은 이 부분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겠다.
“건실하면 재미 없잖아요.(웃음) 변명 같이 보일 수 있겠는데, 그런 것들을 경험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이 비슷한 역할을 맡았을 때 전혀 다를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박)근형 선배님이 제게서 그런 모습들을 발견하신 거겠죠.”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김영필은 ‘경험해 본 사람’ 쪽이다.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굉장히 어려운 거거든요. 누가 그러고 싶어해요. 적당히 감추고,다 표현을 하려 해도 잘 안되고요. 그런데 근형 선배님은 배우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자유로운 것이다, 라고 계속 이야기 해 주셔서 그렇게 좀 더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모습들을 무대에서 보여 주면서 그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도 할 수 있고, 반대로 그런 성향이 어느 정도 가라 앉는다고 할까요? 그치만 그런 정서를 계속 갖는다는 거 자체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진 않을 거에요. 저도 다른 역할 잘 할 수 있어요. 까불고(웃음). 얼마 전엔 시크콤도 한 번 해 봐야겠다, 그런 생각도 들고.(웃음)”
극단 골목길의 배우로서, 그는 박근형 연출을 “가장 소중한 인연”으로 꼽았다. “집 보다는 밖에, 보통 한 곳에 머무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타고난 역마살을 인정하고 또 잡아준 것 역시 박근형 연출이었다.
<경숙이, 경숙아버지>(위)와 <너무 놀라지 마라>(아래) 중
“20대 때는 참 잘 도망 다녔던 것 같아요. 공연하다가, 연습하다가 사라져버린 적도 있고, 연습실이 숨이 꽉꽉 막혔으니까. 그런 걸 이해해 주는 사람이 근형 선배님이었어요. 선배 만나고 한 6개월 있다가 대전에 내려가서 1년 2개월을 있다가 온 적도 있죠. 마음이 정리가 되었는지, 아님 다시 연극이 하고 싶어졌는지. 그 때 다시 올라와서는 ‘이젠 도망다니지 말자’ 생각을 했어요. 그 때부터 외부작품 할 때는 어찌나 시간도 열심히 지키는지.(웃음) 지금도 미리 오는 건 아니지만, 어설프게 어설픈 분위기 속에 있는 것 보단 어디가서 내 시간을 갖고 생각도 하다가 제 시간에 들어와 같이 하는 게 효율적인 것 같고, 전 그러네요.(웃음)”
김영필은 <청춘예찬>의 청년 역을 통해 “배우로서 처음으로 뭘 보여줬던 것 같”고, 박근형은 그런 그에게서 “거기 무대 위에 서 있어보라”며 <대대손손>에서 없었던 역할을 김영필에게서 뽑아내었다.
“<청춘예찬> 할 때 공연 기획사 대표님부터 해서 저를 너무 잘 봐주셨죠.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배우가 있다, 소개도 해 주시고, 그 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던 것 같아요. 이후 했던 <선착장에서> <서쪽부두> <맨드라미꽃> <애니깽> <경숙이, 경숙아버지>까지 쭉 작업을 해서 대학로에 알려지기도 했고요. 배우로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봐 주는 것, 아주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가장 오랜 시간 나를 사로잡고 있는 연극
& 새로운 즐거움의 영화
늘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었던, 대단히 주관적으로 내 생각에 푹 빠져 있던 고등학생 김영필은 교회에서 성극을 접한 뒤 친구가 있던 YMCA의 청소년 극단에 들어가게 된다. “주말마다 모였지만, 친구들은 맨날 연애만 하고(웃음) 뭔가 내 성에 차지 않았다”는 그는 대전에 유일하게 소극장을 갖고 있던 극단에서 본격적으로 연극에 빠지게 되었다.
“처음 본 작품이 <유리 동물원>인데 너무 재미있게 봐서 푹 빠졌죠. 자율학습 안 하고 와서 노니까 얼마나 좋기도 하겠어요.(웃음) 연영과 시험을 봤는데 떨어져서(웃음) 일반 대학가서 연극반이라도 하자, 했죠.”
큰 키와 말끔한 이목구비, 알 듯 모를 듯 대상을 응시하는 호소력 짙은 눈빛은 그만의 매력이다.
“워크숍 같은 거 하면 선배들이 같이 하자, 이런 이야기는 나왔죠. 자질 보다는, 제가 흔히 ‘니마이’ 같이 생겼잖아요.(웃음) 지금은 많이 망가졌지만, 그땐 아주 반듯하고 곱상하게 생기고 키도 180cm은 되겠다, 주인공 하나 생겼구나, 그랬던 거죠.(웃음)”
자라고 연극을 시작했던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2003년 극단 골목길에 입단한 그는, 이제 TV드라마, 영화로 그 무대를 좀 더 넓히고 있다. 2010년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그의 첫 주연작이기도 하다.
“감독님이 <경숙이…>와 <너무 놀라지 마라>를 첫 공연 때 보셨어요. 상업적인 걸 배제할 수 없는데 그걸 관철시키고 저로 갔다는 게, 정말 제 운이 좋은거죠. 그런데 불행히도, 그때가 근형 선배가 1년쯤 쉬어라, 할 정도로 제가 상태가 안 좋을 때라서.(웃음) 그때 감독님을 만나서 많은 훈련을 받았고, 정말 좋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감독님께 “날 질질 끌고 갔으면 좋겠다, 절대 나를 방임하면 안될 것 같다”고 말씀 드렸는데, 정말 엄청 깨지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힘들게, 또 너무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로드무비는 배우가 평생 한 번 경험하기도 어려울 거라고. 그런 면에서도 아주 소중한 경험이죠. 영화, 참, 너무 재미있어요.”
연극 <디 오써>가 끝나면 제목부터 독특한 <로맨스 조>의 ‘조’ 역으로 새로운 스크린에 나설 참이다. 배우 김영필에게 서른 아홉의 지금은, 가장 좋은 때이다.
“늦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남들은 한 물 간 거 아니냐, 그때 기회를 놓쳤다고(웃음) 그러는데, 작년에 임 감독님도 만나고. 절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때가 오면 가서 재미있게, 잘 하는 거 아닐까요?”
<디 오써>의 객석에 들어서면 내 옆 자리에 그가 앉아 있다 해도, 맞은편의 그와 눈이 마주쳐도 너무 놀라지 마라. 객석을 잘 안보는 그 역시 이 작품을 통해 “내가 얼만큼 관객과 눈을 바로 마주할 수 있는지” 그대와 친밀해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렇게 무대를 즐기며 생각하는 김영필처럼, 무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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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A**님 2011.04.21
정말 팬이어요. 디 오서 꼭 보러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