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대충하지 않았다는 뿌듯함, <억척가> 이자람

빠른 질주는 바람의 흔적을 남기고, 또박또박 디뎌 걷는 걸음은 묵직한 발자국을 새긴다. 세상의 상대적인 눈빛에 혼란스러울 스스로를 다잡고 쉽게 질주하지 않겠다는 다짐. 소리꾼 이자람은 이것이 맞는 것 아니겠냐고, 나지막이 이야기 한다. <억척가>는 그녀 스스로의 믿음이 낳은 또 하나의 보물이 될 것 같다.


해 볼만 하다는 느낌, 이것뿐이었다.

<사천가>에 이어 다시 브레히트 원작의 작품이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이하 ‘억척어멈…’)을 읽고 “괜찮다!”라고 했을 때 연출이 엄청 반대를 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또 브레히트 작품이고, 사람들이 또 왜 브레히트와 판소리냐고 물어볼 테니까.(웃음) 그런 후 2년 동안 고대 희극부터, 셰익스피어 작품 등 스터디를 했는데 결국 브레히트로 돌아왔다. 브레히트를 선택한 게 아니라 그가 쓴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 이야기만큼 내가 우리의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좋은 뼈대가 없었고 해 볼만하다는 느낌이 오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억척가> 준비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2008년 <사천가> 업그레이드가 끝났을 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들었다 놓은 게 2009년이고, 그 때부터 스터디를 엄청나게 했다. 희곡 공부를 하다가 결국 억척가를 다시 잡은 게 2010년 11월이다. 일단 부담이 너무 컸고, 머리로는 부담을 떨쳐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본능이나 마음이 머리를 따라가는 데엔 밟아야 될 시간이 꼭 있지 않느냐. 그 시간을 겪고 난 후 11월 쯤에는 해야겠다고 밀어 붙인 것이다.

‘억척어멈…’ 과 같은 메시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가, 아니면 정해진 것 없이 마음에 닿는 이야기를 찾았던 것인가.
사실 하고 싶은 소재는 다른 것이었다. 그 소재에서 이야기를 발전시키려다 보니 계속 뜬구름을 잡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 중심을 이야기 하는 곁가지가 중심보다 더 중요해져 있었다. 그걸 다시 부수면서 깨달은 건, 내가 당시 명확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니다, 였다.


그렇다면 내가 뭘 하고 싶은가,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이란 시원한 거, 나 대신 누구 욕도 해주고 울어줬으면 좋겠고, 봤을 때 가슴이 막 어쩔 줄을 모르겠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사건 사고가 너무나 많고, 그 일들 속에서 다들 자잘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다. 그걸 관통하는 것이 곧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일 터이고. 인터넷에 ‘억척’을 검색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이렇게 억척스럽게 산다는 것에 대해 푸념을 하고 있었다. 다시 ‘억척어멈…’의 희곡을 든 이유는 결국 ‘억척’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이었다.

<억척가>에서 ‘억척’이 특정한 의미를 지니는가?
‘억척’에 대한 태도를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려는 건 절대 아니다. 그저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 모습들, 모순들,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누구나 어떤 부분에서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됐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느냐. 그것에 대한 통쾌함, 위로를 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사실 처음엔 그저 끌려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연출도 제목이 마음에 드니 해보자! 한 것이고.(웃음)

희곡의 배경은 유럽 전쟁이나 <억척가>는 중국을 무대로 했다.
당연히 처음엔 한국 전쟁을 찾아봤다. 조사를 하다 보니, 6.25는 아직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운 과거인 걸 깨달았다. 그 때를 겪은 살아계시는 분들에겐 너무 아팠고, 나라를 잃을 뻔 했고, 안전한 삶에 대한 갈망이 컸던 현재의 일이었다. 전쟁에서 벌어진 이권 다툼들, 일본, 중국, 미국 사이의 우리나라가 여전히 불쌍했다.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잔재가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 마치 원자핵 중앙을 잘못 건드려 방사능만 맞게 되는, 그런 선택이 될 것 같았다.

결국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나에게 모든 전쟁은 허구인데, 가장 자신있게 엮을 수 있는 허구가 적벽가 속의 삼국 전쟁이었다. 적벽가를 5년간 배우고 연습하고 완창하면서 인물들을 뛰어 놀게 했던 전쟁터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국을 배경으로 하게 되었다.


<사천가>가 뚜렷한 인간 군상에 대한 충돌이었다면, <억척가>는 상황 속에 놓인 인물의 이야기 같다.
억척어멈에게 느낀 건, 살아남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교육시켰을 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행동패턴이다. 달구지를 지켜야 하고 삶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 아들의 목숨보다 달구지, 이런 선택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선택 가치가 잘못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보험금 때문에 가족을 죽인다든가, 먹고 사는데 취하는 선택들, 중요 가치들의 우선순위가 엉키지 않았는가. <억척가>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엉켰을 때 초래하는 가장 큰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억척 어멈은 뒤엉킨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사람다운 가치로 매겨보자, 그렇게 살아보자, 하면서 극이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억척가>는 ‘억척어멈…’과는 다르다.

대충하지 않았다는 뿌듯함, 이런 삶이 좋다.

직접 이야기도 쓰고 작창도 하고 배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작업이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 같다.
대본 쓸 때는 정말 드라마에 집중해서 딱 대본만 쓰고, 작창가로 대본을 앞에 둘 때는 또 다른 시간이다.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다. 작창이 다 나온 후엔 배우 모드로 돌입한다. 그 때 그 때 집중해야 하는 게 다르다.

그래서 한 6개월 정도는 <억척가>만 하는 셈이다. 작품 하나 나오는 게 너무나 힘들지만, 이런 삶이 좋은 것 같다. 작품을 낳아 놨을 때 어떤 뿌듯함이나 대견함, 떳떳함이 있다. 대충하지 않았다, 계속 열심히 하고 있고, 앞으로 이렇게 키울 것이다, 하는 것들이 다 갖춰졌을 때 부끄럽지 않다는 그런 마음들.

이제는 우리의 가치를 우리가 알아주자, 하는 다짐도 있다. 판소리가 너무 척박한 장르로 인식되어 있어 <사천가>가 자리를 잡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계속 그 싸움이었다. 내가 평생을 갈고 닦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무엇과 견주어도 자신 있고 부끄럽지 않다는 것. LG아트센터의 초대권 없는 정책이 너무나 좋다. 물론 가족들이나 보여드리고 싶은 분의 티켓을 내가 직접 사야 하지만(웃음) 내 공연이라도 직접 공연 티켓 사는 게 나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열심히 만들었고, 그렇게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사천가>는 해외공연도 많이 했다.
올해도 아비뇽에 가고 폴란드의 한 페스티벌과 협의 중이다. 최근 리용 공연은 셋업 기간이 거의 일주일로 너무 충분했고, 극장에서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가니 정말 작품의 힘이 달랐다. 관객도 최고였고, 극장도 최고였고.

해외공연이 다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때론 소모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외든 한국이든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공연, 충분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곳에서 공연하는 게 건강한 순환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 서야 될지, 서지 말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하다.

스스로 무대에 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관객이나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 공연을 해치우면 되는 거, 공연을 올리기만 하면 되는 거, 그런 무대는 가지 않는다. 그런 경우는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하면 되니까. 공연을 잘 올리고 싶은 극장, 잘 해보고 싶은 관계자들, 이 공연이 보고 싶은 관객들이 일 순위가 된다. 그래서 나의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의 퀄리티를 지키고 있다면, 이 고집이 타당하다면, 아주 조금씩 변화가 생길 수 있을 테니까.

<서편제>는 나에게 굉장히 달콤한 콘텐츠였다

지난 해 뮤지컬 <서편제>를 했다.(그녀는 작곡과 주인공 송화 역을 동시에 맡았으며, 제5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경험이었다. 이지나라는,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존중해주고 끝까지 믿어준 그런 예술가를 만난 것도 큰 기쁨이고, 그리고 더 많은 대중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었고. <서편제>는 나에게 굉장히 달콤한 콘텐츠였다. 그런데 달콤하면 독이 된다. 난 나의 갈길 가야 한다.

그런데 가장 달콤한 게 뭔지 아는가? 무대에 살아 있는 배우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진짜 행복했었다. 특히 서범석 같은 배우는 무대에서 주고 받는 것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무대에서 받아주고 받은 만큼 또 준다. 난 그걸 또 받아먹고. 그 맛있음을 아니까 인간적으로도 서로 아끼게 되고. 이런 관계를 맺는 게 너무너무 좋았다. 난 진짜 범석 아저씨 너무 좋다.(웃음)


제작하면서 고생이 많았다고 하던데.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나는 판소리를 좋아하고 그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지만, 그걸 몰라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고. 또 정말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뮤지컬을 만드는데 망할까 봐 다들 발을 동동 구르고.(웃음) 그 분들은 나보다 뮤지컬에서 타협할 게 더 많을 거 아니겠는가, 그 타협의 과정에서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정말 많았다. 고생이란 결국 두려움과 싸우는 것이다. 너무 큰 두려움과 싸운 것 같다.

앞으로 다른 뮤지컬 참여 계획은 있는가?
내가 꼭 필요한 자리라면, 나의 필요조건이 맞으면 갈 테지만, 잘 모르겠다. 나는 이미 내 삶에서 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억척가>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할 테고. 중간에 뮤지컬로든 영화로든 여행은 다닐 수 있겠지만. 그런데 내 본능과 마음과 이성이 다 허락할 때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달콤함과 스스로 생각하는 가치가 부딪칠 때, 많이 싸우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억척가>로서 그 달콤함까지 채우고 싶은 것이다. 그게 올바른 선택이라 생각한다.

별명이 무엇인가?
연출님이 ‘이잘난’이라고.(웃음) “에라이 이 잘난아, 너 잘났다”(웃음) 내가 굉장히 솔직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채찍질만은 엄격하다. 자칫하면 너무 난삽해지기 때문이다. 정신을 안 차리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테고, 지금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게 삶에 언제나 필요한 것 같다.

이자람밴드 공연 계획도 궁금하다.
<서편제> 할 때 만난 이영미 언니 때문에(웃음) 7월 3일에 구로아트락페스티발에서 한 꼭지 하게 되었다. 언니랑 범석 오빠랑 제일 친하다. 같이 밥도 먹으러 가고 그런다.


멋지다는 말, 많이 들을 것 같다.
그렇다. 이렇게 말하니 나 되게 재수 없네.(웃음) 멋지려고 노력한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멋지기 때문에,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생각나는 사람 말하면 되게 웃을 텐데, ‘최고의 사랑’ 독고진?(웃음)

사실 <사천가>를 하고 얼마나 내가 유명해졌고 더 컸는지, 그런 건 잘 모른다. LG아트센터에서 <억척가>를 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내게 승승장구 한다는 말도 하시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 삶은 변한 게 없는 데 사람들이 날 그렇게 느끼는구나, 싶어 참 신기하다.

보통 <사천가>나 <억척가>를 통해 달리는 나의 삶의 속도가 40km라면, <서편제>는 120km를 밟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달리는 속도는 40km가 맞는 것 같다. 괜한 스피드에 내 욕심과 욕망을 내는 게 올바른지, 별로 멋지지 않은 욕망인지, 이 욕망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되는지를 잘 보려 한다. 굉장히 피곤할 것 같지 않은가?(웃음)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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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3

  • A** 2011.06.17

    서편제보구..이자람님을 처음알게된후..팬이 됐어요..^^

  • A** 2011.06.13

    저는 이자람님의 공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TV에서 3번의만남인가 하는 다큐를 본 후에 이자람님께 호감을 가지고 있는 관객이에요. 이번 억척가도 정말 보고싶은데 공연 기간이 제 일정과 너무 맞지 않아서 못보네요... 이자람님 정말 멋있는 분이신 것 같아요. 본인의 삶에 진지하시고.... 다음번 무대는 꼭 꼭 꼭 보러가겠습니다!!

  • A** 2011.06.11

    이영미 님인데 이영이 님이라고 오타가 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