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을 놈!” 통쾌한 호통으로 무대 장악한 이순신, <영웅을 기다리며> 조휘
작성일2012.08.31
조회수16,048
<영웅을 기다리며>가 초연할 때 공연을 봤는데, 진짜 재미있게 봤어요. 그리고 이 작품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이 <영웅>의 안중근이나 <콩칠팔 새삼륙>의 류씨와는 완전 다른 캐릭터여서, 그런 것들이 던져주는 재미가 있었거든요. 이 때쯤이면 시기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도 괜찮은 시도라는 생각에서 과감하게 결정했어요. 주위에 '조휘가 저런 것도 해도 되나?'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보시고 난 후에는 '아, 조휘가 저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게 좋아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그렇죠. 실제로 제가 쌓아온 커리어를 보면 대극장과 소극장을 넘나들면서, 창작뮤지컬과 라이선스 뮤지컬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영웅>이나 <몬테크리스토>을 한 다음에 <왕세자 실종사건><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를 한 것처럼.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작품을 결정해왔어요. 판에 박힌 건 싫거든요. 그런 게 재미있어요.
주변의 가까운 친구들의 말도 듣는데, 주로 만류는 그런 분들이 하시죠.(웃음) 저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작사에서 '안 될 것 같다'고 할 때도 있고요. 근데 결국에는 항상 제 신념대로 행동했어요. '왜 계속 대극장 라이선스 작품을 하면서 편한 길을 가지 않고 소극장 창작뮤지컬을 하냐'라는 말도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다 (제 판단이) 맞았어요. 그래서 제가 더 연기적으로도 부딪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안중근 의사를 표현할 때는 그가 신앙인이고 사상가라는 데서 출발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의 신념을 위해 결의하는 모습을 진중하게 표현하게 됐죠. 반면 이순신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에서 출발했어요. 역사 속 이순신 장군은 정말 위엄 있고 멀리 있는 인물 같은데, 고구마 하나 때문에 다투고 삐치는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니까 보는 분들도 괴리감 없이 보시는 것 같아요.
'결국은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실제로 연습할 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다 보니 그런 다양한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그렇잖아요. 화가 나면 흥분해서 말도 빨리 하고, 배고프면 삐치기도 하고. 진짜 사람이고 인간이라는 것, 거기서 출발하는 거죠. 제가 표현하려고 했던 부분을 관객들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지. 이순신이라고 해서 배가 안 고프겠어? 화가 안 나겠어?' 하시는 거죠. 또 평소에는 찰진 욕을 하다가도 막딸·사스케를 포옹하면서 '잘 살어, 착하게 살어'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이순신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코미디가 정극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내가 나서서 막 웃기려고 하는 건 좀 일차원적이고, 나는 심각한데 그 상황이 웃기는 게 정말 재미있는 코미디거든요. 연습할 때도 항상 그런 코미디를 추구했어요. 무대에서도 저는 무표정하게 대사를 하는데 관객들이 웃을 때 제일 신나요. '그래 그래 그렇겠지 늙은 놈이 죽어야지' 저는 심각하게 노래하는데 사람들은 막 웃음을 터뜨리잖아요. 그럴 때 전 속으로 웃고 있죠.
공연 중 퇴장하는 순간이 딱 두 번밖에 없어요. 거의 한 반 이상 무대에 나와있기 때문에 체력적인 면에서 조금 부담이 있죠. 그리고 관객들이 되게 재미있어하는 '동몽이상' 장면이 있어요. 이순신·사스케·막딸 세 사람이 같은 꿈을 장면인데, 이 부분에서 대사를 외우는 게 좀 힘들었어요. 배우들은 대개 상황을 그려가면서 대본을 외우거든요. '너 밥 안 먹었어? 그럼 배고프잖아. 뭐 먹으러 갈까?' 보통은 대사가 이렇게 연결되는데, 이 장면에서는 세 사람이 각자 다른 말을 하는 거에요. 상황이 연결되지 않으니까 대사가 안 외워지더라고요. 진짜 3주 동안 손에서 대본을 못 놓았어요. 그래도 이 장면을 잘 만들고 나니까 관객 분들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이제까지 했던 공연들은 대부분 여성 관객이 많았어요. 그런데 <영웅을 기다리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관객 분들이 오셔도 아무런 괴리감 없이 다들 공감할 수 있는 공연 같아요. 이순신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이잖아요. 또 라이브로 국악을 연주하니까, 연세 드신 분들도 더 친밀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예전에 제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부족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제가 연극영화과를 나오지도 않았고, '꽃미남' 배우도 아니고, 성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잖아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력하고, 한 번 더 연습하고…결국엔 그렇게 달려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이 지금의 조휘를 만든 거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고요.
아까 말한 것처럼 새로운 도전, 안 해본 작품들, 항상 그런 것들을 하려고 해요. <콩칠팔 새삼륙>도 그런 시도였죠. 느끼하고 봉건적인 모습,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좋아하는 여자를 갖지 못하는 쓸쓸함을 가진 사람. <영웅을 기다리며>에서는 욕쟁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저씨. 다음 작품에서는 뭔가 또 새로운 것이 있겠죠. 항상 내가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 있어요. 물론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완벽한 그 인물로 무대에 올라가는 상상을 하면서 연습하고 도전하는 거죠.
네. 지금도 쓰죠. 그냥 제 습관이 됐어요. 연습할 때 각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지 포인트를 계산해서 다 적어놓는 거죠. 그냥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써둬야 나중에도 보고 정리할 수 있잖아요. 쓰는 거랑 안 쓰는 거랑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와의 약속이고, 제가 일하는 방식이에요. 다이어리도 계속 써요. 극중에도 이순신 장군이 '우리 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일기는 꼬박꼬박 쓰라고 하셨다'는 대사가 있잖아요.(웃음). 내가 뭘 하고, 뭘 했고, 앞으로 뭘 해야 하고 이런 것들. 길게는 몇 년 후에 내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을 적어둬요.
제가 사범대를 졸업했잖아요. 선생님이 되는 꿈도 이뤄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대학원 공부를 해서 연기나 연극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조휘라는 배우한테는 어떤 역할을 맡겨도 된다'는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몬테크리스토>의 악역 몬데고도, <영웅>의 안중근 의사도, <영웅을 기다리며>에서의 코믹한 이순신 장군도 다 조휘가 연기한 인물이거든요. 주위에서 만류했던 분들도 많았죠. 그런데 지나고 나서는 다 잘했다고 해주셨어요.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할 수 없는 배우는 안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많은 뮤지컬 무대에 섰지만, 이번 <영웅을 기다리며>에서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조휘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에요. 항상 똑같은 걸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저는 늘 관객들이 저보다는 제가 하는 작품을 인상 깊게 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배우도 결국은 작품의 일부분이고,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니까요. 조휘를 보러 온다기보다는 <영웅을 기다리며>라는 새롭고 재미있는 작품을 보러 오셔서 '아, 이순신이 정말 저렇지 않았을까'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컨텐츠
댓글
댓글1
-
seattl**님 2012.09.03
조휘 배우님, 연기며 노래며 어느 하나 모자란 부분이 없다는 생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력하시는 모습에 또다시 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