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일상을 담다, <더 홈> 이지형 "관객과 깊은 소통, 다시 느끼고 싶었다"

이지형이 <더 홈>으로 관객을 찾아온다. 지난 2009년 연극 형식을 빌어 이야기가 있는 콘서트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이 무대가, 이번엔 스윗소로우, 조정치, 유인나, 유희열, 김연우, 이적 등 화려한 게스트로 뜨겁게 돌아온 것이다. 홍대 밴드 ‘위퍼’를 거쳐 최근 3집 ‘청춘마끼아또’ 까지, 편안하고 따스한 음악을 꾸준히 선보이는 뮤지션 이지형. ‘뜨거운 안녕’ 객원보컬, ‘홍대 원빈’의 수식어를 뛰어 넘는, 그가 선사하는 매우 특별한 무대를 만나보자.


<더 홈>을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립니다. 다시 올리고 싶은 매력이 무엇이었나요.
'과연 내가 한 달간 쭉 할 수 있을까? 이런 거 해도 되나? 이게 뭐지? 손가락질 당하진 않을까?' 
 <더 홈>은 연극도 아닌데 뮤지컬도 아니고, 콘서트도 아니어서 이도 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아무 맛도 없는 공연으로 끝날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당시만 해도 대중에겐 낯선 기획 공연이었고 나조차 머릿속에서 정리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2009년 공연이 끝나고 기억 나는 건 단 하나였어요. '아직도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편한 무대가 있었던가? 혼자만의 유희가 아닌 관객들과 숨소리 하나까지 깊게 소통한 이 묘한 기분은 뭐지?' 였거든요. 작업실의 일상을 무대 위로 가져간 것에 뭔가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그 후 <더 홈>을 매년 무대에 올리고 싶었지만 극장대관, 앨범 녹음같이 현실적인 문제와 저의 오랜 휴지기 때문에 매번 실현되지 못했죠. 작년 3집 '청춘마끼아또'를 발매하고부터 다시 적극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고, 제 연간 스케줄 중 가장 중요하고 굵직한 공연으로 <더 홈>을 선택했습니다.

 콘서트와 연극의 만남입니다. ‘음악극’을 시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처음부터 음악극이란 걸 시도하려고 만든 건 아니에요. 제 일상을 무대 위에서 재구성 하다 보니 대사가 필요했고 그에 따른 동선이 생겨나면서 약간의 스토리와 음악이 합쳐져 <더 홈>이 되었어요.
많은 뮤지션들이 무대공포증이나 카메라 울렁증을 겪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저 역시도 대중과 관객 앞에 서면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고 싶다는 심리적 부담감에 오히려 제 기량의 반도 보여주지 못해 아쉽고 부끄러웠던 적이 많았고요. 무대, 방송국, 녹음실을 다 합쳐봐도 집에서 혼자 기타 치며 노래할 때만큼 편안한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 작업실을 그대로 무대 위에 올려 시시콜콜한 일상을 여과 없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죠.

2009년 공연과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제대로 된 조명과 음향이 갖추어진 연극 극장에서 공연합니다. 무대에 세트를 만들어 방을 꾸밀 수 있다는 것 만으로 모든 게 달라진 기분이에요. 극의 유기적인 연결 흐름을 위해 만들어진 두 개의 새로운 장면도 있고요.
음악은 그 간 발표한 몇몇 곡들이 추가가 되었어요. 대부분이 제가 발표했던 곡들 중에 잔잔한 곡들 중심으로 연주됩니다. 3집 ‘청춘마끼아또’ 앨범에서도 몇 곡 하고요. 매일매일 기분에 따라서 리스트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해요. 2009년 공연 때는 게스트가 손님으로 제 방에 찾아왔을 때와 제가 레슨 학생에게 기타를 가르쳐줄 때 관객들 반응이 무척 좋았는데, 이번엔 어떨지.... 미지수 입니다.

10년 넘게 데뷔 준비만 하는 싱어송라이터 ‘지형’이 주인공입니다. 새로운 인물을 설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지형'은 음악인들 사이에서 아주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캐릭터에요. 방안에 틀어박혀 세상이 나를 알아주기만 기다리는 현실부적응에 몽상가적 기질이 다분한 고집불통 뮤지션이거든요. 시작하는 용기보다 미리 겁먹고 포기 하는 게 익숙해져 버렸고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기 보단 그 나약함을 오히려 아티스트의 자존심과 허세로 포장해 버리는 인물이죠. 극적 재미와 대중 공감대를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인데 현재의 제 모습보단 과거의 제 모습 중 어느 하나에서 파생되었죠. (웃음)
 
 

무대에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입니다. 자신의 연기력을 평가한다면.
연기를 한번도 배워 본 적이 없기에 굳이 평가한다면 제로에 가깝죠. 하지만 일상의 제 말투와 행동들을 그대로 무대 위에 올려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오랜 시간 관찰하며 연구하고 연습했습니다. 연기가 뭔진 저도 잘 모르겠지만 <더 홈> 안에선 가능한 것 같아요.

유희열, 유인나, 이적 등등 게스트가 화려합니다. 게스트 선발(?) 기준과 섭외과정은.
이번 2013 게스트는 티켓판매에 큰 도움이 되는 지인 분들 중심으로 제가 한 분 한 분 만나고 전화해서 직접 섭외를 했습니다. 게스트는 제 공연에서 짧지만 극의 감초 같은 역할이에요. 게스트 분들마다 제 집에 찾아오는 이유와 설정이 다르기도 하고요. 게스트 분들도 연기를 해요. 그들도 가상의 지형 캐릭터처럼 모두 새로운 가상의 인물들이죠.

가장 힘들게 초대한 게스트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에피소드도 말씀해주세요.
희열 형은 우선 전화를 연결 하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고 유인나 씨는 매니저 분이 문자를 보내면 답장을 잘 안 해 주고, 적이 형은 스케줄 조정 하는 데에만 한 달이 걸렸어요. 요즘 가장 바쁘다는 조정치 섭외가 제일 쉬웠어요. 그의 인기가 의심이 됩니다.
2009년 <더 홈> 공연에 언니네 이발관 멤버들이 게스트로 왔는데 막상 그들도 연기를 하려고 하니 너무 어색했는지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말 한마디 못하고 그냥 내려간 적이 있어요. 그 중 보컬 이석원씨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나가는 방법조차 모르고 계속 무대 위에서 아무 말 없이 20분 넘게 무대 위에 있다가 말없이 내려갔고요. 모델 장윤주씨는 입장하자마자 훤칠한 키와 몸매로 저를 꽉 안아주는 바람에 오히려 제가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도 못 쳐다보고 두근두근 했던 게 생각이 나네요.

애드립이 난무하는 극이 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게스트와의 호흡은 사전에 어떻게 조율하시나요.
게스트 타임 말고는 애드립은 거의 나오진 않아요. 제가 쉽게 만날 수 있는 게스트 분들은 만나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같이 연습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나머지 반 이상의 게스트 분들과는 전화 통화로 서로 설정을 잡고 당일 리허설 때 맞춰 볼 생각이에요
대부분 게스트 분들이 뮤지션이기 때문에 그들의 연기는 전혀 기대하지 않습니다. 티켓판매에 일조 해주시는 것만 기대하고 있습니다. (웃음) <더 홈> 음악극이라는 형식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시는 분들이라 호흡 맞추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죠.
 
 
 
이번 공연에서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소통과 공감대에요. <더 홈>은 현실과 이상 속에서 갈등하는 가상의 뮤지션 지형의 일상을 그리고 있어요. 대중과 가수는 현실 속에서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존재가 성립되어 공감대라는 울림을 만들어 낸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지형은 10년 넘게 음악만으로 대박 한탕 기회를 꿈꾸고 있지만 그런 지형에게 진짜 필요한 인생 역전의 기회는 결국 자기 스스로가 세상과의 소통법을 익혀나가는데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그룹 ‘위퍼’부터 3집 '청춘마끼아또'까지 10년이 훌쩍 넘어갔습니다. 음악 인생에서 꼽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지난 해 ‘청춘마끼아또’ 앨범을 녹음할 때를 꼽고 싶어요. 나름 방대한 양의 더블 앨범이라 반년 넘게 녹음실에서만 살았고 앨범의 마지막 믹스가 최종적으로 끝이 나는 순간 기사님 앞에서 펑펑 울었던 순간이 기억이 나네요. 평소에 눈물이 거의 없는 저로서는 10년치 흘릴 양을 한 번에 운 것이나 다름 없었어요. 오랫동안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96년에 '위퍼'라는 밴드로 했던 첫 클럽 공연의 기억도 아직 생생하고요.

<더 홈>을 보러 오시는 관객에게 한 말씀.
지형의 방에 놀러 오세요. 그리고 맘껏 훔쳐보세요.

공연 이후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더 홈>이 끝나면 곧바로 새해에 발표할 세 번째 소품집을 준비할 계획입니다. 오래 전부터 틈틈이 준비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작업하고 싶어요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마스터플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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