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천재 연출가, <렛미인> 존 티파니

흰 눈과 자작나무 배경에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알려진 영화 <렛미인>이 연극으로 재탄생해 비영어권 최초로 한국 무대에 오른다. 그 중심에는 우리에게 <원스>로 이름을 알린 연출가 티파니가 있다.

유쾌한 웃음소리로 기자를 맞이하는 연출가 존 티파니의 모습에 피곤함은 없었다. 지난 13일 진행된 연습 공개를 위해, 전 날 한국에 도착한 그는 오자마자 연습실로 달려가 런스루를 지켜봤다. 배우들의 연기에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완벽하다”라는 칭찬을 아까지 않았다. 2013년 스코틀랜드에서 초연된 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공연되는 <렛미인>의 숨겨진 이야기와 최근에 그의 이력에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더한 연극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들>소식까지. 존 티파니와의 인터뷰는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블랙 워치> <원스> <렛미인> 연출

Q 그간 뉴욕과 런던을 비롯해 세계 여러 도시에서 활동해왔다. 그간 한국에서도 <블랙 워치> <원스> 등 작업이 있었는데, 이번 <렛미인>을 가지고 한국에서 작업하는 소감은?
<렛미인>은 스코틀랜드에서 2013년도에 초연했는데, 내가 스코틀랜드 국립극장에서 올렸던 마지막 공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토록 재능이 넘쳐나는 훌륭한 배우들이 이렇게 열정 넘치게 작품에 임하는 모습으로 보고 감동을 받았다. 또한 이 작품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공연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들에 대해 스스로 굉장히 겸손해질 수 밖에 없고 굉장히 영광스럽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오는 것이 좋다. 그래서 계속 오는 거다. (웃음)

Q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연극 <렛미인>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가 궁금하다. 그 전에 스웨덴 영화 <렛미인>을 먼저 봤다고 했는데, 어땠는가?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이게 현대적으로 바뀐 ‘피터팬 이야기 같다’고 느꼈다. 어릴 적부터 피터팬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했었다. 피터팬을 보면 마지막 장면에 웬디가 성인으로 성장하고, 피터팬이 다시 그녀를 찾아온다. 그런데 웬디가 “피터, 불 켜지마. 내가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는 어른이 돼 버렸어.”라고 말한다. 그 둘의 관계를 보면 굉장히 짠한 부분이 있다. 

내가 영화 <렛미인>을 처음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일라이가 피터팬이고, 하칸이 웬디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스카는 웬디의 딸 제인이고. 영화를 보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백색의 단순한 아름다움이 있다. 외톨이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가 뱀파이어인 거다. 송곳니가 쭉 뻗은 사랑이야기지. (웃음) 작품의 그런 면모에 끌렸다.

후에 연극을 하자고 제안이 왔을 때,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일라이, 하칸, 오스카의 삼각관계에 대해 더 탐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무대 위에서의 뱀파이어, 죽음의 몸놀림이 어떻게 표현될지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나는 피터팬 이야기가 좋다


Q 왜 피터팬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피터팬 이야기는 이번 작품도 그렇고, 앞으로 하게 될 해리포터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피터팬’에서 웬디와 마이클, 존이 있는 방에 피터팬이 찾아와서 그들을 창문 밖으로 데리고 간다. 그것은 집이라는 안전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신나고 흥분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런 것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나이가 점차 들면서 성인이 된 웬디의 기분과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 피터팬의 기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Q 원작의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연극이라는 장르에 맞게 변형해야만 하는 부분도 있었을 텐데. 영화를 무대로 옮길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이 작품의 기본은 사랑 이야기지만, 공포, 호러 장르의 잔인한 장면을 무대로 옮겨와야 하는 점이 흥미로우면서도 어려웠다. 이런 장르는 무대에서 거의 안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수효과를 알맞게 쓰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관객들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은 여태껏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 중의 하나다.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은 무대 위에 있는 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보통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겁을 주려고 한다. 그럼 대부분의 관객들은 웃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에서도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다. (웃음)

Q <렛미인>하면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같다. 이번 한국 공연은 원작 무대를 그대로 가져오는 레플리카 방식을 따른다.
처음 제작 초기 단계에서 이 공연의 배경은 ‘숲 속이다’라고 결정했다. 그리고 사실 이 점은 얼마 전에 깨달은 건데, 나는 하나의 배경에서 공연하는 걸 좋아한다.(웃음) <원스>도 바에서만 이루어지고, <블랙 워치>도 한 가지 환경에서 이뤄지고, 사실 <해리포터>도 마찬가지다.(웃음) 물론 그 안에서 변화는 많지만 결국에는 하나다.

그리고 영화 <렛미인>을 보면서 ‘동화 같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들을 보면 대부분 배경이 숲 속이다.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거나 변화를 맞게 되는 장소로 숲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빨간 망토> <헨젤과 그레텔>을 보면 통과의례처럼 주인공들이 숲을 지나가게 된다. 이 작품에서도 숲이란 배경은 오스카에게 통과의례와 같은 공간일 수 있다.

Q 배우들 이야기를 해보면, 주인공인 박소담은 첫 연극무대 도전이고, 신인 위주의 젊은 배우들을 많이 뽑았다.

한국에 와서 캐스팅할 때마다 아주 즐거운 경험을 한다. 박명성 대표도 그렇고 제작사도 이 사람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전혀 안 해준다. 오디션장에서 직접 배우를 만나보고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사람을 고를 수 있게 해준다. 이번에 배우들을 뽑고 나서야 제작사 측에서 박소담 배우가 유명하다고 굉장히 흡족해하면서 말해줬다. (웃음)

Q 배우들을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인가?
배우와 캐릭터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다. 캐릭터와 일체가 된 배우는 결국에는 그 캐릭터보다 더 큰 인물이 되어 오히려 무대 밖으로 껑충 뛰어 나오게 된다. 결국에는 얼마만큼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고 이해했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Q 이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에게 여러분이 오스카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여러분은 오스카처럼 그녀와 함께 곁에 남아줬을까? 아니면 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냥 그녀를 보내줬을까?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더 나아가 당신은 사랑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평생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위해 많은 시간을 포기할 수 있는가? 등 순수한 사랑에서 더 나아가 현실적인 사랑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관객은 산소를 주는 존재, 연출을 잘 하려면 잘 들어야 해

Q 연극, 뮤지컬 장르를 가리지 않고 또한 다양한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연출가로서 그 중심의 단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관객. ‘관객들이 누구일까’이다. 또한 어떤 소재의 어떤 장르이든, 그것이 매일매일 라이브 공연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현재의 순간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는 게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이기 때문이다.

Q 앞서 이야기한 ‘피터팬’ 이야기처럼 웬디가 모험을 떠나는 것처럼 관객을 만나는 일도 즐거운 일이지만 부담감을 가질만한 일이다.
맞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끔찍한 일다. 그러면서도 가장 신나고 흥분 넘치는 일이기도 하다. 마치 마약 같다. (웃음) 그게 인생인 것 같다. 서로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한 인간으로서 이 삶을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서로 함께 탐구해 나간다는 게 굉장히 좋다.

관객들은 산소를 주는 존재이다. 그들이 객석에 앉아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산소를 얻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나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자신도 발전하게 된다. 사실 연출을 잘 하려면 잘 들어야 한다.

Q 연출가가 된 계기가 있나?
이십 대 때 사실 의사가 되려고 의대에 간 적이 있다. 의대에 다닐 때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앞으로의 커리어가 바뀌는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됐다. 그걸 보면서 관객으로서 내가 감동을 받았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감동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플디: 의사가 아픈 몸을 고치듯이, 연출가는 마음의 치유를 주지 않나?)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웃음) 엄마는 간호사였는데, 한동안 이걸 왜 하는지 이해를 못하셨다. 의사인 아들을 원했으니까, 돈 못 버는 연출가 아들은 원치 않으셨다. 하지만 지금은 매우 좋아하신다. (웃음)

Q 박명성 대표가 천재 연출가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영감은 어디서 받나.
전혀 그렇지 않다 (웃음) 대표님이 아주 친절하게 해준 말이다.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들. 그들의 고통, 슬픔, 기쁨을 통해서 영감을 받는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 않나. 그래서 항상 마음을 열어놓고 살려고 노력한다.

최근에 어린 관객을 위한 공연을 많이 했다. <피터팬>도 그렇고, <렛미인> 같은 동화 같은 이야기나. 그런 작품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우리가 어릴 적에는 마음을 항상 열고 모든 걸 받아드리는데,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방어벽을 하나씩 쌓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자주 듣는다. 음악은 어떻게든 마음 속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주고 그런 방어벽을 조금씩 무너트려 주기 때문이다.

나는 8편에서 해리포터가 어떻게 되는지 안다


Q 마지막으로 오는 7월에 런던에서 공연될 연극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웃음)
어떻게 하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함께 해달라고 하더라.(웃음) 처음에는 확신이 안 섰다. 왜냐하면 화려하고 반짝반짝하는 쇼 같은 공연을 원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나는 그런 공연은 죽어도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제작자들이 내가 이야기는 해리포터를 원한다고 말해줬다. 원작자인 조앤 롤링을 만나서 금방 친해졌다. 기본적으로 이번 작품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여덟 번째 해당하는 내용인데, 이게 책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연극으로 풀어지는 거다.

8편에서 해리포터가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안다. (웃음) 그래서 조카들이 나한테 단단히 화가 나 있다. 내가 죽어도 이야기를 안 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설 7편의 마지막 문장이 있는데, 그걸로 연극이 시작된다. ‘해리가 아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학교로 보낸다’라는 문장으로부터.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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