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쓰릴 미, 그 위험한 계약

희대의 살인사건, 이 사건이 고작 종이 한 장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T와 R이 빠진 이 허술한 계약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나를 만족시킬 것….’ 이렇게 별거 아닌 내용에 피로 서명까지 하는 주인공들의 행위가 좀 이상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이 단순한 계약서 한 장에 치열한 두뇌싸움이 내포되었을지…. 아마 누구의 만족감이 더 절실한지 공연이 끝나기 10분 전 정도는 돼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쓰릴 미’는 죽여주는 남자 ‘그’와 그를 죽도록 원하는 ‘나’의 이야기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다. 희대의 살인사건도 그들의 이야기 속에선 그저 하나의 배경일 뿐….
피아노 한 대로 구성된 음악은 괴기스럽지만 그리 무겁지는 않다. 멜로디는 전반적으로 음울하고 단조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달랑 침대 두 개만 덩그러니 놓은 무대 역시 그러하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뮤지컬이라고 하기엔 요즘말로 다소 뻘쭘하다. 무대 장치며 조명이며 단조롭다 못해 썰렁하기도 하며, 극단적으로 치닫는 감정을 표현하기엔 피아노 혼자서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든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심리전이 치밀하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반전의 충격도 크지 않았다. 최근 들어 비슷한 심리극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애간장을 졸이게 하는 뾰족하면서도 긴 호흡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쓰릴 미”라고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와 흡사하다. 들릴락 말락 한 중저음으로 가늘고 길게 내뿜는 그 음성은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든다. 몽환적이고 또 환상적이다. 그 멜로디는 자꾸만 귓가에 맴돌고, 야릇한 감정은 피아노의 독주로 극대화된다. 피아노는 감정의 극과 극을 모두 표현하기엔 어렵지만 하나의 감정 선만을 집요하게 건드리는 역할이다.

그 사건의 결말은 해머가 피아노 줄을 때리듯 순간 얻어맞은 듯했다. 분명 이 극의 반전은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공연이 끝난 후의 생각이다. 반전의 그 순간만큼은 하나의 감정만 집요하게 공략당하여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요컨대 ‘쓰릴 미’는 개인의 미묘한 심리를 단순한 진리로 파고들어간다. 어쩌면 이 작품은 ‘나’와 ‘그’의 만족을 위한 심리전이 아닐지 모른다. 그것은 ‘실제적인 나’와 ‘또 다른 나’의 미묘한 심리전일 수 있다. 곧 ‘쓰릴 미’의 막이 올라가는 순간부터 그곳은 먹고 먹히는 정글이 된다.


김유리 기자 yuri400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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