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비온 뒤 맑음 … 뮤지컬 ‘빨래’

그동안 소극장 무대의 아기자기함을 걸쳤던 뮤지컬 ‘빨래’가 2009년 공연에서는 두산아트센터 중극장으로 이사해 방을 넓혔다. 무대 양 옆에는 라이브 밴드가 구성됐고 출연 배우의 수도 약간 늘었다. 무대 역시 지난 공연보다 더 세심한 손길을 거쳐 을씨년스러운 달동네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서울살이 몇 핸 가요?” 뮤지컬 ‘빨래’의 시작은 만원버스에 몸을 싫은 승객들로부터 출발한다. 5년, 10년, 6년……. 버스에 탄 사람들의 서울살이 햇수는 저마다 다르지만 90만 원대의 최저임금과 늘어난 술담배, 깨진 부부금실 등의 암울한 현실은 그들을 하나로 잇는 공통분모다.

뮤지컬 ‘빨래’는 한국의 서울,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도시 사람들에게 눈을 맞춘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서점 직원 ‘나영’과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 ‘솔롱고’, 사지절단 장애인 딸을 돌보는 주인할매, 애 딸린 구씨와 동거 중인 과부 희정엄마 등의 캐릭터는 ‘드라마틱’하게 가난하고 ‘드라마틱’하게 외로운 우리 이웃, 혹은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뮤지컬 ‘빨래’ 속 소시민들의 가난은 곧 이들이 겪어야 할 여러 억울함으로 치환된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풀어놓는 등장인물의 사연은 하나같이 억울한 것들뿐이다. 주인공인 ‘나영’은 사장에게 대들었다가 부당해고의 위기에 직면한다. 한편 이주노동자 ‘솔롱고’는 강제추방이 두려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주인할매 또한 장애인 딸이 아파 아들들에게 도움을 요청 해봐도 돌아오는 것은 멸시뿐이다. 이처럼 뮤지컬 ‘빨래’의 찌든 때 같은 모습은 고용인-피고용인간의 갈등, 이주노동자들의 차별과 노동착취, 장애인 사회복지 문제와 그들에 대한 편견, 가족 붕괴 등 현재 서울이 앓고 있는 사회 질병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궁색한 소시민들의 사연을 늘어놓던 ‘빨래’는 결코 염세주의나 허무주의의 결말로 들어서지 않는다. 비온 뒤 맑음. 이것이 뮤지컬 ‘빨래’가 가진 철학적 견해다. 즉 구겨진 오늘이 있다면, 잘 마른 내일이 도래한다는 것. 비록 오늘은 최저임금 노동자요, 외로운 과부요, 숨어사는 이주노동자이지만 그들에게는 꿈꿀 수 있는 내일이 있어 행복하다.

이러한 뮤지컬 ‘빨래’의 모티프를 가장 잘 전달하는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나영, 희정엄마, 주인할매가 함께 빨래를 하는 이 장면은 시원한 바람과 비눗방울 효과를 더해 판타지적인 느낌마저 자아낸다. 이처럼 상쾌한 결말이 의미하는 것은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라는 이야기. 즉 빨래가 더럽고 찌든 옷가지들을 깔끔히 바꾸듯 당신의 절망 역시 잘 빨아 말리다 보면 어느새 희망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함이다. (6월 14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심보람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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