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20] 욕망들의 충돌,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인간은 부재한 것을 욕망하며 욕망의 대상이 소유 불가능한 것일수록 방황하게 된다. 낙원을 꿈꿨던 여자 블랑쉬. “사람들이 그랬어요. 먼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탄 다음에 여섯 정거장 더 가서 Elysian Fields, 낙원에 내리라고요.” 낙원을 만나기 바랐던 블랑쉬는 낙원 대신 절대적으로 잔인한 현실에 하차하게 된다. 무대에 등장한 블랑쉬의 의상은 타 인물들과 대비되며 그녀의 의식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무엇보다 과장스러우면서도 한껏 멋을 낸 그녀의 커다란 모자는 교양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려 노력하나 오히려 우스꽝스러워진 블랑쉬를 나타낸다. 초라한 환경과 화려한 블랑쉬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질감은 불편함과 불안함을 증폭시키며 당연한 갈등을 예고한다. 

차림새나 말투, 교양과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블랑쉬는 아무도 없는 동생의 집에서 몰래 술을 마시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술에 의지하고 과거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그녀는 극도의 불안 상태에 놓여있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 서서히 파멸하게 될 것이다. 이 ‘뻔한’ 고전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해야 하는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연극열전3’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욕망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비뚤어진 채 존재하고 있었다.  

- 식상한 고전의 영리한 변화 

블랑쉬의 모든 행동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그녀가 줄곧 입고 있는 흰색 의상과 수시로 반복되는 목욕, 놓지 못하는 술 등은 가리고 씻고 잊고자하는 그녀의 욕망을 보여준다. 또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어두운 밤에만 사람을 만나고 환한 전등에 갓을 씌우는 등, 그녀에게는 현실과 마주할 용기가 없다. 때문에 끊임없이 과거로의 도피를 시도한다. 농장의 상실과 남편의 자살에 대한 죄책감, 이어지는 부정한 생활과 그로인한 교사직 해고 등, 이 모든 것은 과거에 집착하는 비뚤어진 욕망에서 비롯된다. 낭만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갈등은 동생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와의 마찰을 통해 극대화된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인물들의 심리적 문제나 변화, 갈등을 무대와 의상, 소품을 통해 부담 없이 표현해냈다. 일반적 예상과 달리 무대와 음악, 의상은 상당히 현대적이다. 정확한 지점을 알 수 없는 배경은 고전과 관객과의 거리감을 좁혔다. 스텔라는 청바지를 입고 있으며 스탠리와 친구들은 익숙한 상표의 술을 마시고 모두들 거부감 없는 어투를 사용한다. 조명의 효과적 활용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마치 신이 바뀌는 듯 영리하게 움직였으며, 음악 역시 의도적으로 부자연스럽게 중단되면서 새로운 장면전환을 알렸다. 문삼화 연출의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는 식상한 스토리임에도 불구, 같은 내용으로 유머와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는 여유와 노련미가 있다.
 

- 예리하게 포착된 욕망들의 충돌 

고민과 탐구의 과정이 묻어난 이 작품은 연출 및 배우들의 열연에 의해 완성된다. 망가져가는 여자의 불안함과 초조함을 연기한 배종옥은 과장된 표정과 행동 속에서도 절제력을 발휘했다.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배종옥은 블랑쉬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성공시켰다. 감정적인 블랑쉬와 달리 이성적이며 현실적이고 활기찬 동생 스텔라를 연기한 이지하는 기쁨과 좌절, 안타까움의 다양한 감정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그녀만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배우 이석준 역시 거칠고 대담하며 솔직한, 다듬어지지 않은 돌의 뜻을 담은 스탠리를 능청스럽게 소화했다. 

‘연극열전3’의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블랑쉬에게 집중됐던 기존 작품들과 달리 모든 인물들을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섬세하게 어루만졌다. 스텔라와 스탠리, 미치 등 블랑쉬 주변 캐릭터들의 감정을 적절히, 그리고 치밀하게 파고듦에 따라 생생하게 살려냈다. 이 노력의 결과, 관객은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상처와 눈물, 폭력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에는 블랑쉬의 욕망뿐 아니라 모든 인물들의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들의 욕망들이 충돌되고, 곧 관객들의 욕망과도 충돌을 일으킨다.  

글_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사진_뉴스테이지 강지영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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